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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유라 Sep 12. 2024

이화동, 깊은 언덕 집 (창작소설)

3-1. '미술'이라는 금기어 


3-1. '미술'이라는 금기어  

  

  S 여중은 단비가 있던 산동네 바로 아래에 있던 학교여서, 단비 동네 여자애들은 죄다 그 학교에 걸어서 다녔다. S 여중은 역사가 있는 학교임에도 고색창연한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학교와 구별되는 운동부나 특별활동부가 있지도 않았다. 거기에다 교풍이 엄하다는 소문이 나서 학생들로부터 '가고싶다' 소리를 듣는 학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심약한 초등학생들은 'S 여중'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무서워 떨었다. '학생 잡는 학교'라는 S 여중에 대한 이미지는 '전설'이라고 불리며 전해 내려온 소문의 역할이 컸다. 십 년 전에 지도 교사 두 명이 무단결석을 하는 학생을 찾아 산동네 실밥 뜯는 공장을 뒤졌다고 했다. 그 학생이 공장에서 나오기를 거부하자 교사들은 안 나오겠다는 학생을 머리채를 잡아 끌어냈다고 했다. 그 동네의 많은 학생은 초등학생 때부터 ‘말 안 듣는 애는 머리채를 잡아서라도 말을 듣게 하는 중학교’라는 소문에 공포감을 느꼈다.

  다소 괴이한 소문이 있는 학교이기는 했지만, S 여중이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규칙이 특별하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학생은 학교 배지를 달고 등교해야 한다'라거나 '학교 주변에 있는 ** 공원엔 가지 않는다', '교복 블라우스 소매를 접어 입지 않는다' 같은 평범한 규칙들이었다. S 여중이 다른 학교와 다른 면은, 교사들이 똘똘 뭉쳐서 이 평범한 규칙들을 집요하게 지키도록 만든다는 데에 있었다. 뱃지를 예로 들자면, 학기 중 평일은 물론 시험 기간, 방학 날과 방학 소집일, 소풍, 심지어 장마로 물난리가 난 날도 교사들은 위반자들이 눈에 띄면 즉각 지적했다. 지적을 당하면 생활평가점수에서 감점되거나 처벌을 받았다. 토요일 오후마다 교사들은 학교 옆에 있는 ** 공원에 나갔고, 그 공원 주위를 배회하는 S 여중 학생들의 이름을 무조건 적어 갔다. 공원 주변에는 카페와 극장 같은 학업을 방해하는 시설이 몰려 있으므로 학생들은 그쪽 길로 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 단속하는 이유였다. 그렇게 이름을 적힌 학생들은 예외나 변명 없이 나중에 교무실 앞에서 손을 들고 벌서야 했다. 교사 관점에서 따지고 보면, 직장인으로서 토요일 오후에 학생을 적발하러 학교 주변 단속에 나서는 것은 번거롭고 성가신 일이었다. 그런데도 S 여중 교사집단은 그 학교만의 엄격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 정도의 불편은 감수하는 사람들이었다. '지독하다', '이런 학교는 처음 봤다'는 소리가 학생들로부터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이 학교에 지지를 보내는 학부모들도 꽤 있었다. 아직 중학교 단계라서 그런지 동네 학부모들은 공부 쪽에 대한 평가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신 '학교가 학생들을 꼼짝 못 하게 한다'라는 평가에 대해서 성원을 보내는 학부모들이 꽤 있었다. 일부 말 안 듣는 애들을 가진 학부모들은 부모 대신 학교가 애들을 혼내서 생활 태도도 바로 잡고 공부도 시켜줬으면 하는 은밀한 바램을 품고 있었다. 사실 S 여중은 시내에서 학업성적이 시내에서 하위권에 드는 학교였다. 그리고 단비는 실밥 뜯던 학생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교사가 누구였는지 알고 싶었으나 끝내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S 여중 선생님들이 애들 통제하는 데만 골몰하는 집단은 아니었다. S 여중엔 유능한 선생님들이 많이 모인다는 소문도 있었다. 단비가 보기에 S 여중 선생님 중엔 교사이기 이전에 자신이 맡은 과목에 애정을 갖고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다. 과학 선생님과 수학 선생님은 교내 상식 퀴즈 대회를 위해 전자상가에서 자신이 직접 구매한 부품으로 전광판과 부저를 만들어 선보였다. 자신이 직접 그린 설계도에 따라 전선과 전구를 연결하여 점수판을 만드는 과학과 수학 선생님의 모습은 문구점에서 산 '조립로봇'을 조립하는 소년들처럼 보였다.

  영어 선생님 중엔 영어 소설 읽기가 취미인 선생님도 있었다. 소설을 읽은 다음 주 수업 시간에 자신이 읽은 영어 추리 소설 이야기를 해주었다. 문예지 등단 시인인 선생님도 있었는데, 학생들은 그 선생님으로부터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그것은 단지 기대였다. 그 교사는 흐트러진 상태로 수업을 받는 학생을 싫어하는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는 교내 문예반 학생들에게 자작시도 읽어주고, 글짓기를 잘하는 학생들에겐 언제나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 시절 단비는 모든 교사가 S 여중의 선생님 같은 줄 알았었다. S 여중의 교사가 특별했다는 것을 고등학교를 거치고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단비에게 S 여중은 그저 비효율적인 한 사례일 뿐이었다. 가정으로 비유하자면, 부모가 좋은 공부방에 비싼 참고서를 많이 사주고 매일 옆에서 지켜보지만, 자녀의 성적은 하위권인 그런 경우였다. 분위기 조성을 위해 교사들이 쏟아붓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S 여중은 시내 학교들이 모두 참가한다는 시 교육부 주최, 영어나 수학 평가시험에서 늘 하위권을 기록했다. 중학교라고 하지만 S 여중 이름 뒤에 '공부 잘하는 학교'라는 꼬리표가 붙는 일은 없었다. 이 학교가 동네에서 좋은 평판을 유지하는 오직 교문 앞에서 몽둥이를 들고 서성이는 교사와 그 기이한 '머리채' 전설 때문이었다. 단비는 S 여중을 좋아한 적이 없었다. 교사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선생님들을 존경했지만, 그 엄격함에 답답함을 느꼈었다. S 여중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학교 동쪽 담에 늘어선 아름드리 은행나무들과 단비의 외로움을 덜어 준 친구들뿐이었다. 

  단비는 학교에 있는 시간을 좋아했고 방학을 싫어했다.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속에 있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수가 없어서 좋았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조용히 재봉틀을 돌리는 김 여사가 있었는데, 김 여사는 정해진 시간에 밥을 해줄 뿐 말이 없었다. 시험성적이 왜 이렇게 떨어졌냐고 혼내는 일도 없었고, 백화점은 고사하고 시장에 가는 일조차 없었다. 먹을거리는 골목 아래 구멍가게 여자가 배달해주었고, 다른 생활용품도 김 여사의 부탁으로 그 여자가 사다 주었다. 단비는 묵언수행자 같은 김 여사 때문에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그래도 중학교 일학년 때까지는 아랫집 옥수 언니 집에 가서 놀면서 쏠쏠히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수가 있었다. 옥수 네는 딸 넷인 집인데, 김 여사네 아랫집의 방 두 칸에 세 들어 살았다. 단비는 저녁 먹고 심심하면 슬리퍼에 잠옷 차림으로 아랫집에 놀러 가서 그 집 딸들과 놀았다. 어떤 날은 같은 방에서 잠도 잤다. 그러면 사람 좋은 옥수네 엄마는 다음 날, '애가 많으니까 넷인지 다섯인지 구별이 안 되었네'라고 허허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김 여사의 부탁으로 단비를 교실에 데려다주었던 사람도 옥수 엄마였었다. 그러나 단비가 중 이가 되던 해에 옥수 언니 집은 이사갔다. 그 후 단비는 마당 구석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라디오만 틀어 놓은 채 늘 혼자 만화 그리기를 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냈다. 단비에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만화 그리기만큼 만만한 놀이는 없었다. 아마 초등학교 사 학년 즈음이었다. 단비는 옥수 언니가 습자지를 만화책에 대고 그대로 그리는 것을 보았었다. 단비도 만화책 그림 위에 습자지를 대고 한 컷, 한 컷 그대로 옮겨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습자지 없이 연습장에 만화책을 대충 비슷하게 옮겨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친구들은 매일 만화를 그리는 단비를 ‘출판사’라고 불러주었다. '단비 출판사'의 시작이었다. 단비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순정만화를 특히 좋아했다. 특별히 만화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연습장 만화로 친구들로부터 받는 관심과 칭찬도 덤일 뿐이었다. 만화책을 베껴 그리다 보면 시간이 잘 갔고, 단비는 그것이면 족했다. 조금 덜 외로움을 느끼면서 어른이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때르르릉.’


  수업 종이 올리자 교실과 복도에서 떠들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자리에 앉았다.      

  "야, 출판사. 책 넘겨야지."     

  단비 뒤에 앉은 아이가 손가락으로 톡톡 단비 등을 쳤다. 그 아이는 쉬는 시간엔 애들과 떠들다가 수업시간에 단비의 만화 연습장을 보곤 했다. 수업 시간에 만화 그림을 보다가 선생님한테 걸리면 연습장을 뺏길 것은 뻔했다. 단비는 다른 시간 같으면 수업 시간에는 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시간은 미술 시간이었다. 미술 선생님이라면 연습장을 뺏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단비는 연습장을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는 단비로부터 '10권'이라고 씌어진 연습장 한 권을 받았고, 옆에 앉은 아이까지 같이 보기 시작했다. 비현실적으로 팔 다리가 긴 소녀와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를 입은 귀족 미소년, 이오니아 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대저택과 장미가 가득 핀 정원. 단비가 완벽에 가깝에 필사한 그림 속엔 환상이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교실에 나타나기까지 그 짧은 시간 안에 '연습장 만화책'에 빠져 들었다.

  단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절은 여름 끄트머리를 지나고 있었고,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한창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단비의 눈에 은행나무의 잎끝에 노란색 기운이 살짝 감도는 것이 보였다. 동찬이 갑자기 나타나서 단비에게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자신의 아파트로 들어오라고 말한 지 삼 개월이 지났다. 단비는 여름 방학 동안에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동찬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미루었다. 하지만 추석엔 미루지 못하고 동찬의 집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미술 교사인 배순분이 교실에 들어섰다. 배순분은 교사이면서 그해 봄에 시내 화랑에서 전시회까지 연 화가이기도 했다. 그날 배순분은 자신이 디자인해서 양장점에서 맞춘 원피스를 입었다. 그런 모습이 학생들의 눈에 배순분을 더욱 화가처럼 보이게 했다. 배순분이 옷을 맞춰 입었던 것은 꼭 예술가라서가 아니라 특별히 작은 체구 때문에 그녀에게 맞는 기성복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기성복과 다르면서도 교무실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튀지 않은 옷을 스스로 디자인해서 입고 다녔다. 배순분은 지난주에 학생들에게 예고한 대로 칠판에 '자유주제'라고 썼다.  이렇게 '자유주제'라고 던져 주면 아이들은 무얼 해야 할지 생각하는 데만 삼 십 분을 보내거나, 다른 애들이 무엇을 하나 보느라 우왕좌왕했다. 배순분이 경험적으로 관찰해보면, 주제와 소재를 정해줄 때 보다 자유주제라고 소재를 정해주지 않을 때 학생들의 작품 수준이 대체로 높지 않았다. 그러나 단비네 반은 ‘자유주제’ 시간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단비네 반은 미술 시간이 공휴일과 겹쳐서 수업을 못한 반과 삼 주나 차이가 났다. 

  단비는 딱히 무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앉아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단비에게 말을 했다.      

  "넌 연습장 뜯어서 내면 되잖아. 큭큭."      

  "안돼. 수업 시간 내내 할 거 없잖아."


  단비는 할 수 없이 머릿속에 오래 저장되어 있었던 풍경 하나를 도화지에 옮기기로 했다. 절벽 아래에 바다가 있는 평범한 풍경이어서, 누구나 '그냥 생각 나는 대로 그렸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배순분은 학생들이 미술 시간만큼은 영어나 수학, 과학 같은 딱딱한 과목의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S 여중에서도 공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학생들은 주눅 들기 쉬웠다. 그녀는 학생의 성적은 알지 못했고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그리거나 독특한 느낌으로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에게 말을 걸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모든 그림엔 그린 사람의 내면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단서가 있다고 믿었다. 교사로서 그녀는 내성적인 학생들에게도 그림을 통해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학생들 작품을 보던 배순분의 눈에 띄는 그림이 있었다. 

  바위와 풀, 나무가 있는 언덕 아래로 펼쳐진 녹색의 바다. 평범한 풍경이었으나 그 평범한 풍경을 그린 그림 솜씨가 눈에 띄었다. 사물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솜씨도 좋았지만 색과 선이 그냥 좋았다. 개성이 느껴졌다. 그림을 그린 학생은 오단비였다. 배순분은 이전 수업부터 단비의 작품 몇 개를 봤기 때문에 단비가 미술에 각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단비는 수업 시간에 자신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배순분은 수업을 시작하거나 끝날 때,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시간을 꼭 가졌다. 그림이라는 것이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작품을 많이 보고 작가의 말을 듣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배순분 미술 수업의 핵심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아니라 친구들에게 학생이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그럴 때면 다양한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대충 그린 그림을 거창하고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작품이 재미있는데도 별말이 없는 아이도 있었다. 단비는 후자 쪽이었다. 배순분은 단비가 무슨 의도로 작품을 그렸는지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배순분은 미술 시간이 끝나갈 무렵 단비에게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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