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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Jun 16. 2021

쓰는엄마

저녁밥상의 흔적이 어지러이 놓여진 식탁을 본다. 전쟁 같은 저녁시간을 끝으로 아이들을 재우고, 그 사이에 말라붙은 밥풀과 아이와 반찬 실랑이의 흔적인 멸치볶음 나부랭이들을 쓱쓱 치워본다. 약간의 간장냄새가 식탁에 남아있는 것 같아 둘째 아이가 장난으로 뽑아 놓은 물티슈들 중에 하나를 골라 한번 더 닦는다.


 노란색 식탁 등만 켜고 노트북을 연다. 향긋한 믹스커피와 함께 열리는 윈도우 창이 반갑다. 마치 나만 아는 아지트로 통과하는 비밀 창문 같다.


 “엄마, 이 꽃 이름 뭔지알아? 

나비평평이야. 

 이것 봐 나비처럼 생겼는데 잎이 평평하잖아. 

그래서 나비평평이야.” 


오늘 아이가 한 이야기를 되짚어보며 타닥타닥 기록해본다. 그렇게 오늘도 아이는 시가 된다. 모두가 잠드는 새벽이 되면 식탁은 나만의 아지트가 되어서 글을 쓴다. 해리포터를 쓴 작가도 거리의 벤치에서 글을 썼다는데, 이정도 식탁이면 근사하다. 내가 읽고 있는 책 몇 개와 노트북을 식탁 밑에 작은 책꽂이에 꼽아 둔다. 아들 둘과 식탁에서 전쟁을 치르며 밥을 먹을 때 힘이 들 때 한숨을 쉬면서 밑을 보면 보이도록. 그리고 그 작은 희망을 맛보고 아이들 과의 육아 씨름에 힘을 얻어본다. 그렇게 나는 쓰는 엄마가 되었다. 이제서야 새삼스레 글이라는 게 남사스럽지만 처음으로 글을 쓰면서 자유롭다고 느꼈다. 둘째 아이의 밤중수유를 하며 깨어 있을 때 처음으로 썼던 글이 워킹맘이었던 이야기였다. 워킹맘이었을때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이야기, 혼자 겪어야 했던 어디에도 없던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배부른 상태로 지옥철로 출퇴근했던 이야기, 지하철 쓰레기통에서 입덧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되짚으며 써내려갔다. 


지금은 워킹맘이 아니지만, 그때의 기록을 시간이 더 지나기전에 남기고 싶었다. 아마 쓰고 싶다 라는 마음이 든 이유가 내 안에 미련이 있었기 때문 일까. 그렇게 기록으로 쓰기 시작했던 글로 그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정리하며 위로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그때의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위로하고 있었다. 그렇게 담담히 풀어나가기 시작하자, 내가 묶어 뒀던 감정과 미련의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런 해방감은처음이었다. 답을 얻기 위한 평가를 받기위한 글이 아니라, 쓰면서 해방되는 기분이다. 


쓰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그 뒤로 일상을 적기 시작했다. 오늘 아이와 하는 말들을 옮기다 보니 그게 시가 되었다. 아이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들, 그리고 전하고 싶은 마음들을 쓰다 보니 시를 쓰고 싶어 졌다. 그렇게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리고 다른 쓰는 엄마들을 만났다. 함께 하기 시작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문법도 문맥도 안 맞지만 매주 한편의 글을 써내려 간다. 쓰는 자유가 있음에 감사하고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해방감이 좋다. 서로의 상상을 엿볼 수 있고 같이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쓰는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가 시가 되는 순간을 보게 되고,  엄마의 글을 아이에게 들려주며 첫 독자가 되는 걸 보기도 한다. 유년시절의 음식의 추억이 담긴 글을 쓰며, 그 음식을 나의 엄마와 함께 나누며 글을 나누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엄마의 글에 답글을 이어가는 아이가 있고, 작가 예명을 벌써 지은 아이도 있다. 그렇게 쓰는 엄마들은 엄마도 아이도 같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용기내서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렁이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나니, 길가의 지렁이도 서사가 있는 징그러움이 보였다. 쓰고 나니 내가 읽었던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어 감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쓰는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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