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띠리리, 띠리리”
" 엄마, 빨리 와! 나는 벌써 왔다고! ”
킥보드를 탄 아이가 소리친다. 유모차를 끌고 헐레벌떡 내가 따라 달려간다. 신발 한 짝이 안 보여서 잠시 돌아온 길을 둘러보다가 앞서가는 첫째를 따라잡지 못했다. 유모차에 타고 있는 둘째가 또 신발을 오다가 벗었나 보다. 하필 건널목 반대편이 그늘이라 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결국 내가 도착했을 때에 신호등은 빨간불로 바뀌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더 거세진 햇볕은 마치 이런 상황을 더욱 열불 나게 만들고 있다. 출발을 기다리던 레이싱카들처럼 서 있던 차들도 거세게 지나간다.
' 아이씨, 길 잘못 들었네. 신호가 왜 이렇게 느린 거야.’
‘ 또 빨간불이야. 오늘따라 되는 일이 없네’
더운 차 옆의 공기와 함께 열을 내는 운전자도 선팅된 유리 뒤로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 옆에서 뙤약볕의 횡단보도를 덥다고 칭얼대는 둘째와 자기보다 느리게 도착했다며 핀잔을 주는 첫째의 칭얼거림을 서라운드로 들으며 서있다. 초록 불만 기다리고 있던 운전자들의 원성에 나의 투정을 괜스레 얹어본다. 내가 오자마자 바뀐 신호등을 원망하려 뜨거운 햇볕보다 더 쨍한 눈빛으로 째려본다.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과의 밥 전쟁이 시작되었다. 먹은 것보다 흘린 게 더 많은 것 같은 식사시간이 끝났다. 식탁 밑에 흩뿌려진 밥풀을 키친타월로 바닥에 밥풀의 끈적거림이 남지 않게 닦는 것에 몰입한다. 마지막 밥풀을 떼려고 하는 순간 , 둘 중 누구인지 울음이 터졌다. 하, 일단 남은 밥풀보다 애들이 먼저다. 다쳤는지 싸웠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다행히 소파 밑으로 들어간 작은 공 때문에 둘째가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청소하려고 냉장고 옆에 세웠던 청소 밀대를 소파 밑으로 넣어서 휘적휘적 의미 없이 저어 본다. 소파 밑의 공을 쥐어 준 뒤, 아까 못다 한 밥풀을 떼려는데 이런. 첫째가 그새 밥풀을 밟고 지나갔다. 밥풀을 밟은 채로 매트 위로 올라가서 붕붕 뛴다. 그렇게 밥풀은 쿵쿵 거실 매트와 소파와 바닥에 어질러진 책 위로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라진 밥풀이 허무해질 찰나, 아침에 돌렸던 세탁물이 생각났다. 젠장. 이미 세탁은 1시간 전에 끝나있었다. 이 더위에 벌써 쉰내가 난다. 다시 세탁물을 돌려본다. 깜빡깜빡하며 다시 켜지는 세탁 시간 1:30분. 소중한 1시간 13분을 날려먹고 다시 1시간 30분을 더 지나야 완성된다니. 허망하게 3시간을 잃은 것 같다. 3시간짜리 세탁까지는 아닌데, 이런 실수를 하는 나를 잠깐 원망해본다.
아까 낮에 본 신호등이 스쳐 지나간다. 남들이 봤을 때 그냥 서있는 신호등처럼, 나도 그냥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21초의 일들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붉으락 푸르락 하는 신호등의 얼굴이 내 얼굴 같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억울함이 담긴 얼굴이랄까. 피할 곳도 없고 그늘도 없이 오롯이 햇볕과 나의 원망의 눈빛을 받아내던 낮의 신호등이 떠올라 힘이 빠진다. 그래 너의 억울함은 내가 알 것 같다. 깜빡깜빡. 시간을 지켜서 초록불을 켜고, 빨간불을 켠다. 21초의 간격으로 매일 밤낮으로 여기에 서서 시간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누구는 느리다고, 어느 누군 빠르다고 너에게 뭐라 하는구나. 그래 너도 억울하겠다. 할 일을 하고 있는데도 왜 더 빠르게 안 바뀌냐고, 왜 더 늦게 바뀌냐고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말이야.
그렇게 여러 번의 울음과 투닥거림이 지나다 시계를 본다. 아직 저녁이 되려면 멀었다. 집안에서 보채는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 장을 보러 다시 밖을 나선다.
“엄마, 저기 봐! 10을 세면 초록불로 바뀐다! 우리가 빨리 와서 빨간불이었나 봐!”
멍하게 신호등을 기다리며 서있는 나를 아이가 툭 치며 출발 신호를 보낸다. 아이는 해맑게 초록불을 외친다. 나도 다시 21초의 억울함이 풀어지고, 내 마음에도 초록불이 켜졌다. 그냥 있는 사람도 없고 당연한 사람도 없다. 마치 신호등처럼 늘 그 자리에 서있어 주는 사람이 있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