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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Jul 09. 2022

아이와 함께 하는 사치, 산책

글감 : 산책

 9시 20분, 아이 둘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아무런 이탈 없이 무사히 미션을 완료했을 때의 시간이다. 이게 뭐라고 뿌듯한 것인가. 버스 시간에 맞춰서 첫째가 등원하고, 배웅을 하며 둘째의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5분이면 가는 옆 아파트의 어린이집이지만, 세 돌이 안된 둘째 아이의 걸음으로는 20분이 족히 걸린다. 안고 가자니 쌀 한 가마니 무게이기 때문에 안고 가지 않는 것도 있지만, 오늘 같이 날이 좋고 시간을 맞춰서 준비한 날이면 조금 걷는 사치를 부려도 된다. 아이는 아장아장 걸으며 개미도 보고 민들레 씨도 불어 보는 사치를 누려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만 보며 미소 짓고, 시간 안에 도착지에 도착하기 위해 달리지 않고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완료할 수 있는 미션으로 시간의 사치를 부려본다. 특히나 아장아장 걷는 걸음에 기저귀로 약간 처진 엉덩이 라인을 바라보노라면, 강태공이 부럽지 않은 마음의 여유를 느껴본다.      

 아이와 같이 걷는 길은 그동안 걸었던 길에서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이가 없을 때는 핸드폰을 보며 걸어가거나 통화를 하며 걸어가면서 무심히 걸어 다녔던 보도 블록 들도, 아이와 함께 걸어가다 보면 140mm의 작은 발가락은 보도 블록 틈이 조금이라도 벌어져 있더라도 작은 발이 끼어있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어른의 발로는 괜찮았던 것들이, 아이의 발로는 위험하게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아이와 함께 산책하며 알게 되었다. 

 또 계절이 주는 놀이로 사치를 더해보기도 한다. 봄이면 민들레 홀씨를 불면서 걸을 수 있고, 여름이면 강아지풀로 목 뒤를 간질이며 서로 잡기 놀이를 해보기도 한다. 가을은 말해 무얼 할까 아이 머리보다 큰 단풍잎으로 까꿍놀이를 하기도 하고, 바닥에 흩뿌려진 단풍잎 길을 보며 단풍잎이 있는 곳만 징검다리처럼 골라서 뛰어다니는 재미도 있다. 겨울은 눈이 쌓이는 행운이 많지는 않지만, 평소에 졸졸 흐르던 개울가가 멈춰있는 풍경이나, 풀로 가득했던 곳에 풀 속에 있어서 미처 몰랐던 바위들을 발견하며 탐험을 떠나보기도 좋다. 계절이 주는 사치를 누리며 아이는 세상을 궁금해한다. 그렇게 궁금해하는 것을 다 대답해주는 엄마 아빠를 보며 세상을 알고 있는 엄마 아빠가 가장 크게 보이기도 하겠지.      

 내가 하고 있는 가장 어릴 때의 기억은 4-5살 근처의 강둑에서 엄마와 아빠와 함께 걸어가던 산책길이다. 아빠가 퇴근하면서 노을 진 강둑길의 끝에서 달려오면, 나와 엄마는 반대 길의 끝에서 아빠를 마중 나갔다. 그때의 해 질 녘의 하늘의 색깔이 지금도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다. 여름과 가을의 어느 사이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강둑길을 ‘아빠’하고 뛰어서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 아빠도 강둑길 끝에서 양팔을 벌리고 달려온다. 그리고 와락 안아주면, 아빠의 셔츠에서 쇠 냄새가 훅 난다. 쇠 냄새와 땀냄새가 섞인 우리 아빠만의 냄새다. 향기로운 냄새는 아니다. 하지만 이 냄새를 맡으면 ‘아, 우리 아빠다’라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감돈다. 경상도 아빠라 와락 안고 난 뒤에는 별다른 말은 없다. 하지만 그냥 손을 잡고 그 강둑길 끝까지 쭈욱 걸어가는 그 손의 압력이 기억난다. 재잘재잘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말을 계속 들어주는 아빠의 땀 섞인 손이 기억난다. 

 그리고 강둑길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꽃과 풀들을 보며, ‘이건 뭐야?’의 질문을 쏟아내면 뒤에 걸어오던 엄마가 꽃과 풀잎의 이름을 알려준다. 강둑길이 좁아서 어른 두 명이 지나가기엔 좁고, 한 명이 지나가기엔 조금 여유가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강아지풀, 달맞이꽃, 계란꽃, 도깨비풀, 나팔꽃,,, 엄마는 모르는 꽃이 없었다. 그렇게 꽃과 풀들을 보며 강둑길이 끝이 나면 우리 집이 보였다. 그 장면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어릴 적의 기억으로 생각난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산책이어서 못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생각이다. 작은 손과 발이라고 무시할 수 없다. 나비를 발견하거나 먹을 것을 찾고 있는 비둘기 떼를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스피드로 총알같이 튀어나가기 때문이다. 그 작은 손과 발이 언제 스피드를 올릴지 모르기 때문에 주변을 살필 수밖에 없다. 그것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들은 벗어나게 돼버린다. 예를 들어 내가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색깔을 고르지 못했던 원피스라던지, 한참 밀려있는 단체 카톡의 답장과 같은 것들이다. 아이랑 산책 전에 장바구니에 담았던 원피스는 일주일 뒤 같은 디자인으로 고민했던 다른 색깔로 2벌이 도착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단체 카톡의 답장은 내가 생각만 하고 답장을 놓쳐놓고 했다고 생각하고 직접 만났을 때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또 허무한 웃음을 지으며 다른 색깔의 원피스를 매일 다르게 입고 아이랑 산책을 나서겠지. 그것이 아이와 함께 산책해서 누리는 사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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