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을 옮겼다. 이사는 그동안 쉽사리 풀지 못한 나만의 숙제였다. 마음의 형편이 조금 나아진 작년 봄. 드디어 15년 만에 미루던 계획을 실천하게 되었다. 막상 진행하고 보니 영영 오르지 못할 것 같은 산들이 힘에 겨웠고 무서웠다. 나는 그 힘듦의 원인이 잃어버린 손 한 짝이라 여겼다. 그 손 한 짝을 대신할 그 무엇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주는 위로도 바닥이 났다. 나는 더 나약해졌고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었기에 피신 가듯 매일 그곳으로 달려갔다. 왜 내 어깨는 늘 무겁냐며 눈물을 쏟은 지 한 달이 지나서야 눈물샘이 말랐다. 나는 침묵하면서 또 한 달을 교회에서 보냈다. 그때쯤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설움에 빠져 볼 수 없었던 그들이 자주 내 눈에 보였고 측은했다. 동병상련 같은 마음인지 나도 모르게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남을 위한 기도가 반복되다 보니 내 설움은 그래도 견딜만한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욕심을 움켜쥔 것이 내 의지였듯, 놓는 것도 내 의지에 있음을 알게 되면서부터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팔고자 했던 옛집은 남편이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집이다. 작아도 경제적 부담이 없는 곳에서 남편의 투병을 위해 결정했지만 나만 혼자 오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집은 이사 오는 순간부터 남의 집에 세든 사람처럼 불편했고, 새집임에도 정이 가지 않았다. 그의 짐을 15년 동안 풀지도 않았다. 이젠 미안함에서 벗어나야 했고, 지하실을 침실로 사용하는 큰애에게 문 달린 방을 주고 싶었다. 집이 주는 다정함을 다시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오래된 숙제를 올해엔 꼭 풀고 싶었다. 집을 마켓에 내놓았을 즈음 부동산 경기는 호경기로 일주일이면 매매가 되는 시기였다. 내 집도 당연히 금방 나갈 것이라는 자만심에 마켓에 내놓기도 전에 이사 갈 집을 먼저 계약했다. 이사 갈 집을 보며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의 계획이 뿌듯했고 행복했다. 그러나 마켓에 나온 우리 집은 일주일이 넘어도 보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사 갈 집을 계약할 때 만약에 해약해도 중도금을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을 알고도 사인했던 터라 더 불안했다. 그 황금기 같던 매매가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두 달 사이 가격을 두 번이나 내렸고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주 오픈 하우스를 했다. 매월 중도금을 내야 하고, 집값을 또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이사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금전적 손해와 이사에 대한 소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좌절감에 허탈했지만 모두 포기하니 의외로 마음이 편해져 그동안 밀린 잠을 며칠 푹 잤다.
해약한다는 메일을 빌더에 보냈다. 며칠 후 빌더에서 중도금 없이 한 달 연장해준다는 희망적인 메일이 왔다. 비록 한 달이지만 기쁜 마음에 여느 날처럼 교회로 달려가는데 부동산 중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집을 보러 가던 손님이 내 집을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기도가 끝나고 문을 나서는데 전화가 또 왔다. 부동산 중개자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손님이 계약서를 넣고 싶다 하고 전에 한번 봤던 손님이 다시 집을 보겠다는 내용과 또 다른 손님이 집을 보겠다는 스케줄까지 있다는 소식이었다. 주택건설회사 측 담당자에게 연장 메일을 받고 한 시간 안에 벌어진 일들은 나에겐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계약서는 집값의 80%를 현금으로 내는 대신 3 주안에 집을 비워져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 후 일주일 사이 두 팀의 손님도 계약서를 넣고 싶다는 연락까지 받았다. 모게지 융자가 안 되는 상황을 많이 봐 왔기에 80%의 현금을 낸다는 첫 번째 손님으로 결정했다. 문제는 새집이 완성될 때까지 3개월 동안 머물 곳이다. 나와 막내는 직장 상사의 지하 방에서, 큰애는 작은 아이 집에서 살아야 했다. 부엌 없는 남의집살이가 쉬운 건 아니지만 몇 달 살 아파트를 구하는 건 더 어려웠다. 몇 달이라도 살 수 있도록 허락한 상사와 그 가족이 고마웠다. 드디어 12월 새집 열쇠를 받았다. 문을 여는 떨리는 손 위로 눈물이 쏟아졌다.
무거운 숙제만 겪어온 세월에 야속하다 했던 지난날. 그것이 숙제이기 때문에 풀 시간이 있었던 것을 나는 몰랐다. 숙제를 풀면서도 잃어버린 손만 원망했고, 그 손 대신 누구라도 대신해주길 갈망만 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손은 먼저 간 그의 손이 아니었다. 움켜쥔 것이 너무 많아 펼 수 없었던 내 손이었다. 새해 아침. 정성스레 만든 설음식 몇 개와 막걸리를 들고 아이들과 산소에 갔다. 막걸리를 묘 주위에 뿌리면서 나의 손에 당신을 대신할 기운을 준 것임을. 그래서 숙제를 풀 수 있었음을 고백했다.
내가 만든 연하장을 받은 아이들이 카드에 적힌 “토닥토닥” 뜻을 물었다. 나는 두 손을 비벼 뜨거운 열을 만든 후 “토닥토닥”이라 말하며 아이들의 등을 토닥였다. 아이들에게 가족의 사랑과 용기, 감사와 믿음 등 많은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챘을 것이다. 많이 사용한 오른손이 둔해져 요즘 왼손으로 숟가락질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서툰 두 손을 하루에도 수십 번 비벼 따스한 기운을 만들어 “토닥토닥” 내 가슴을 토닥인다. 그 기운은 내 의지에서 나온 나의 몫이다. 둔감해진 손과 서툰 손의 활약이 궁금한 한 해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