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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Mar 22. 2023

염원의 음식

쓰는 엄마 : 음식글

 아이의 뒤척거림에 잠이 깼다. 창문을 보니 아직은 캄캄하다. 나조차도 잘 안 떠지는 눈꺼풀을 겨우 떠서 시계를 확인해 본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혹시나 해서 체온계를 가지고 나온다. 38.9도가 나왔다. 아이가 열이 오르고 있어서, 잠을 뒤척이고 있나 보다. 아직은 30개월이 조금 넘은 아이라서 콧물이 좀 생기거나, 감기가 걸려도 금방 열이 38도 이상으로 오르곤 한다. 급히 해열제를 찾아서 잠에 취했지만 끙끙대는 아이의 입에 조금씩 먹여본다. 물수건으로 몸을 닦으려니, 곤히 자고 있는 잠을 방해받는 것이 싫은지 이내 찡찡하며 수건을 거부하고 다시 잠에 든다. 약을 먹인 뒤라 혹시나 하고 30분 정도 열 보 초를 선다. 해열제를 먹고 나서 1시간 정도 지나고 나면 열이 1도 정도 떨어지면 약이 효과가 있는 거이다. 그럼에도 열이 안 내리면 2시간 간격으로 해열제를 먹이는 간격을 좁혀서 교차복용을 해야 되기 때문에, 같이 잠들 수는 없다. 1시간 뒤 다행히 아이는 곤히 잠이 들고, 열은 내려가고 있었다. 다음 해열제 복용시간이 4시간 간격이기에, 4시간은 다시 잠들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바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서도 목이 부었는지 열이 반복해서 오르고 내리고 했다. 

 어제저녁에 먹다 남은 밥이 밥솥에 조금 있었다. 남은 밥을 긁어다가 물을 넣고 냄비에 폭폭 삶아본다. 냉동된 잘게 다진 야채를 넣어본다. 다짐육은 따로 냉장고에 가지고 있는 게 없어서 우선 계란을 풀어서 같이 넣어본다. 야채죽으로라도 아침을 먹여야 약을 먹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휘휘 주걱으로 냄비를 저으면서 죽을 만들어본다. 


"나 오늘 가정보육이야ㅠㅠ 죽 끓이고 있어..."

아이들 등원 다 시켰는지 묻는 친구의 카톡에 답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친구도 카톡에 답을 ㅋㅋㅋ로 대답한다. 그 죽 먹을 수 있는 거 맞냐고 웃으면서 그래도 너도 애 엄마가 된 게 맞긴 하구나라며 오늘도 힘내라는 파이팅을 보낸다. 내가 죽을 끓이고 있다니. 식탐도 없는 사람이 음식을 만드는 것에는 재주가 있을 리가 없다. 

음식은 레시피대로 간장 2숟가락, 참기름 1숟가락 이렇게 차례대로 넣고 완성되면 마지막에 먹는다. 그러니 레시피대로 했다고 하지만, 맛이 있을 확률은 낮았다. 절대 미각을 가지고 있는 미식가 남편은 어떻게 요리를 하면서 맛을 보지 않고 요리를 할 수가 있냐고 했다. 아니 레시피 대로 하면 그 결과가 나와야 되는 게 요리 아닌가? 라며 반박을 한다. 맛을 보면서 간을 조금 더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맞춰야 된다는 남편의 주장이 있었지만, 중간에 맛을 봐도 나는 이게 소금을 더 넣어야 하는지, 간장을 더 넣어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맛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런 내가 그나마 가장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바로 죽이다. 식탐도 없고 식욕도 없기에 늘 못 먹어서 엄마 속을 섞이는 아이가 유일하게 잘 먹었던 것이 바로 죽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이기에,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음식일 수 있다는 것을 아이를 낳으며 알게 되었다. 남편은 죽은 식사로 취급하지 않는 육식파이기 때문에, 내가 만든 죽을 먹을 일은 없었으니 신혼 때에는 몰랐던 것이다. 


 죽을 만드는 것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오죽 간단했으면  '죽 만들어버렸네'라는 비유가 있을 정도로 음식을 만드는 것을 망쳤을 때처럼 어떻게 보면 쉽기도 하고 망쳐버린 느낌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죽을 만들면서 느끼는 것은 그 비유는 잘 못된 비유라고 생각한다. 죽을 만드는 것은 돌탑을 쌓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나가는 돌을 굳이 왜 탑으로 쌓고, 떨어지지 않게 높이 높이 쌓는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그 노력을 비웃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가는 돌을 찾으며, 그리고 그 돌을 높이 높이 쌓으며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을 몇 번이고 얘기하고 다짐하는 그 과정의 염원은 마냥 돌이 쌓인 탑의 의미라기보다 마음의 돌을 빼내서 하늘 높이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아닐까. 

 죽을 끓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폭폭폭 모든 재료를 때려 넣고 삶으면 끝일 것 같지만, 불이 너무 세면 죽에 탄내가 나고, 불이 너무 약하면 끓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냄비에 눌어붙지 않도록 휘휘 반복해서 주걱을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계속 저어주는 과정은 마치 돌을 가지고 돌탑에 올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놀이터에서 놀 때 덥다고 해도 잠바를 벗기지 말걸, 아니다 1시간만 놀고 들어가자고 해서 그만 놀고 들어갈걸, 아냐 아냐 해가 지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들어갔어야 되는데. 어제 안방에 보일러가 안 틀어져 있었는 데 그때 샤워시키고 드라이기 한다고 잠깐 맨몸으로 서있게 했을 때인가, 다음부터는 샤워가운을 입힌 상태에서 드라이를 시켜야겠다. 콧물에는 도라지즙이 좋다는데, 도라지 음료 남은 거 그거라도 먹일까. 이따가 다짐육 사러 가면서 배도 하나 더 사야겠다. 배가 기침에 좋다는데 꿀이랑 같이 해서 간식으로 먹이면 잘 먹겠지?'

 아이가 왜 아프게 되었을까, 안쓰러운 마음과 어서 나았으면 하는 마음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냄비를 휘휘 저으며 담아본다. 그래서 죽은 아플 때 먹는 음식이자, 아플 때 받으면 감동하는 음식인 것 같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그리고 낫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유일한 음식이지 않을까. 


 죽을 휘휘 저으면서, 갑자기 엄마가 만들어준 삶은 밥이 생각났다.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한 것. 누군가는 죽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정식 명칭은 '삶은 밥'으로 우리 집은 통한다.'엄마 나 삶은 밥 해줘'라고 하니까. 삶은 밥은 말 그대로 그냥 물과 밥만 삶은 상태이다. 하지만 누룽지랑은 조금 다르다. 입이 짧은 나는 야채든 고기든 다른 부가적인 게 들어가는 죽은 아플 때에는 먹으면 바로 토했다. 그 육수의 역한 느낌이 아플 때에는 더욱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엄마의 '삶은 밥'이었다. 폭포폭 삶아서 밥알이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약간 안개꽃처럼 조금씩 갈라진 모양으로 있다. 그리고 삶은 밥의 물은 약간 쌀뜨물처럼 희뿌옇게 되어있어서 밥의 구수함을 어느 육수보다 풍부하게 내고 있었다. 그리고 자극적이지 않게. 그래서 삶은 밥을 그릇에 담으면, 마치 안개꽃다발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희뿌옇게 된 국물에 아주 작은 흰 덩어리 같지만 자세히 보면 꽃잎이 겹겹이 붙어있는 안개꽃처럼, 밥알이 뭉게뭉게 피어있다. 그래서 그걸 후루룩 하고 먹으면 안개꽃을 먹는 기분이 들어서 잠시나마 아픈 것을 잊게 되었다. '삶은 밥'이라고 하니 아주 쉬워 보이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 죽을 끓이면서 알게 되었다. 밥과 물만 넣어서 되는 것이 삶은 밥이 아니라는 걸. 그 밥알들이 안개꽃처럼 피우려면 약한 불에 보글보글 그리고 계속 눌지 않게 저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끓여야만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삶은 밥'을 끓이면서 어떤 염원을 담았을까. 그래서 식탐 없고 식욕 없이 작게 태어난 나는 엄마의 삶은 밥을 먹고 이제는 다이어트를 달고 살 정도로 먹는 것을 즐기고, 잘 먹게 되었을까. 엄마의 염원은 아마 이것이었나 보다. 


"후후, 이거 봐 엄마가 후후 불었어. 안 뜨거워 이제 먹어도 돼"

"이제 안 뜨거워 후룹, 우와 정말 안 뜨거워!"


조그마한 입술로 후룩후룹하며 죽을 먹는 아이를 보며, 싱긋 웃으며 안심을 했다. 오늘은 내가 염원을 담아서 만들었으니, 이 죽을 다 먹으면 나의 염원이 이루어지겠지. 내일은 어린이집 가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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