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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우 Apr 06. 2022

美優

2020년 4월의 <계속해보겠습니다>

미우입니다.


말해보겠습니다.


미우美優라고 씁니다. 

아름다울 미에 넉넉할 우, 학교에서 성적을 매길 때 사용하던 수우미양가의 미와 우입니다. 

미우, 어떠한 뜻의 한글 단어인지 궁금해하기도 하지만 한자의 조합입니다. 이런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만 28년 전의 광희 씨, 나의 아빠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평소 센스가 부족한 것 같은 광희 씨의 함량 100퍼센트의 이름이라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미우라는 이름은 미우라고 말하기에 좋습니다. 

요즘에서야 어떠한 닉네임이나 가명으로, 혹은 반려동물의 이름으로 조금 흔해진 것 같지만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익숙한 음절의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라 

항상 이름이 뭐라고? 몇 번이고 되묻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받침이 없어 매끄러운 어감이지만 힘주어 미. 우.라고 발음하곤 했습니다. 


이따금 미우라고 자칭합니다. 자의식이 굉장한 사람이라는 새침한 지적을 들은 적도 있지만 

그 정도의 자의식을 불쾌하게 여기고 지적하는 자의식도 상당히 굉장하다, 라는 것이 미우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20대의 봄이 옵니다. 


미우는 요즘 삶의 방향에 대해서 자주 생각을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때부터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엄격한 청소년 시절을 거쳐 굉장히 편협하고 이상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던 갓 스물의 어떤 날에는 '미우'를 이루기 위해서는 엄격한 도덕적 수준의 어떠한 행동들을 해야 하고 기준을 지켜야 하고, 그것을 깨트리게 된다면 더 이상 내가 아니다,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어떠한 것들은 어겨지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스트릭트한 기준을 정했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오래 고민해도 설득될만한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어렸기 때문에 했었던 생각들에 고착되어 나를 아프게 만들기만 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알을 깨고 나온 기분이었습니다.


 


22살의 미우는 조금씩 변해갈지라도 삶의 방향만은 잃지 말자. 고 일기장에 힘주어 썼습니다. 

24살의 미우는 이룰 수 없더라도 지향함은 바래지 않기.라고 덧붙였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고 있습니다.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뭐든 더 잘하고 싶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서 미우를 만족시키고 싶습니다.

미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끔 말합니다. 너무 열심히 하려고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고, 지금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언제나 진심입니다. 

어떨 땐, 오히려 타인이 나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자 묘하게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떤 때에 멈추어 사라져 버린 누군가들을 떠올려 봅니다.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 이라지만 기왕 태어나 살아야 하는 시간 최대한으로 행복하고 싶어 오늘도 애써봅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우리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덧없고 하찮아도, 애쓰는 각자에게는 본인의 삶이 우주의 전부일 테니까요. 



꽃망울이 터지고 바람이 포근합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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