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싶다. 정말 잘 살고 싶다.
요즘의 나는 성장 욕구가 강한 편이다. 학창 시절에도 이런 낌새(?)가 보이긴 했지만 지금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맹물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나. 그런 내가 변화하기 시작한 건 30대, 출산을 경험한 뒤부터다.
출산 후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는 매일매일을 온몸을 비틀며 보냈다. 20대에는 사회생활을 하며 힘든 일이 있었더라도 잘 버텨오던 나였는데, 육아는 버틴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나의 24시간을 통제하는 육아는 불구덩이 그 자체였다.
본능적으로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살고자 아우성쳤다. 이렇게 계속 살다간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돌이켜 보면 그 힘든 시기를 혼자만의 고립된 생각으로 오롯이 감당해 내야 했기에 더 고통스러웠으리라 생각된다. 육아 6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이렇게 다 지나갈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조금은 덜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래서 둘째는, 셋째는 더 쉬워진다는 말이 나왔을지도.
사람은 고통을 통해 성숙해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힘들었던 시기를 버티다 보니 새로운 기회가 왔다. 남은 챙겨도 나를 챙기지 않았던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부터 자아성찰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부터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넌 무엇을 좋아하니?'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니?'
첫 술에 배부르기가 어디 쉬운가. 나를 찾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를 알아갔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1. 10년 동안 미뤘던 대학원을 졸업했다. 수료생으로 10년을 살면서 가장 괴로웠던 건 나다. 어깨에 큰 바윗돌을이고 지고 지냈던 10년으로부터의 탈피는 너무나 짜릿했다. 첫 발돋움으로부터 이제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2.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실패 중이다. 그래도 괜찮다. 실패를 했다는 건 계속해서 도전해 봤다는 증거니까. 이 과정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지금도 계속 도전하고 있다. (분명 실패는 뼈아픈 일이긴 하다.ㅎㅎ)
3. 나만의 루틴을 찾아가고 있다.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청이 주장하는 것과 같다. '다작, 다독, 다상량'. 이것을 꾸준히 하기 위하여 내가 매일 하고 있는 것들은 첫 번째로 새벽에 기상한다. 새벽 달리기, 요가, 맨몸 운동을 시작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서는 걷기, 다이어리 쓰기, 글쓰기, 책 읽기를 주로 한다.
4. 새로운 인맥이 형성되고 있다. 자신을 바꾸려면 주위 사람부터 바꿔라 하지 않았는가. 내 주변 사람들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독서모임, 자기 계발 모임을 하면서 조금은 더 건강한 정신의 사람들과 많은 것을 나눈다. 하루가 더 의미 있어진다.
나의 루틴은 작은 항목들이 변화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는 2년째 지속이 되고 있다. 이제는 루틴 없이는 어질러진 내 삶을 부여잡기 더 힘들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봐주지 않아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꿈을 위하여 잘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잘 나아가고 있는 게 맞나?' '이게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과정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울컥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아마도 그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응원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유어셀린(윤수빈) 작가의 <때가 되면 너의 정원에 꽃이 필 거야>의 책을 보면서 많이 울컥했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수학자 허준이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의 이 구불구불한 길이 결국 나를 증명해 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나를 믿어주면 잘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나는 나에게 건강한 음식을 대접했다. 나를 귀하게 대해줘야 세상도 나를 귀하게 대해줄 것이다.
때가 되면 나의 정원에도 꽃이 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