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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Jul 02. 2022

<나도 회식하는 건데? - 브런치에 대한 변>

글감 : 브런치

“엄마, 나 이거 단추 있는 옷 입기 싫은데,,”

“오늘은 사진 찍는 날이라서 흰색 셔츠 입고 오라고 하셨어, 선생님이. 평소에는 안 입으니까 오늘만 이거 입고 가자.”

“싫어, 나는 단추 있는 옷 싫다 말이야, 흐어어어”

“아니 이걸로 왜 울고 그래, 단추 있는 옷 엄마가 채워주잖아”

“싫어 흐어어엉”

“하아.. 안 되겠다, 형아가 울면서 옷 안 입으니까 우리 둘째가 옷 입을까?”

“싫어~~(다다다 다다다)”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다. 40분에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등원 버스를 탈 수 있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결국 단추 있는 남방의 단추를 채우는 것은 포기하고 흰 티셔츠에 남방을 걸치는 것으로 첫째와 합의 보았다. 첫째와 합의 보는 과정에 둘째가 젤리를 꺼내서 먹고 있느라 10분 전에 입혀둔 티셔츠가 다시 엉망이 되었다. 휴, 마음 같아서는 진짜 등짝 하나씩 맞으면서 입혀서 가고 싶다. 부글부글. 하지만 그러면 안 되지 나는 엄마이고, 아이들에게 바른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니까 공감을 바탕으로 한 설득과 협상을 통해서 서로가 만족할 수 있을만한 아침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아 힘들다. 화를 꾹꾹 참고 둘째 옷을 다시 입히고, 첫째와 협의 끝에 얻어낸 흰색 상의 착장의 미션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40분에 딱 맞춰서 기다리고 있으니, 10층에서 문이 열린다. 아,,, 이미 엘리베이터 안은 등굣길과 출근길 인파로 만원 상태. 둘째의 유모차를 버리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빠른 판단력으로 유모차에서 둘째를 빼내서 안고 비좁게 엘리베이터에 껴서 타기에 성공했다. 유치원 버스를 놓치는 것보다 차라리 둘째를 안고 가더라도 이것이 낫다. 첫째 유치원 버스를 놓치면 첫째를 차를 태워서 보내야 하고 , 둘째는 또 다른 아파트의 어린이집이기 때문에 가는 동안에 누구는 간다 안 간다 실랑이를 벌이기 때문에 오늘 하루가 나이스 하려면 이 버스는 놓쳐서는 안 되는 버스이기 때문이다. 


"잘 다녀와, 사랑해"

그 어느 때보다 애틋하게 창문을 바라보며 첫째를 배웅한다. 

"엄마, 나비 나비"

맞아. 미션 한 번이 더 남아있다. 둘째는 옆 아파트의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아직 어려서 차로는 못 가지만, 바로 옆 아파트라도 아장아장 걸음으로는 15분이 걸린다. 오늘은 유모차를 못 타고 왔으니 15분 소요 예정인 것이다. 작은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으며 나비도 보고, 개미도 만나며, 소나무도 아 따가워하며 만져본다. 편의점 앞을 지날 때면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문 앞으로 이끌다가, 다시 또 어르고 달래서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엄마 이따가 올게, 선생님이랑 재밌게 놀아요"

"네, 엄마 다녀올게요 해야지"


둘째도 미션 클리어. 하 이제 해방이다. 부랴부랴 집으로 가서 외출 준비에 나선다. 9시 20분. 오늘은 브런치 약속이 있는 날이다. 브런치는 보통 10시 30분 정도에 시작한다. 내가 뭘 입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헐렁한 원피스를 벗고, 이리저리 옷을 뒤적인다. 임부복과 수유복 사이 즈음의 옷들만 가득하고, 미련으로 남아있는 옷들은 나의 벌크 업된 팔뚝을 감당하지 못한다. 나름 예쁘다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옷을 골랐는데, 팔뚝이 마동석처럼 터져나가려고 보이는 것을 보면 다시 벗는다. 심지어 지퍼도 혼자서 잘 안 올라가는 굴욕을 맛보기도 하다. 그러다가 결국 고른 것은 평소 입는 것과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무난한 원피스를 고른다. 스킨을 하고 화장품을 발라본다. 아이섀도는 이미 굳었고 마스카라도 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난 듯하다. 그래서 결국 립과 눈썹 쿠션만 바르고 간다. 이것만 해도 아주 화사해 보이니까. 


 10시  30분, 브런치 하기로 한 장소로 왔다. 브렉퍼스트 브런치,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낯설고 이국적인 음식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 단추 있는 옷을 입지 않는 첫째와의 실랑이를 토로하고, 살쪘다며 팔뚝 보라고 보여주기도 하며 수다를 떨어본다. 그렇다 브런치의 수다는 엄마들의 회식 시간인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 연차를 내고 나서 평일에 카페를 가서 낯선 풍경에 놀란 적이 있다. 11시에 바글바글한 카페를 보며, 와 이 시간에 내가 회사에서 일할 때 이렇게 카페에 사람이 많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약간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부러운 마음도 있고. 내가 일하는 동안에 이렇게 나도 여유 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시간에 앉아있는 시간이 되니 알게 되었다. 아 회식 시간이 달랐던 것뿐이구나. 회사 다닐 때는 회식이라는 것이 있다. 회사에서 지정한 법카회식이있고, 우리끼리 회사일을 씹기 위한 개인 회식이 있다. 야근하거나 회식하고 나 가는 길에 회사 앞에 고깃집들이 내뿜는 연기는 마치 그날 하루의 노고를 태워버리고 싶은 담배연기와도 같았다. 지글지글 구우면서 지글지글 상사나 거래처를 씹어버리면 그날의 피로는 조금은 없어질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니까, 그런 회식이 없는 것이다. 나와 같은 업무를 하는 동료 직원도 없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계속하고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엄마들의 회식은 아이들은 기관에 가있고, 남편은 회사에 가있는 시간인 오전 11시 브런치 타임이 될 수밖에 없구나. 그리고 삼시세끼 한식 밥상을 차리고 먹다 보니, 이국적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브런치 타임 밖에 없는 거구나. 그래서 아이랑 같이 있으면 늘 먹는 크림 파스타 대신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시키게 되고 , 밥과 국이 있어야 하는 남편 밥과는 다르게 스크랩블과 독일식 소시지가 올라간 브렉퍼스트 브런치를 시키게 된다. 그동안은 마치 잠깐이라도 신혼여행에서 받은 조식 서비스나, 홀로 배낭 매고 간 유럽여행의 셰어하우스에서 맛본 조식의 기분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들의 회식을 끝내고 12시 반이 되면 초등 엄마들부터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마치 신데렐라처럼 애데렐라가 되어서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유치부 엄마들은 커피 한잔을 마실 여유가 더 있다. 유치원의 하원은 3-4시 사이기 때문이다. 초등부 엄마들을 배웅하며, 유치부 엄마들은 앞으로의 초등 생활에 대한 걱정과 토로를 한다. 이렇게 우리만의 대낮의 회식 시간은 무르익어 간다. 


 그렇다 모두의 시간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 각자의 사정으로 위안받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브런치를 먹으며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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