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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 Apr 13. 2024

커피를 못 먹는 어른

우울에 대한 단상

9시에는 일어나겠다고 호언장담한 친구가 11시에 눈을 떴다. 나는 그 애보다 겨우 15분쯤 일찍 일어났다. 오래오래 걷겠노라 마음먹은 하루가 버스에 오르게 됐다.

첫 끼니로 먹은 게장은 아주 유명한 곳이었다. 온라인 입소문, 그러니까 바이럴이 많이 된 곳이었다. 나는 대학생 때 잠깐 블로그 홍보 원고 쓰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탓에 온라인에 공유되는 대부분의 후기를 의심하고 보는 편이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우와. 내가 먹어본 게장 중에 제일 맛있는 곳이었다. 너무 거창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게장의 이데아 같았다. 너무 짜지 않고, 텁텁하지 않고, 달고 속이 꽉 찬 게. 나는 간장게장 한 마리와 양념게장 반 마리, 딱새우 하나와 전복장 한 입을 겨우 먹었고, 내가 해치우지 못한 것들을 아쉬워하며 가게를 나섰다. 내가 조금 더 먹는 사람이면 좋았을걸.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다. 우산을 사기 애매한 강수량과 동선이어서 그냥 조금 맞으며 걸었다. 서점에 들어갈 때에는 비가 내렸는데, 나올 적에는 해가 비쳤다. 굳이 우산을 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점 주인은 낯을 많이 가렸다. 우리를 살짝 등지고, 서점을 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살짝살짝 따라 부르며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표지에 저자의 친필메모가 적힌 책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대부분이 에세이와 여행수기였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을 하나씩 열어보고,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을 펼쳐보고, 그러다가 생각했다. 내가 읽지 않을 책들이 많다, 좋네.


지면을 채우도록 활자를 토해내는 이들 태반은 우울과 동거 중인 이들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우울을 보는 일이 힘겨워 몇 번이나 책을 내려놓았다. 그들이 우울을 직면하고, 뒤따르는 무력감을 떨쳐내고, 세상의 조명 아래 낯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기꺼운지 안다. 내가 그 활자화된 경험을 삼키지 못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아주 운이 좋았다. 짧은 삶에 아동학대와 가정폭력과 학교폭력과 데이트폭력이 모두 지나쳤는데, 운나쁘게 찾아온 그들이 내 속에 진득이 머무르지는 않았다. 운이 좋았다. 딱 내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불운이어서. 흘려보낼 수 없는 무게는 아니어서.

우울이 담긴 책에는 나보다 아주 조금 운이 나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감당하기 무거운 불운이 찾아온 이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와 나, 세상에 단둘만 남겨지면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이야기에 갇히는 것 같다. 내가 아는 불운과 감정, 잠깐 나를 찾았다가 떠난 설움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쉬이 떠나가서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면 더 불안해진다. 행운은 얻어걸린 것뿐이고, 내가 나여서가 아니라 정말 우연일 뿐이어서 나는 발밑이 흔들리는 감각을 느낀다.

지면을 채우고 서고를 채울 정도로 쌓인 다양한 우울을 보며, 나는 시대의 감정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내가 살아가는 시대, 우리 세대의 감정은 우울이겠지. 다행이다. 속에 들어온 우울을 세상에 내보이고, 서로 나누고, 그래도 모두 괜찮은 세상이라서. 우리 시대의 감정이 우울이어서, 시대의 벗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서.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소설책을 한 권 샀다. 아직 읽지는 않았다.

빵집에 가서 밀크티를 마셨다. 스누피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종의 강아지를 만났다. 밝고 곱슬거리는 회색 털을 매만졌다. 아주 얌전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했다.




이순신광장에서 이사한 소품샵을 찾았다. 돌산대교가 그려진 메모지와 핸드크림을 샀다. 핸드크림은 동백향과 핑크뮬리향 두 가지였다. 핑크뮬리향 성분표에 털쥐꼬리새추출물이라고 적혀있었다.

"털쥐꼬리새? 털쥐꼬리새가 뭐지?"

혼잣말이었는데 가게 주인이 나왔다. 털쥐꼬리새요? 털쥐꼬리새가 뭐지? 우리는 털쥐꼬리새라는 단어를 서른 번쯤 반복했다. 숙소에 돌아와 찾아보니 핑크뮬리의 원래 이름이라고 한다. 털쥐꼬리새.


못 다 쓴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갔다. 바닥에 에폭시 레진을 부어 파란 바다처럼 인테리어 한 곳이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망고스무디를 주문했다.

메뉴판에 당고가 올라간 커피가 적혀있었다. 라떼 위에 크림을 올리고, 그 위에 당고를 얹은 시그니처 메뉴. 쉬이 보기 힘든, 어쩌면 오직 이 카페에서만 팔지도 모를 메뉴였다. 애석하게도 나는 커피를 마실 수 없다.

커피를 먹으면 배가 아프다. 사람들에게는 카페인 불내증이라고 설명하는데, 카페인이 들어간 다른 음료들은 잘 마실 수 있는 걸 보면 아마 다른 이름의 증상이겠지. 이름이 뭐든 중요하지 않다. 나는 커피를 소화하지 못한다. 타자화할 수 없는 비극과 우울을 소화할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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