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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Won Jul 25. 2020

새로운 경험

 

  한동안 소식이 끊겨 걱정했던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날 아침 반가움과 불안한 마음에 그녀가 알려준 주소로 달려갔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를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새로 시작했다는 가게엔 그녀가 평소 소장하던 소품들이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어 예전 그녀의 집을 보는 듯 친숙했다. 가게는 아직도 정리를 하고 있는 듯 조금 어수선했다. 그녀는 봇물 터진 듯 말하고 나는 듣고 또 들었다. 작고 헐거운 가게처럼 헐거웠던 그녀의 속마음을 듣자 오늘 하루만이라도 옆에서 응원하고 싶었다. 가슴속 설움이 조금 풀렸는지 그녀가 예전처럼 밝아졌다. 그때부터 우린 관광지에 온 사람들처럼 웃기 시작했다. 가게의 잡다한 일을 도와주면서 어쩌다 오는 손님 덕에 그녀의 새로운 터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듣게 되었다. 그녀의 가게는 관광지역에 있다. 관광 지역답게 가게 주변엔 식당과 상점들이 많듯 거리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린 간단한 점심을 가게 안에서 먹었기에 저녁은 길가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그녀의 새로운 경험에 용기를 주고 싶었다. 

 

  이 지역의 식당은 코로나 19로 인해 밀폐된 공간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자 오후 3시부터는 부분적으로 차량의 통행을 금지하고 거리에 식당 테이블을 놓고 영업을 한다고 한다. 악사의 기타 연주와 노래를 생음악으로 들으며 길가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거리 한복판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약간의 알코올이 가미된 음료와 크랩 케이크 그리고 튜나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연인들의 키스 장면과 춤을 추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 남녀 커플이었다. 아침보다 웃음이 많아진 그녀는  관광객처럼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앉은 채로 몸을 흔들었다. 그녀의 맑은 모습이 보이자 나는 거리의 경쾌함과 익숙한 음악을 매일 듣게 되면 그녀의 아픔이 치료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이 거리가 더 좋았다. 밤이 깊어지자 거리에 매달린 꼬마전등은 여러 색으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우리도 밀폐된 감정을 뿜어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표준인 6피트 간격마다 테이블이 있기에 한국말로 감정을 풀어도 시선을 걱정하지 않아 좋았다.  외로움을 잘 타는 그녀에겐 이 곳이 안성맞춤인 장소 같다.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다가도 가게를 기웃거리는 손님이 보일 때마다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짠하기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음악을 들으며 분위기에 빠져 있을 때쯤 반바지 차림의 백인 남성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30대로 보이는 아들과 60대로 보이는 아버지는 자전거를 주점 앞에 두고 맥주를 마시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아름답고 신선했다. 내가 부러운 듯 쳐다보자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이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난 두 엄지를 높이 올리는 것으로 답했다. 맥주를 다 마신 그들이 다시 자전거 타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고 있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지붕이 둥그런 건물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녀에게 묻자 성당이라는 말에 나는 마시고 있던 음료수를 높이 쳐들며 "주님 감사합니다"라 고 말한 후 잔에 남은 음료수를 다 마셨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조금 어두워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순 없었지만 어둠 속에서 들리는 구두 소리엔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녀가 새로운 삶 속에서 잘 견디는 모습을 봐서인지 내 발걸음도 가벼웠다. 나는 그녀가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살길 바랄 뿐이다.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왜 그런 게 없겠어요. 그런데 세상은 남의 살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러니 자존감을 잃지 말자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다. 그녀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삶이 대견하기에 그 새로운 곳에서의 경험들이 눈물보다 웃음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 날밤 나는 한 달 전부터 사고 싶어 망설이던 자전거를 주문했다.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오늘 봤던 그 백인 부자처럼 아나폴리스의 메인 스트리트를 달리는 상상을 하면서 주문서를 꾹 눌렀다. 빨간 자전거는 나를 태우고 새로운 경험을 보여 줄 것이다.(7.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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