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화에 대한 뇌피셜적 접근

화에 대한 엄마의 유년기 기억과의 연관관계에 대한 낭설

by 믹스커피

오늘의 육아는 안녕하신가요? 저는 오늘 화가 많이 나는 날이었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필라테스를 그렇게 다녀도 안되던 복식호흡이었거든요? 요즘에는 어느 순간 제가 복식호흡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을 오늘 깨달았지 뭐예요. 그땐 돈 주고 배워도 안되던 복식호흡이었는데 말이에요. 아들 둘을 키우면서 커지는 건 제 목소리인 것 같습니다. 맞아요 오늘은 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저는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애를 낳기 전에는 화가 나도 화를 내고 말아 버려서 까먹어서 일 수도 있갰지만, 아마 화가 날일이 없이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그때에는 제가 화장실 안에서 볼일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갑자기 문을 열지도 않고, 배에 힘을 주고 있는 그 찰나의 순간에 굳이 변기 위에 똥 싸고 있는 나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지도 않았으니까요.


아 물론 이 정도는 화의 축에 끼지 못합니다. 왜냐면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의 똥냄새도 불사하고 오겠다는 귀요미를 어떻게 화를 냅니까? 그냥 똥을 마음껏 못싸는 제 상황이 답답할 뿐 그냥 포기하고 무릎에 앉혀 놓고 응가 응가를 함께 외칩니다. 어느 누가 이렇게 원시적인 사랑을 다 늙은 저에게 보여주겠습니까. 하나뿐인 남편도 똥냄새까지 참아가며 같이 있을 정도의 사랑은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이처럼 잔잔한 짜증 혹은 답답함을 동반한 얕은 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늘은 deep 한 화. 그러니까 딱 내 머리의 선 하나가 끊어진 듯이 소위 야마가 돌게 되는 그런 순간의 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런 순간의 화가 있나요? 제가 화가 나는 순간이 어느 순간 공통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정말 딱 갑자기 야마가 돈다는 속된 말처럼, 딱 그 순간이 오면 화가 갑자기 100킬로의 속도로 치솟는 듯한 느낌이죠. 첫째 아이가 6살이 되면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 순간은 아이가 밥 먹을 때에요. 첫째 아이는 지독 시리 식탐이 없는 아이입니다. 어느 정도 식탐이 없냐면, 과자와 초콜릿도 많아봐야 2개 먹으면 그만 먹어요. 요즘은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놀기 시작하면 다른 친구들은 과자 먹으러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간식 먹으러 오는데, 이 아이는 끝까지 안옵니다. 젤리나 사탕을 준다고 해도요. 그 정도의 아이니까 밥 먹을 때는 오죽하겠어요. 된장 냄새는 싫다 하고, 간장 베이스의 국은 안 먹습니다. 볶음밥, 카레, 짜장처럼 섞여있는 성분이 불분명한 요소의 요리는 안 먹어서 말 그대로 밥과 반찬의 정식류만 먹는 아이죠. 이런 판국이니 먹는 속도도 어디 빠르겠습니까.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잘 안 먹으면서, 장난감이나 책을 찾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는 엄마가 하는 대로 하니까 세월아 네월 아긴 하지만 이렇게 찾지는 않는데,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되니까 꼼수가 생기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딱 그렇게 아이가 책을 찾거나 뭔가 밥 먹을 때 다른 걸 찾을 때 제가 화가 100km로 갑자기 급발진으로 나는 겁니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일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다른 상황보다 이 상황이 가장 화를 참기 힘든 순간이었거든요. 왜 그럴까요. 이 순간은 낯익은 순간이기 때문이죠. 나를 닮은 아이의 모습.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닮은 아이의 모습이라고 제가 여겨져서 더 화를 못 참는 순간인 것 같더라고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저의 과거는 5-6살 즈음입니다. 그때 아빠 셔츠와 둑길에서 엄마와 풀 뜯고 소꿉놀이한 그런 잔잔한 기억들이 있어요. 그런 기억들을 끄집어내 보면, 저는 어릴 때 밥 먹는 게 너무 심심했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늘 책이나 신문을 들고 밥을 먹으려고 했어요. 밥 먹는 게 너무 재미가 없고 지루했거든요. 그럴 때면 어른들에게 늘 혼났어요. 밥 먹고 보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때 프랑스에서는 2시간씩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보고 나서, 프랑스 사람이 되고 싶어 했어요. 왜냐면 거기에서는 천천히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으니까요. 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30분 안에 주어진 밥을 다 먹어야 되는 건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읽던 카네기가의 교육방법에 대한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또 한 번 문화충격을 받았었죠. 카네기가에서는 그날의 신문을 식탁 앞에 두고, 밥을 먹으면서 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는다고 해요. 하 정말 너무 재밌는 식사시간일 것 같은 거죠. 그런 이야기를 한번 꺼냈다가 엄마한테 밥 잘 먹으면 그렇게 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밥을 잘 먹은 적이 없기에 결국 그런 식사시간은 가질 수 없게 되었어요. 슬픈 결말이죠.


뭔가 익숙하지 않나요? 맞아요. 그 벌을 제가 지금 받고 있나 봐요. 그래서 아이가 밥을 먹을 때 심심하다고 하고 장난감이나 책을 가지고 오는 상황에서는 제가 이런 상황이 오버랩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어른이 되어서 매운맛을 알게 되고, 식사시간에 대화를 할게 많아지면서 생기게 되었는데 지금 6살의 아이에게는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는 거죠. 그리고 그때 이런 저의 모습으로 받았던 불편한 시선과 지적들이 떠오르면서, 나와 같은 아이가 받을 앞으로의 불편한 상황들이 같이 그려지게 되더라고요. 결국 엄마도 극복해 보지 못한 안 좋은 버릇 혹은 모습과 그로 인해 받게 될 불편함들이 복합적으로 그려지니 아이에게 더 큰 화가 나는 상황이 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화를 꼭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나씩 하나씩 풀어서 드러내면, 오히려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요. 그리고 이렇게 내 화를 생각하면서, 어린 6살의 나도 돌보게 되어요. 그 아이를 잘 돌봐야 지금의 6살인 내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길 것 같거든요. 나의 상처가 아이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하려면, 나의 상처를 건강하게 아물 수 있게 돌봐야 하는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 살고 싶었던 6살의 나에게, 내일은 특식을 선물해주어야겠습니다. 6살 입 짧은 아들도 함께 즐겁게 오래 떠들고 먹을 수 있는 뷔페 레스토랑을 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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