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주제 : 택배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아파트에 도착하니 날이 꽤 밝아졌다. 새벽부터 집송에, 상하차까지 처리하고 난 뒤라 이미 나의 날은 반이 지나간 것 같다. 긴 네모, 작은 네모, 그리고 아주 큰 네모들의 네모 박스들을 테트리스 게임처럼 차곡차곡 쌓아서 최대한 튀어나오지 않게 새로운 네모를 끌차 위에 만들어본다. 동 별로 아파트의 택배물품들을 분류하고 나니 8시다. 이 시간의 엘리베이터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엘리베이터에도 만원인 상황인데, 택배 물품이 쌓인 끌차에 층층마다 서서 배달해야 되기에 별로 좋아하는 시간이 아니다. 최대한 실수 없이 하려고 배달 호수를 한 번 더 확인해본다.
‘802호 배달 제외 – 배달 물품 전량 반품 처리 ‘
특이 사항에 멈칫해본다. 그리고 하던 대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지이잉’
30층에서 지하 3층까지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시간이 꽤 된다. 지난주의 그 아파트가 이 아파트였구나, 쌓여있는 택배 상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제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각자의 네모 박스 안에 있는 것들은 가격도, 쓰임도, 누가 사용하는지도 모른다. 균일하게 네모로 되어있는 것을 일정한 시간에 배달하는 것.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일었다. 비싼 물품이라고 소중히 다루고, 싼 물품이라고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1201호에 국회의원의 물품이라고 침을 뱉고 배달을 한다거나, 502호에 나와 접촉사고가 나고 나서 아침부터 재수 없게 택배차에 긁혔다고 지랄 맞았던 사람의 물품이라고 옆집에 가져다 줄 순 없기 때문이다. 그 지랄 맞았던 사람이 시킨 물건인지, 지랄 맞은 사람의 딸이지만 나에게는 항상 엘리베이터에서 밝게 인사하는 초등학생 딸내미가 시킨 물건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이유로 주문했는지, 그 가치는 무엇인지 판단할 수 없기에 나는 ‘취급주의’라고 쓰인 물품을 취급 주의하며 층마다 쓰여 있는 주소로 동일한 장소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배달을 하고 있고, 그리고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주 802호 앞에 뜯지도 않은 택배가 계속 쌓여 있는 것이 며칠이 지났다. 이제 더 이상 배달한 택배를 놔둘 곳을 찾지 못해서, 경비원에게 얘기를 하고 경비실에 택배를 맡겼다. 내가 한 일은 그뿐이었다. 그리고 난 다음날 출근길 꽉 찬 엘리베이터에서 802호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얼마 전 코인 사태로 들끓었던 그 뉴스를 지나가면서 들었지만, 그 뉴스가 칼이 되어 목숨을 끊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많은 택배들을 주문했을 때는 자신의 다음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각기 다른 네모 택배 상자에 담겨 있던 물건들은 결국 그를 지키지는 못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