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기차 타는 장면을 수없이 꿈꾸었다. 드디어 런던에서 파리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의 좌석은 두 사람씩 앉는 의자가 앞좌석과 마주 보이게 되어 있다. 나는 일행과 떨어져 외국인 부부와 마주 앉았다. 독일인이라 말한 그들과 마주 앉아 가는 게 어색하지만 여행자라는 동질감이 주는 편안함에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기차 소리를 좋아해 풍경을 보기도 하고 책을 읽었다. 여행사에 싸준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한식을 좋아한다는 독일 부부의 그 말에 음식까지 알려진 나의 조국이 뿌듯했다. 방탄소년단을 아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부부는 파리에 도착할 때까지 종류별로 싸 갖고 온 많은 양의 미니쳐 술을 마셔 약간의 취기가 있어 보이기도 했고 파리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와 물어보진 않았다. 그들은 많은 양의 미니쳐 술도 모자랐는지 커다란 와인 한 병과 플라스틱 와인잔을 꺼내 따라 마시는 모습이 나름 부럽기도 해서 하마터면 한 잔 달라할 뻔했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파리는 런던의 묵직함과 비교가 될 정도로 우아하면서 멋을 아는 큰언니 같다. 나는 큰언니라도 된 양 조신하지만 우아한 자세를 취하게 되고 발걸음에 절제가 생겼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위치한 성당에 들러 가족과 나 자신이 여행자가 되었다는 감사함에 촛불 봉헌을 했다. 예술인들이 사랑하는 이곳에 조금이라도 예술의 정기가 스며들기 간절히 바라며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몽마르트르 언덕을 내려오면서 보이는 시내는 남산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시가지가 생각날 만큼 처음 보는 장면인데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버스를 타고 박물관으로 가는 도중 프랑스 파리 최고의 카바레로 유명한 물랭 루주라는 간판이 보여 반가웠다. 비록 그곳에서 화려하고 매력적인 뮤지컬 관람은 못 했지만 물랭 루주의 빨간 풍차를 본 것만으로 오래전 티브이에서 본 캉캉춤이 떠올랐다.
아주 어릴 적 적어 놓은 나의 버킷 리스트 100가지 중엔 에펠탑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하기가 있다. 제일 오고 싶었던 장소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오지 못했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가슴이 뛰었다. 낮과 밤의 에펠탑은 정숙함과 화려함의 상반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배를 타고 저녁의 에펠탑을 볼 땐 비가 내렸다. 우산과 비늴모자까지 쓰고 선상에서 보는 것이 나름 운치도 있었고 반대편에서 오는 여객선과 마주칠 때마다 양쪽 여행객들의 환호성은 여행의 재미를 더했다. 이곳에운항하는 배가 몇 척 인진 몰라도 잦은 환호성은 바람과 비로 추웠지만 추위도 잊게 했다. 점점 멀어지는 에펠탑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 선상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버킷 리스트를 이행하지 못했으니 또 이 곳에 올 구상을 하는 나 자신을 보고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몇인데?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제일 많이 모인 듯 입장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많은 인원이 관람해야 하기에 유명한 작품을 오래 감상할 수는 없는 단점은 있지만 그래도 모나리자를 보고 온 것은 다행이고 행운이다. 생각보다 사이즈가 작은 모나리자는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더 온아하고 사실적이며 아름다웠다. 나의 등 뒤엔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오래 볼 수 없는 아쉬움은 있지만 오리지널을 본 것만으로 만족했다.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돌아보면서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느꼈듯 그들도 약소국가를 지배했던 곳에서 갖고 온 유물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나라의 유물이 전시된 것에 대해 아쉬움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지난 세월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또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선조들의 지도력으로 본국의 유물까지도 잘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