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20년>, 오소희
'엄마'라는 이름으로 지낸 지 6년 차.
처음엔 내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내 엄마가 되어버린 것이 어색했다. 자연분만으로 아이가 뱃속에서 나오는 고통도 함께했건만 왜 그것이 그리도 실감이 나지 않고 오랫동안 낯설었을까?
처음이라 그런 거겠지. 처음 낳아 처음 길러보니 모든 게 어색하고 불안했던 그 감정들. 이 핏덩이를 나 하나의 잘못으로 잃을 수도 있다는 숱한 불안감들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엄마라는 이름에 익숙해지는 것도 늦춰졌을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이름에 익숙해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가 만 4세가 되었을 시기부터 조금씩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길에 핀 꽃들도 눈에 들어왔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으로 보기 시작했다. 마치 오소희 작가님의 계룡산 시절처럼.
"마침내, 꽃이 피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보람찬 일이 없었죠. 하루하루 투실투실 해지는 아기의 허벅지 하며! 하루하루 넙데데해지는 얼굴 하며! 온몸의 마디마디가 쑤시고 아팠는데도, 아기 살냄새만 맡으면 벌떡 일어나졌어요. "(p.50)
지난 독서모임에 선정된 책은 육아서였다. 오소희 작가님의 <엄마의 20년>.
'엄마의 세계가 클수록 아이의 세상이 커진다.'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걸 봐서 아이가 잘 크려면 엄마부터 성장해야 한다는 다소 뻔한 말이 담긴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날짜가 임박해서 읽게 되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첫 페이지부터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 책 도대체 뭐야?"
F인 나의 감성을 마구 자극했다. 그로부터 책 속에 푹-빠져 빠르게 읽어갔다. 독서를 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멘토 언니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나에게 소곤소곤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이었다. 시기적절하게 나에게 딱 맞는 솔루션을 제공받은 느낌이었달까.
<엄마의 20년>처럼 나와 결이 맞는 책을 만나면 반가움과 희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한 구절처럼 책은 책이기 때문에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육아 롤 모델을 정할 때 너무 거창한 인물을 고르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뉴스나 책에 나오는 사람은 잘났지만 멀리 있으니까요. 그보다 내가 쉽게 따라쟁이가 될 수 있으며, 수시로 찾아갈 수도 있는 '롤 언니'가 좋습니다. "(p.219)
정말 다행히도 나에겐 가까이에 있는 롤언니가 존재한다. 2주에 한 번씩 만나는 독서모임 <엄꿈독> 멤버들이 나에겐 롤언니다. 나보다 한발 앞서 반질반질한 길을 내어주는 분들의 현명한 사고를 공유할 때는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마구 샘솟는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푸근해진다. 롤언니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너무 소중한 존재다.
"고용 구조를 보면 월급쟁이는 줄어들고 프리랜서, 자영업, 해외취업자가 늘고 있어요. 변화는 점점 더 가속화될 거예요.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 능력들이 중요할까요? 체험, 창의력, 추진력."(p.231)
"4차 산업혁명은 창의성에 내려진 축복입니다."(p.212)
이 구절에서는 '아- 나는 시대를 너무 잘 타고났다.'라는 생각과 함께 기쁨에 차올랐다. 나의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셨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머리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회사원이나 공무원의 생활은 생각만으로도 답답함을 느끼는 편이었기에 프리랜서나 사업가 쪽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내 주변 누군가 회사에 취업하여 고정적인 월급을 받을 때는 불안함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꼭 그것만이 답은 아닐 거라며 나를 다독여왔다.
나의 이 생각이 예전엔 각광받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정말 시대가 달라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체험, 창의력, 추진력이라니! 이건 내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인걸? 드디어 내 시대가 온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기쁨에 차올랐다. 이 가치로 아이를 키우는 게 맞다고 하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은 교육열 과잉으로 인한 조기 교육 굴레에 무한으로 빠져있다. 아이가 뛰어놀기만 해도 바쁜 시기인 영유아기부터 영어, 영어, 또 영어.. 영유를 보내는 것도 아이에겐 너무나도 큰 부담일 텐데 영유를 보내기 위한 과외를 또 한다니.. 정말 잘못되어도 한참 잘 못 된 게 아닌가.
초등 의대반이라는 말을 익숙하게 접하고 있는 요즘, 그 루트를 위해서는 한 시라도 빨리 시작해서 영어를 익힌 뒤 사립 초등학교를 보내고, 좋은 학군의 중, 고등학교를 다닌 뒤 대한민국이 알아주는 대학을 가고, 대한민국이 알아주는 직업의 소유자가 되는 루트가 유행처럼 불고 있는 것 같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전자제품 바꾸기에는 급급하지만,
아이 교육에 한해서는 까막눈이 된 것처럼.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교육열이 과잉 된 것도 아이를 사랑하는 좋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유행처럼 휩쓸려 나아가기 보다 부모가 먼저 세상을 직시하고 주관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아이의 성장 시기를 알고 건강하게 키워내는 것 또한 부모의 몫일 것이다.
"입시 육아의 올가미에서 벗어난 가정은, 이제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그 돈으로 방학이면 피레네산맥을 종주하거나, 로마에서 한 달 살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잡는 게 아니라, 엄마와 아이가 함께 생을 즐기는 겁니다. 우리의 가정은 대한민국의 GDP 수준에 걸맞은 행복지수를 되찾을 겁니다. 장담합니다. 이 책의 말미에 이르면, 더는 아이'를' 자랑으로 삼는 후진국형 부모가 되고 싶지 않을 거예요. 아이'가' 자랑으로 삼는 선진국형 부모가 되고 싶어질 겁니다."(p.33)
더 이상은 입시 위주의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이 부모의 방관 혹은 경제적 부족이라고 여기며 패배자라고 지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획일적인 사고에 갇힌 후진국형 부모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는 선진국형 부모가 많아지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