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쉬어야지

~1월, 전시과정

by 미음스토리

1월 19일. 오늘이다.


내 삶이 원래도 느슨한 편은 아니지만 1월은 쳇바퀴 돌리듯 훅- 지나왔다. 백수가 제일 바쁘다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평소 직업을 적으라는 란에는 항상 ‘주부’라고 적는다. 주부라도 되어 다행이지 그것도 아니었으면 ‘백수’라고 적게 될 것이다.


백수가 이렇게 바쁠 일인가.


1. 박웅현의 <여덟 단어>로 2026년을 시작하며 매일 아침을 ‘자존’, ‘본질’, ‘클래식’을 되뇌며 나를 마주하고 세상을 마주했다. 연말이나 연초, 혹은 마음이 어수선할 때마다 찾는 나의 인생 책이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걸 보면 책에 실린 지혜들이 나에게 완전히 체득되진 못한 것 같다.


2. 도자기 전시가 시작되었다(2026.1.14-25). 전시의 큰 주제 <계절>에 맞춰 나의 작품은 <My Little Forest>이다. 물레로 빚은 도자기 화분에 동백과 화백, 그리고 추상화를 담았다. 그리고 작품에 맞는 분위기를 최대한 내보고자 여러 가지 장치들을 추가시켜 나갔다.


1) 작품 뒤에 걸 수 있는 느낌의 천을 찾으러 대구 서문시장에 갔다. 혼자서 몇 바퀴를 돌다가 결국은 지인의 도움으로 원하는 질감의 천을 찾아낸다. 나뭇가지를 천에 걸기 위해 또 다른 지인의 집에 가서 미싱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천을 걸 나뭇가지는 7살 아들이 아빠와 함께 간 산에서 직접 주워다 줬다.


2) 작품에 맞는 곡을 직접 썼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긴 했지만 그곳에서 멀어지고자 했던 나이기에 ‘작곡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이끌림의 법칙처럼 음악에 다시 끌리기 시작했고, 도자기 선생님의 개인전 때 처음으로 곡을 써서 선물로 주게 되는 귀중한 경험을 했었다. 그 뒤로 한 번 더 쓰게 되었고, 이번 전시를 위해 세 번째로 곡을 쓰게 된다. 전문적인 작곡가가 아닌 취미 작곡생으로써 곡을 쓴다는 것은 새롭게 배워나가야 할 것도, 헤쳐 나가야 할 것도 너무나 많았다.


3)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전시이기를 바랐다.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내면의 무언가를 찾고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개인 팜플렛을 제작하고 전시실 한편에 ‘사유의 공간’을 작게 꾸몄다. 연필과 종이를 비치하고 작품의 메시지와 결이 맞는 책 <멈춰서, 혼자서>_윤동희 산문집을 두었다. 그리고 작곡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큐알코드도 비치해놓았다. 개인 전시회였다면 스피커를 비치해 놓았겠지만 단체전이기에 그러지 못했다. (개인전 때는 곡도 여러개쓰고 음향도 빵빵하게, 영상까지 준비해 놔야지..)


4) 작품 설명을 쓸 때, 나를 내세우며 ‘제가 이렇게 준비를 했어요.’보다는 작품을 통해 사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름대로 시를 적었다. (ㅋ) 쑥스럽지만 그런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그리고 시를 프린트할 수도 있었지만 조금 더 친숙하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에 스프링노트를 구입해 만년필로 직접 썼다.


5) ‘사유의 공간’에 작품과 결이 맞는 전등을, 방향제를, 의자를 추가로 구입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관객들에게 ‘이런 걸 다 알아주세요.’ 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쓴 이유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다. 아마도 그랬기에 나를 조금 더 뾰족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3. ‘본질’과 ‘아름다움’의 키워드를 계속해서 마주하게 된다. <여덟 단어>로 시작되었던 ‘본질’이 점점 더 넓게, 농도 깊게 파고 들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1) 독서모임 ‘엄꿈독’의 <시대 예보: 경량 문명의 탄생>_송길영

2) 데스커 라운지 강연 <쓸모없는 아름다움을 믿는다는 것>_베를린 에스프레소 바, 김종원

3) 성장 모임 ‘프로젝트 하이’의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_마스다 무네아키

4) 전시 준비를 하며 뮤즈를 통해 알게 된 <멈춰서, 혼자서>_윤동희



이 준비를 해오며 내 머릿속은 한 시도 쉰 적이 없었고, 수면을 4-5시간밖에 못했다. 운명처럼 마주한 ‘본질’과 ‘아름다움’을 기꺼이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피곤하다고 등 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계속해서 예민했고, 유치원 방학과도 겹쳐 아이에게 화도 많이 냈던 것 같다.


이틀 전이었던 1. 17. 도자기 오픈식을 마지막으로 이제 진짜 쉼이 허락되었다. 유치원 방학도 끝이 나고 오늘 등원하게 되면서 정말 쉴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정말 오랜만에 수면시간도 9시간을 채웠다. 드디어 쉬는 날이다.


나는 지금 단골 카페 [플리웍스]에 와 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바로 카페로 왔다. 사장님께서는 나의 음악을 카페에서도 들어볼 수 없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부끄럽지만 흔쾌히 링크를 보내주었다. 그랬더니 음악을 틀어주신다. 손님들에게 음악과 나를 소개해 주시기도 한다. 하하…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어지는 나의 삶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대할지가 준비되어 있다면, 세상은 그렇게 흘러갈 수 있도록 기꺼이 허락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감사할 뿐이다. 잘 달려와준 나에게도 고맙다. 오늘은 정말 기꺼이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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