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삶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나에게 귀감이 되는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지만 영화를 다시 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뒤 스토리가 기억에 남는 것도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다르게 다가왔다. 일단 영상미가 좋았다. 4계절을 다채롭게 담아낸다. 나의 정서적 주파수에 딱 맞는다고 해야 할까. 보고 또 봐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임신 중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을 때는 하루에 두 번 연달아 본 적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거창하고 대단한 무엇보다 잔잔하고 소박한 삶을 다루는 이야기가 좋다. 평소에 산을 자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소한 즐거움, 소소한 기쁨, 소소한 행복.’
이 소소한 삶은 기저에는 자연이 있고, ‘나의 작은 숲(my little forest)’ 이 스며들어 있다.
이런 나를 발견할 때면 부자가 되겠다고 외치던 과거의 내가 떠올라 헛웃음을 짓게 된다. 그렇다. 내가 자기 계발을 시작한 첫 번째 이유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부자가 되기 위하여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었다.
내 속에 잠재되어 있는 그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서 걸었고, 차를 두고 버스를 탔으며 다양한 동네를 탐닉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확장시켰다. 또한 다양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몰두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어떤 위치에 와있는지 돌이켜 봤다.
그런데 정말 당황스럽게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부자가 되는 길과 거리가 멀었다. 조금이 아니라 아주아주 많이 멀었다. 돈을 많이 벌려면 수지 타산이 빨라야 하는데 내가 하는 것들에는 비생산적인 것들만 가득했다.
1. 도자기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도예를 취미로 한지도 8년 차다. 상품을 개발한다면 낮은 금액으로 제조해서 높은 금액으로 팔아서 많이 남기는 게 이득일 것이다. 그러나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일은 흙을 빚고 깎고 굽고 유약을 바른 뒤 또 구워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것만큼 비생산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이소에 가면 1,000원 ~ 2,000원으로 가성비 좋은 도자기들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손 빠르게 움직인다 한들 사람이 직접 하는 일은 중국의 공장 생산량을 따라잡을 수 없다.
2. 책 읽기와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다. 20대부터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지만 미미했고, 10대 때는 책과 담을 쌓고 살았다. 30대가 되니 그 시절들이 너무 후회되었다. 나의 말 하기 실력이나 글쓰기 실력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라는 게 없나? 분명히 나의 의견이 있을 텐데도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좋지 않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내가 뭘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몰랐기 때문에 계속 감정에 휩쓸려 살기만 했다. 악순환이었다. 그것을 끊고자 책을 읽으며 생각력을 키웠고, 글을 쓰며 내 속에서 원하는 걸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능력은 정말 한순간에 늘지 않는 영역이다. 몇 년째 집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직도 실력이 확 늘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이 능력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몇 년이 더 흘러야 할까? 비생산적인 시간들의 연속이다.
3.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이익을 생각하기 보다 바라는 것 없이 주고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소소한 선물을 주고받거나 덕담을 주고받는다. 나는 현재 모임을 두 개 하고 있는데, 하나는 독서 모임(엄꿈독)이고 또 하나는 성장 모임(프로젝트 하이)이다. 맥락은 비슷하다. 두 모임 모두 나 자신의 가치를 찾는 데 있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함에 있다. 이것 또한 생산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금은 전혀 모르겠다. 주변에서도 항상 말한다.
“그냥 그렇게 살아. 뭘 더 바라. 넌 천생 예술가니까 그렇게만 살아도 돼.”
요즘 이런 말을 아주 많이 듣는데, 들을 때마다 ‘그래, 난 그런 사람이지.’ 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나는 나의 작은 숲(my little forest)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이렇게만 머물기는 싫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정했다. 미래의 일은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므로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해 보기로 하자고. 그랬더니 나에게 주어지는 일들이 많았다. 이 전에는 해보지 못한 많은 경험들을 했다. 그리고 주어진 과제가 하나 있다. 1월에 있을 도자기 전시를 위한 준비이다.
나는 이 전시를 단순히 도자기 전시에 그치지 않고, 내 이름을 건 하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초석을 다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전시장의 작은 한 켠에 나의 작품이 전시되겠지만 그 공간만큼은 완벽한 나의 취향을 풍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관람객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
단순히 ‘제가 만든 것 보러 오세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향하는 [1. 도자기, 2. 글쓰기와 책 읽기 3. 사람]이 모두 포함되는 ‘나의 작은 숲(my little forest)’을 보여줄 전시가 될 것이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 또한 비생산적인 것에 속하지만, 이게 진짜 삶의 의미를 찾는 순간이지 않을까. 이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면 언젠가 꽃 피는 날이 오겠지.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즐거워하지 않는 삶은 비록 겉으로 보기에 커 보여도 공허하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선택이라도 내 마음이 거기에 머물지 못하면 그 사람은 안에서부터 비어 간다는 뜻이다. 남이 보기에 대단한 의미들로 채워진 삶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가 굳이 설명되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남지 않아도 괜찮다. 그 선택이 나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만족한 삶, 어쩌면 그게 진짜 내 사람의 의미를 찾는 순간이 아닐까.“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다산 정약용, 이근오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