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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Dec 21. 2018

엉망진창

만약 뜻하지 않은 일로 오늘 하루가 엉망이 되었다면, 필요한 건 최대한의 전략 수정이다.

사람은 아무리 매일 오늘 해야 할 일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배치해도 때때로 뜻하지 않은 일로 오늘 하루 일정이 엉망이 될 때가 있다. 나는 대체로 어머니가 갑자기 부탁하시는 일이 그 원인이 된다. 함께 납품을 하러 가자고 하거나 사무실에서 봉투를 접거나 풀칠을 하거나 스티커를 접는 등의 잡일을 몇 시간이고 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몇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어 늘 발을 동동 구르며 일을 하는데, 하루 전체를 통째로 날리는 날도 적지 않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어머니께 "아, 도대체 내 일은 언제 해!?"라고 짜증을 낼 때도 있다. 사소한 말다툼을 어머니와 해버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어머니의 일을 돕는 걸로 설정한 이후 남은 시간에 내 일을 하거나 조금 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더라도 모자란 일을 하려고 한다. 어머니의 일을 돕는 것은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내 시간이 엉망진창이 되어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어머니는 그동안 나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엉망진창으로 보내며 몇십 년을 살아오셨다. 겨우 몇 시간 내 일이 지체되는 것 때문에 중요한 어머니의 일을 돕지 않는 불효막심한 일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어머니 일을 먼저 돕는 게 당연한 일이다. 비록 내 일을 할 시간이 없어져 오늘 하루가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해도, 그 일은 분명히 내가 게으르게 보내는 시간을 투자해서 할 수 있는 일일 거다. 괜히 어머니께 투정을 부리며 서로 다투기보다 하나하나 천천히 매듭을 풀어간다고 생각하며 일을 추진하는 게 가장 좋은 전략 수정이다.

오늘도 나는 대학 과제를 비롯해 밀린 일을 우선순위 A1~A3 순서로 배치해놓았지만, 어젯밤 어머니가 말씀한 함께 납품을 하러 가거나 주소록 스티커를 붙이는 일을 우선순위 A0로 설정해 '시간이 언제가 될지 모름. 주의'라고 적어두었다. 아침에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처리하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어머니 일을 돕는 걸 대비해서 하루를 보내는 일이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략 수정이었다.

참, 어떻게 보면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쉽지 않다.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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