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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May 29. 2022

단발머리의 시대상

글감 주제: 단발머리 

"가볍게 정리해 주세요."

"목 선에 맞게 할까요? 아니면 귀 밑까지 길이로 더 짧게 해도 될까요?"

"음... 어떤 게 더 잘 어울릴까요?"

"머리 손질 자주 하시는 거 아니면, 곧 여름이고 하니 귀 밑 까지 해도 기장감이 괜찮으실 거예요."

"네, 그럼 귀 밑 까지 해주세요."


귀 밑까지의 잘라본 것은 중학교 때 이후로 처음이다. 중학교의 귀밑 3cm의 교칙이 있었던 시절의 여파인지 이후로는 무조건 긴 머리를 고수했다. 딱히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예쁜 편도 아니기에, 가끔씩 연예인들의 예쁜 단발을 보면 단발병이 걸려 잘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선뜻 자르려고 하면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내심 중학교 때의 강제 두발 단속에 대한 억 화 심정을 핑계로 대며 긴 머리를 고수했었다. 


  나에게 단발의 의미는 그래서 중학교 때가 생각난다. 귀밑 3cm의 교칙에, 10cm 자를 가지고 학생부장 선생님이 교문 앞에 서 계셨다. 선생님 옆에는 선도부 학생들 2명이 귀밑 3cm가 넘을 것 같은 아이들을 세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크게 뷰티에 관심은 없었지만, 초등학교 때 긴 머리도 하고 머리를 묶고 다니기도 하면서 다양한 머리스타일을 하다가,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머리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사실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어색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왜?'였다. 왜 하필 귀밑 3cm인가? 왜 귀밑 30cm는 안되고, 4cm도 허용되지 않는 것인가? 그렇게 의문을 한가득 안고 몇 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나름 모범생으로 반장도 맡고, 선생님들 말을 안 들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문이 안 드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다가 3학년이 되었다. 학생회장과 부회장 선거가 있었다. 나랑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나와 달리 모두에게 인기도 많고 성격도 좋은 친구가 학생회장의 유망주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공약을 '귀밑 3cm를 5cm'로 늘리게 하겠다는 것을 들고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가 회장이 되어도, 부회장이 자기와 의견이 맞아야 되는데 지금 나오는 후보들 중에는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가 없다며 고민이 된다고 했었다. 당시에는 학생회장 선거는 전체 투표를 하고 득표율 1위가 학생회장이 되고, 2위가 부회장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럼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도 나갈게라고 얘기했다. 친구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지 살짝 당황해했다. 하긴 그때까지 나라는 사람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더 많이 했고,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모범생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학생회장 선거는 선거운동도 돌아다니면서 해야 되고, 아는 인맥도 많거나 아니면 어머니가 학교에 많은 활동을 해야 되거나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의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기에 친구도 적잖이 당황했던 것 같다. 또 친한 친구이기에, 내 본모습을 알기에 더 당황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귀밑 3cm의 '왜'의 의문을 풀어보고 싶었다. 굳이 귀밑 3cm가 왜 품행 단정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조용했던 나는 헌 cd를 이마에 붙이고  선도부 옆에서 선거활동으로 '기호 0번'을 외치고, 잘 안 나오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다니게 되었다. 매 순간이 부끄러운 순간을 이겨내야 했지만, 연단에 서서 마지막 연설을 할 때에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싶었을까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았다. 그 시절 내가 원했던 것은 '자유'였고, '이해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렇게 득표율 2위로 반전으로 내가 부회장이 되었고, 친구는 예상했던 대로 학생회장이 되었다. 우리 둘은 '두 발제 폐지'에 대한 지역 학생회를 만들어서 '학생들이 이해될 수 있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부분을 논의하게 되었다. 그 젊은 날이기에 할 수 있었던 치기 어린 용기와 움직임은 나의 단발을 귀밑 3cm에서 귀밑 6cm로 바꾸었고, 그 움직임 덕에 졸업 후 후배들은 어깨 위의 기장까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나의 굴욕적인 단발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나의 중학교 3학년이었다. 


 "머리 다 되었어요, 기장  괜찮은지 한 번 보시겠어요?"

잠시 추억여행을 떠난 사이, 머리가 완성되었다. 이유를 모르는 14살의 귀밑 3cm는 굴욕적이었지만, 내가 선택한 38살의 귀 밑 단발머리는 매력적이었다. 


"네 마음에 들어요. 드라이해주세요."


그때는 학생회장이었고, 지금은 아들 맘이 된 친구에게 오랜만에 사진과 함께 톡을 보내본다.

[추억의 버섯머리지롱. 귀밑 3cm 보다 짧은 거 같지 않아? 자가지고 와봐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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