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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숲 Jan 28. 2022

3. 가족에게 퇴사를 알리기

그, 있잖아요 엄마, 할 말이 있는데요.

  퇴사가 결정되고 이를 가족에게 알려야 했습니다. 

퇴사 직전, 동네를 휘적 휘적 걸어다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물론 저는 스무 살부터 독립해 다른 도시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만, 언젠가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엄마의 생신이 코앞인 딱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른 아침, 시외버스를 타고 부모님이 살고 계신 도시로 갔습니다. 그리고 오전 볕이 따사롭게 들어오는 거실에서 엄마와 티브이를 보다가 문뜩 '그, 있잖아요 엄마, 할 말이 있는데요.' 하고 운을 떼었습니다.


  퇴사를 하기로 결심했고, 이미 그 의사가 회사에 전달되어 무를 수 없는 상황이라 말했습니다. 엄마가 놀란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엄마는 몇 초 후에 '아니 얘는, ' 하곤 한숨을 푹 쉬셨습니다. 저는 그 틈을 타 장황하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서울에 이런 발령이 났는데 가기 싫었고, 회사는 이만큼이나 어려워졌고, 이런 불확실한 전망의 회사에서 시간을 허비할 바에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집에서 다른 공부를 하고 싶다)를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엄마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또 저는 장황하게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했는데, 사실 이건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살아오며 공부하고 싶었던 것들을 대충 나열했겠지요.


   "잘할게요, 잘할 수 있어요. 저 여태까지 혼자 잘 살았잖아요. 여태 해왔던 것처럼 잘 지낼 거니까."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린 나이에 독립했던 이유는 부모님이 제가 진학하길 원했던 학과를 강경하게 반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하고 선언했을 때 부모님이 6년 전의 그날처럼 다시금 강경하게 반대하시긴 힘드리라는 걸 알았어요. 부모님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어린 딸이 타지에서 산전수전을 겪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아마 부모님은 그때의 상황이 다시 반복되길 원치 않으셨을 것으로 압니다.


  엄마는 본가에 돌아와 같이 살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아냐 엄마, 계속 부산에 있을 거예요. 집 계약도 아직 남았고 고양이들도 있고. 실업급여받아서 이래저래 하면 다 해결되니까 걱정 마세요. 엄마는 또 한숨을 쉬셨고요.


  저녁이 되어 아빠가 돌아오셨습니다. 사실 독립 당시 불같이 화를 냈던 것은 엄마가 아닌 아빠였기에, 엄마에게 퇴사를 통지할 때 보다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에게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했습니다. 아빠는 곰곰이 생각에 빠지시더니, 이내는 입을 떼셨습니다.


  "그래, 니가 공부할 때도 됐지. 그 직장이 전문직도 아니고. 그래서 이제 뭐할라고."


  의외로 간단히 납득하신 아빠. 기쁜 마음으로 또 엄마에게 했던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그래, 함 잘해봐라. 무뚝뚝하게 뱉은 그 한마디에 저는 정말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가족들과 다시금 앙금이 생길까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응, 잘할게요. 걱정 마세요, 아빠 딸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니 아빠가 웃으셨습니다. 


  이제 정말 퇴사입니다. 마음 편히 퇴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한참 말이 없다가 또 한숨을 푹 쉬었다. 깊고 긴 한숨이었다. 그 말을 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조금 울음기가 섞여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예상 외의 반응에 나는 조금 의아했다. 사실 혼이 나거나, 화를 내시거나, 혹은 설득을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줄 알았다. 스무살 겨울, 집을 나가 독립하리라 선언할 당시에 겪은 소동 처럼. 하지만 엄마는 어쩐지 순순히 내 선택을 받아들이고, 또 이해하신 것 같았다. 엄마가 나이가 들어 작아지신걸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내가 엄마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걸까. -21.04.21



* INSTA : @soupsoup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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