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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유라 Sep 11. 2024

이화동, 깊은 언덕 집 (창작소설)

2. 능소화 넝쿨에 휘감긴 집 

2. 능소화 넝쿨에 휘감긴 집 


  칠월 말 토요일 오후, 방송국 보도국 한가로웠다. 오전 근무를 마친 동찬은 퇴근 준비를 했다. 부장이 동찬에게 다가오더니 넌지시 차장 진급 대상자로 확정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갔다. 나이에 비해 빠른 진급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일단 회사에서 몇 년간 자신의 입지는 안정적이라는 소리였다. 강남의 아파트와 차, 귀여운 아들 녀석, 그리고 진급하는 가장, 흠잡을 데 없는 가정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동찬은 진급 소식을 듣는 순간에도 단비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올까를 궁리했다. 동찬은 얼마 전부터 사무실에 앉아 단비가 중 삼이라는 사실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단비가 중 삼이라는 소리는 삼사 년 후엔 단비 혼자 살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성인이 된다는 소리였다. 동찬은 단비가 대학생이 되기 전에, 자신의 그늘에 두고 아빠 노릇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비는 어려서부터 새엄마와 따로 나가서 사는 동찬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거나 어리광을 피운 적이 없었다. 그 모습이 일견 대견스러우면서도, 동찬은 어느 사이 단비와 멀어져 있었다. 물론 자식을 자기 집에서 키운 주변의 중년 아빠들도 다들 커 가는 자식과 거리감을 안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동찬은 어쨌든 단비가 더 크기 전에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부모 노릇을 해보고 싶었다. 


  자신이 옛날에 살던 집이면서 아직도 어머니, 김 여사가 사는 집은 사대문 안, 낮은 산 중턱에 있었다. 동찬은 산 아래, 구멍가게 옆에 주차해 놓고 층계와 골목을 지나 김 여사의 집 대문을 넘어섰다.      

  "아범, 왔구나."      

  단비와 김 여사는 방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나와서 동찬을 맞아 주었다. 김 여사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하얀 머리카락을 뒤로 모아 쪽을 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머리카락이 너무 빠져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단비가 뜨개질로 떴다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단비는 고개만 까딱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김 여사와 동찬은 더운 날씨 탓을 하며 마룻바닥에 마주 앉았다. 

  동찬은 김 여사를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단비, 이 동네에 그대로 있으면 B 여고라는 데로 배정을 받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냐?"

  "B 여고는 시내에서 제일 공부 못 하고 재단 쪽에 문제가 많은 학교에요."      

  동찬은 김 여사에게 단비가 학교 때문에 이사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동찬은 사회부 기자 노릇을 하며 세상 아는 척은 다 하고 다녔는데, '약은 고양이 밤눈 어둡다'라는 말처럼 정작 자신의 딸을 위해 주소지를 옮겨 놓을 생각은 깜박 잊고 있었다. 동찬은 서둘럿 구청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을 해두었고, 아내인 윤숙에게도 말해두었다. 김 여사가 단비 하나 거둬 먹이는 일은 그럭저럭 해냈지만 교육 문제까지 신경 쓰기에는 무리였다.      

  "지 난 달에 단비 주소지를 저희 쪽으로 옮겨 놨어요. 위장전입이지만 어쩌겠어요."      

  김 여사는 단비에게 수 틀어지면 양말 한 짝 안 빨아 입는 상전이라고 해댔지만, 김 여사에게 단비는 그래도 수년 동안 잔심부름을 도맡아 해온 피붙이였다. 단비가 나가면 김 여사만이 이 집을 혼자 지키고 살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단비가 적적한 말년을 지켜주는 귀엽고 쓸 만한 강아지와 같은 존재라면 외동아들, 동찬은 김 여사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기둥이자 전부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동찬이 단비를 데려가는 것에 대해서도 김 여사는 올 것이 왔다는 심정이었다.      

  "딸이 지 애비 집으로 주소지를 옮기는 게 무슨 위장이냐. 그거야 말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거지."

  "최소 일 년 전엔 옮겨 놔야 했는데 이미 늦었죠. 그래서 구청 교육과에 있는 선배한테 부탁까지 해놨습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P 고등학교라고 있는데요, 매년 서울대도 수십 명씩 보내고요, 신생재단이라서 달라요.”

  "그래. 젊은 부모들이 더 잘하겠지. 잘 된 게야."     

  동찬은 할 말을 다 하고 나자 쑥스러워졌다. 자신이 편리한 대로 십 년이 넘도록 아이를 맡겼다가 이제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는 것이 이러나저러나 불효인 것 같았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제야 그날따라 더 작아 보이는 김 여사의 앉은키가 동찬의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허리는 괜찮으신 거죠?”

  “이렇게 된 게 언제 쩍인데. 망아지는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 새끼는 서울로 보내라고. 단비, 젊은 어미, 아비가 끼고 갈쳐야지. 한창 클 때 안 가르쳐 놓으면 요즘 세상에 어디 사람 구실 하겠냐. 당장 보내마.”     

  김 여사는 집안 어른으로서의 꼬장꼬장한 면모는 포기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손녀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또 동찬이 원하는 것이라면 힘닿는 대로 해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었다. 그것이 이 집안의 안주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김 여사의 자부심이었다. 동찬은 어머니, 김 여사를 애잔하게 보았고, 김 여사는 아들의 그런 시선에 초연한 태도를 보이며 앉아 있었다.     

  김 여사는 황해도 바닷가 마을이 고향이었고, 인근 마을 오 씨 집으로 해방되기 전에 시집을 왔다. 그런데 일제 해방기 이후 오 씨 집안의 사람들은 한둘씩 서울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지만 김 여사의 친정 식구들은 그러질 못했다. 육이오를 거치면서도 김 여사의 친정 식구들은 남하하지 못했고, 결국 서울엔 김 여사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 김 여사가 마음고생을 하고 산 이유는 친정과의 단절이라기보다는 시집와서 십 년 동안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결혼한 부부가 아이 없이 거의 십 년을 산다는 것은 시집엔 더할 나위 없이 죄스러운 일이었고, 친척이나 이웃으로부터 동정 어리거나 아니면 따가운 시선을 받는 일이었다. 더구나 주변머리 없는 성격에 생활력이 없는 남편은 격변의 세월 속에서 족보만 싸 들고 여기저기 이사 다녔을 뿐, 김 여사에게 다정다감한 성격마저 못됐다. 남편과 시집 식구들 뒷수발을 해온 김 여사는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늘 멍에를 짊어지고 사는 침울한 새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결혼 십 년 만에 기적적으로 생긴 아들이 동찬이었다. 그러니 김 여사에게 동찬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희안하게도 첫 자식을 얻은 이후 남편은 아예 드러누워 지내는 시간이 서서 돌아다니는 시간보다 많게 되었다. 김 여사는 항시 집안 살림에 보태기 위해 장사하랴, 집안일 챙기랴, 울 틈도 신세 한탄할 틈도 없었다. 힘든 생활 속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동찬은 김 여사에게 애정과 집착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외동아이는 부모의 과보호 때문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격이나 나약한 성향을 보인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동찬은 학창시절 또래 아이들과 모여 있을 때 외동아들티가 나지 않았었다. 어머니, 김 여사가 과보호하려 들면 동찬은 난감한 기색을 표시하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도, 김 여사가 서운해하는 걸 알면 김 여사를 위로하기도 하는 살뜰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다 보니 동찬이 머리가 그렇게 둔한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동찬이는 성격으로 먹고살 거 같아요'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듣곤 했다. 김 여사에게 동찬은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동찬이 사회에 나온 다음, 결혼이라는 인생의 관문을 지나면서 뜻하지 않은 장애물에 흠집이 생기고 만 것이었다. 그것도 김 여사가 보기에 아들 성격이 너무 착해서 스스로 불러들인 화에 지나지 않았다. 지켜보는 김 여사의 마음이 안타깝기로는 이루 말을 다 할 수가 없었다.      

  단비는 창호지를 바른 김 여사의 방, 미닫이문 안쪽에서 아빠와 할머니, 두 어른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동찬이 김 여사의 집에 찾아오는 날은 설날과 추석 아니면 일 년에 두 차례 있는 제삿날이었다. 단비는 평일 날, 아빠가 찾아와서 반갑기보다는 뭔가 혼날 일이 있는 아이처럼 가슴이 불안했다. 단비가 조금만 숨을 크게 내쉬어도 미닫이문의 창호지가 파르르 떠는 것 같았다. 그런데 떨고 있는 것은 단비만이 아니었다. 단비는 김 여사의 목소리만 듣고도 김 여사 마음속의 망설임을 창호지 너머로 느낄 수 있었다. 방 밖에서 김 여사가 단비를 불렀다.      

 "단비야, 아빠 가신다."     

  단비가 안방에서 나왔을 때 동찬은 마당에 서 있었다. 단비는 동찬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고 뾰로통한 얼굴로 마루에서 마당에 내려섰다. 누가 봐도 '인제 와서 나를 데려가겠다니, 내가 장롱 속에 넣어 두고 아빠가 원할 때 꺼내 보는 장난감이에요?'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동찬은 그런 단비의 표현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짐 챙겨서 아빠 집으로 들어와라. 그 다음에 또 얘기하자." 

 "이사 가기 싫어요."

 "고등학교 배정받으면 어떻게 다닐래? 이 집에선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데만 삼십 분에, 버스 타면 또 한 시간 거리인데."

 "앞으로 다닐 고등학교가 문제가 아니라, 아빠네 동네에서 우리 중학교까지 오는데 한 시간 거리잖아요."

 "그것도 아빠가 다 생각해 놨다. 아침엔 아빠가 출근하면서 차로 데려다줄 거야. 아빠가 다음 주 휴일에 차를 끌고 올 테니 그때 옷이랑 책을 같이 옮기자. 됐지?"


  동찬은 소심하게도 단비가 뭐라 대답을 하기 전에 뒤돌아섰다. 단비는 인사도 안 한 채 동찬의 등만 보고 서 있었다. 동찬은 단비의 따가운 시선을 등으로 느끼면서 한때 자신의 집이었던 김 여사의 집 대문을 넘어섰다.      

  김 여사와 단비, 동찬이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드는 두 여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야말로 단비에게 어른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과거에 부족했던 것이 있었더라도 그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면 당장 아이를 위해 행동을 취해야 했다. 단비를 세상과 연을 끊다시피 하고 사는 노인네 슬하에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일단 김 여사와 단비에게 통보를 했으니 동찬은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찬은 김 여사에게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서서 골목을 내려왔다. 동찬은 자신의 집에 들를 때마다 마음이 조금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딱히 주위 친구들보다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지도 않았지만 풍족하게 살지도 않았던 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동찬의 기억 속엔 김 여사 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마당 수챗구멍, 시멘트의 갈라진 틈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던 실지렁이들이었다. 동찬은 기생충처럼 생긴 실지렁이를 생각하면 끔찍해서 몸서리가 쳐졌다. 얼마나 싫었는지 고등학생 동찬은 실지렁이들이 기어 나오는 구멍에 시멘트를 두 번이나 덧발랐지만 소용없었다. 또 동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늘 기침을 했던 아버지 때문에 안방에서 나던 퀴퀴한 냄새였다. 돌아가시기 전, 이 년 동안은 거동도 불편하셔서 오줌통을 방안에 놓고 사셨는데 어머니가 아무리 깔끔하게 관리해도 지린내가 떠나는 날이 없었다.  그래도 동찬이 학생이던 시절엔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도 많아서 동찬은 딱히 자신의 집만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동찬은 학교만 졸업하면 돈을 벌어 산 밑 동네에 있었던 양옥집들처럼 그럴듯한 집에 살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교수가 되겠다던가, 판사나 의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없었다. 동찬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전문직보다는 사장이 좋았다. 동찬은 '집안을 일으켜야겠다'라든가 '어머니를 좀 편하게 모셔야지'와 같은 평범한 소망을 가슴에 품은 채, 남들보다 조금 더 잘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치며 살아왔다. 그러고 보면 동찬은 과거에 자신이 꿈꾸던 양옥집보다 더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어느 정도 꿈을 이룬 셈이었다. 그러나 청소년 동찬이 그리던 생활은 가족이 모두 모여 사는 생활이었지, 지금처럼 어머니 김 여사만 그 집에서 오도 가도 못 하게 만들어 놓는 것은 아니었다.      

  긴 여름의 낮이 끝나고 어둠이 내려오고 있었다. 동찬은 계단을 내려오다가 잠시 뒤돌아서 김 여사 집을 바라보았다. 동찬은 김 여사의 집, 지붕을 덮고 있는 능소화 꽃을 보고 잠시 탄성을 질렀다. 능소화는 황주미가 동찬과 결혼해서 이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할 때 심은 것이었다. 황주미와 그 집에서 살 때 보았던 능소화는 강낭콩 줄기보다 조금 더 굵은 넝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줄기가 구렁이 몸통만큼 굵어져서 담을 타고 올라가 지붕까지 덮었다. 또 폭죽처럼 활짝 터진 커다란 꽃송이는 아예 집을 집어삼킬 듯했다. 동찬은 꽃이 그렇게 만개할 때 김 여사 집에 온 적이 없었다. 동찬의 기억 속에 김 여사의 집은 단 한 번도 이런 아름다움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동찬이 골목 아래에서 넝쿨에 휘감겨 있는 자신의 옛집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김 여사의 집은 동찬이 빠져나오고 싶어 몸부림쳤던 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혼자서 황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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