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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Sep 24. 2021

난 오늘 키카 쌈닭이 되었다

키즈카페에서 배운 엄마의 인생

  

오늘 육아는 안녕하신가요. 저는 어제의 육아가 안녕하지 못했답니다. 육아라는 말은 아이를 키운다는 말에 나를 키운다는 말이 더해졌다는 생각, 해본 적 있으세요?

 

 어제 저는 그 말을 실감했어요. 저는 평화주의자입니다. 갈등을 피하고 싶어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기도 하죠.


 중학교 때 제가 자율학습에 당번인 적이 있었어요. 그 시간에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에게 주의를 주고 이름을 적어서 선생님께 명단을 제출하는 일을 맡았었어요. 다들 조용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두 명이 시끄럽게 이야기를 했죠. 조용하던 차라 더 티가 났어요.


 그 두 명은 소위 우리 반에 최고인 일진이었어요. 거리낌이 없던 그 아이들은 오히려 더 신경 안 쓴다는 듯이 떠들기 시작했고, 다른 친구들은 저에게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죠. 거기에서 저는 고민을 했습니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차마 칠판에 나가서 그 아이들 이름을 쓸 배짱은 없었어요.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몇 시간처럼 지나면서 나갈까 말까를 번복하며 셀프 용기를 담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서울에서 온 전학생이 나오더니 칠판에 그 일진 짱 2명의 이름을 썼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자리로 가서 공부를 했죠.


 와. 진짜 멋있었어요. 그 아이는 일진 따위는 무섭지 않은 요즘으로 치면 자존감이 높은 아이였죠. 그 모습을 본 일진도 다시 조용해졌어요.


 아 그때 뭔지 아시죠? 전 졌어요. 권력에 굴복한 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국어 지문이 제 눈에 아른거렸어요.


 그때 평화주의자의 저의 민낯을 보게 된 거죠. 그 이후로 저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왔고, 그게 편했습니다. 누군가의 멋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갈등은 해결되기 마련이라는 나름의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에요.


 왜 중학교 때의 이야기를 꺼내냐고요? 그때 칠판에 이름을 쓰지 못하는 제 모습. 그 모습의 민낯을 저는 아이와 놀이터를 가면서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었어요.


2살 3살 때는 아장아장 걷고 하니까 놀이터가 좋아도 옆에서 붙어서 안전하게 놀게 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4살이 되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엄마, 사람이 많다. 우리 다른 곳으로 가자”


 놀이터는 아이들이랑 함께 노는 곳인데  왜 아이가 이런 말을 했을까요? 아이가 형, 누나들에게 치이면서 부딪히는 갈등을 피하려고 무심결에 저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던 거죠.


 왜냐면 4살은 미끄럼틀을 계단으로 올라가서 슝 하고 내려오지만, 6살 형아들은 미끄럼틀을 타고 거꾸로 올라가기도 하고, 계단 봉을 미끄럼틀처럼 타기도 하니까요.


 그 아이들에게 위험하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그 아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모험을 즐기고 있으니 그 말이 먹힐 리가 있나요.


 “아줌마, 저는 이렇게도 탈 수 있는데요?”

 “그런데 미끄럼틀은 위에서 내려오는 거야. 위에서 보면 부딪히잖니.”

“저는 거꾸로 올라가도 안 부딪혀요”


이런 답 없는 되돌이표 실랑이를 나이 40 먹어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형아나 누나들이 놀고 있으면 조금 사람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하는 게 제가 편했던 거죠.

 

 그런데 아이가 정작 그렇게 하자고 하니까, 예전에 제 모습이 생각났어요. 그렇게 평화주의자로 사는 것이 한 켠에는 떳떳하지 못했던 제 마음이 떠올라서일까요.


 나는 못했는데, 아이는 해내길 바라는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중 하나가 이거구나 싶었어요.

 

 나는 비겁한 평화주의자로 살았는데, 아이는 이렇게 피하기보다 부딪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요.

 

마치 중학교 때 일진의 이름을 칠판에 당당히 써냈던 전학생의 그 아이의 모습으로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 놀이터를 갈 때마다 저만의 싸움을 합니다.

 아이에게는 들키지 않도록 태연한 척 하지만, 속 마음은 조마조마해요. 남한테 싫은 소리 하는 것도 저에겐 큰 용기인데, 그것도 6살 어린아이에게 나이스 하게 싫은 소리를 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요.

 


 그렇게 저만의 놀이터 트레이닝을 하고 있던 중에 어제 가장 최종 보스를 만났어요. 바로 키즈카페를 갔거든요.

 

 체육놀이를 하는 키즈카페라서 도전적인 장소들이 많이 있었어요. 5살인 저희 아이는 아직 조금 버거운 징검다리를 같이 건너고 있었어요.

 

 아이의 속도로 같이 건너고 있었는데, 옆에 8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뒤에 있는 거예요. 바로 옆에 비어있는 징검다리들이 많은데 굳이 저희 아이 뒤로 서더라고요. 저희 아이가 앞에서 막혀있으니 너무 느리다며 한숨을 쉬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무언의 사인을 보던 아이가 결국 그 말을 했습니다.


“아 정말, 너무 느리잖아. 답답해. 너 때문에 다 막혀있잖아”

“미안해, 아직 아가라서 누나보다는 조금 느리지, 옆에 징검다리가 2개나 비었으니까 저기로 건너면 더 빠르겠는데? 아직 얘가 건너고 있는 중이라서 뒤에서 있으면 아마 더 기다리게 될 거야”


 어금니 깨물고 몇 번의 권유를 했지만, 아이는 굳이 이 다리를 건너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무언의 눈빛 공격과 한숨들이 화살처럼 저에게 계속 꽂혔지만 저는 여기서 물러나고 싶지 않았어요.


 옆에 비어있는데 굳이 와서 이런 시비를 거는 건 그냥 관심 끄는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데, 여기 페이스에 휘말리면 안 된다. 이 상황에서의 성공경험을 저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다. 저에게 비장함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하 정말 내가 여기 와서 8살이랑 싸워야 하는 것인가. 현타가 오더라고요. 그런 실랑이 사이에서 이 아이의 한마디가 저의 뇌관을 건드렸죠.


“아니 왜 아기들이 여기에 오는 거야,

이거 하나 빨리 건너지도 못하면서”


 이건 못 참죠? 그때 저희 아이가 저를 보는 거예요. 아이가 말은 못 하고 눈치 보며 자리를 비키려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볼 때  그때 결심했죠. 여기에서 비켜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비겁한 평화주의자의 엄마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 부정에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자.


“여기는 5살도 출입 가능한 키즈카페야. 다 함께 노는 곳이고. 그리고 너는 8살이라고 했으니까 여길 건너는 게 쉽겠지만, 이 아이는 5살이야. 얘도 지금 건너는 연습을 해야 8살이 되었을 때 너처럼 빨리 건널 수 있게 되겠지 그걸 위해서 지금 이렇게 여기 있는 거야. 반대로 말하면 너도 5살 때 지금처럼 빨리 건널 수는 없었겠지. 그리고 너도 만 오천 원 내고 들어온 것처럼 이아이도 만 오천 원 내고 들어왔어.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똑같아. 못 들어오는 곳 들어온 거 아니고, 너 앞에 방해하라고 들어온 것도 아니야. 빨리 가고 싶으면 여기 옆에 똑같은 징검다리 2개가 아까부터 비어있었어. 그쪽으로 가(부들부들)”


 아 만 오천 원 드립은 얘기하고 보니 조금 치사했다 싶긴 하네요. 그만큼 저도 주먹  꾹 쥐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말을 쥐어짰었나 봐요. 아이는 40 먹은 엄마가 어금니 깨물고 조곤조곤 얘기하는 거에 당황했는지, 조용히 징검다리를 물러나더라고요.

 

 휴, 쉽지 않은 싸움이었어요. 8살이랑 말싸움하면서 격을 지키기란 너무 어려운 일인 거 아시죠?

 

하지만 저는 그때 느꼈어요. 중학교 때 쓰지 못했던 일진 아이의 이름을 칠판에 쓴 기분을요.


 나를 넘어선 느낌이 이런 건가 했어요. 예전 같으면 그냥 피해버리고 말았을 일들이죠. 그런데 , 이 태도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태도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니 다르게 여겨지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어제 저는 키카 쌈닭이 되었어요.

이 나이에 키카 쌈닭이 되다니, 정말 육아는 나를 키우는 일이구나 싶어요. 아이가 자라면서 제 안의 어린아이를 만나게 되니까요. 어제는 아직도 14살에 머물렀던 제가 한 뼘 큰 날이네요. 내일 또 이런 날이 온다면 다시 주먹 쥐고  심호흡한 번하고 맞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쓸데없이 진지하게 놀이터에 가는 엄마를 아이는 아직 이해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엄마가 되었기에 해볼 만한 도전이지 않나요. 엄마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바로 조금 떨리는 등짝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당당히 얘기하려고 시도하고 지켜주는 뒷모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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