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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Oct 25. 2022

당신의 생각을 정리해 드립니다. /

내 생각의 유효기간을 알게 된다는 것


 ‘툭’

 “아야, 내 발가락… 아구 아파라”

켜켜이 쌓여있는 냉동식품들 중 하나가 발가락 위로 떨어졌다. 지난 새해에 떡국 만들어 먹으라고 친정엄마가 보내 주셨던 떡국떡 뭉치였다. 언젠가 먹겠지 하고 놔두었던 떡국떡 뭉치가 그 이후로 할인한다며 쌓아놓았던 냉동만두와 돈가스들의 테트리스에서 빠져나온 것이었다. 이 테트리스의 틈 사이로 떡국떡을 다시 넣으려니 틈이 보이지 않는다. 틈을 만들려고 냉동실 안에 있던 유물이 된 냉동음식들을 하나둘 씩 꺼내어본다. 다친 발가락을 피해서 두다 보니 어느 순간 무릎까지 음식들이 나와있다. 이 작은 냉장고에 이렇게 많은 음식들이 들어갈 수 있었다니. 8년 만에 이 냉장고가 다시 보이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음식을 넣으려고 보다 보니 유통기한이 보인다. 유통기한을 보며 시계의 날짜와 연도를 다시 확인한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도 있었지만, 작년의 음식도 있었다. 그렇게 음식들을 분류하고 보니 다시 냉장고가 3분의 2 정도 채워졌다.

 냉장고 문을 닫으며 문득 이 냉장고가 내 상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하겠지라고 묵혀두었던 일,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고 나서 나도 이렇게 해 먹어 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사서 넣어두었지만 꺼내보지 않고 그대로 잊힌 일들. 그런 일들이 뒤죽박죽 되어 있는 상태의 냉동실이 마치. 내 머릿속을 보는 것 같았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맞이해야 했던 코로나 시대. 코로나 베이비로 불리는 둘째를 둔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을 보며 가장 취약한 아이들이 걱정되었고, 그렇게 5살 첫째와 신생아인 둘째를 집에서 데리고 가정보육을 시작했다. 가끔가다 코로나 밀접접촉자가 된 남편이 자가격리를 하기도 하며 그렇게 모든 가족들이 집안에서 엉겨 붙어서 지냈다. 안전한 만큼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으로 나는 점점 더 지쳐갔던 것 같던 것일까. 지쳐있는 상태는 무기력으로 이어졌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고 있던 오늘, 내가 쌓아왔던 냉동식품 무덤을 열다가 얼린 떡국떡에 발가락을 찧게 된 것이다. 아픈 만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유통기한이 지난 냉동식품을 이고 지고 하면서 과부하가 되어 토해낸 냉장고가 마치 나의 모습 같았던 것이다.


 위기의 코로나에서 위드 코로나로 바뀌게 되며, 아이들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등원하게 되고 오랜만에 찾은 자유시간으로 2년 만에 도서관을 향하게 되었다. 그리웠던 책 냄새와 조금은 낯선 분위기의 마스크 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들뜬 마음으로 책 등을 손가락으로 짚어보았다.

 ‘당신의 생각을 정리해드립니다’

신박한 정리라는 정리수납을 대신해주면서 삶의 패턴에 대한 부분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는 티브이 프로그램으로 정리 신드롬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런 정리수납에는 익숙했지만, ‘생각’을 정리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 일까. 복잡했던 냉동실을 정리하고 나서 기분이 나아지고 도서관을 나서는 즐거운 기대감이 생긴 것처럼 지금 나의 생각도 정리될 수 있을까?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바로 책을 빌려서 읽게 되었다.


 실용서와 자기 계발서가 인생의 정수를 담은 고전의 대열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분명히 그 가치가 있을 때가 있다. 바로 ‘왜’라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답을 같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상태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생각정리의 방법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무언가 시작하고 싶을 때 혹은 잘하고 싶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먼저 만나게 된다. 그 두려움의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줄여야 된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는 모를 때가 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두려움을 정체를 알게 되면 두려움이 줄어들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 두려움을 줄이는 방법으로 더 많은 정보와 지식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보면 두려움의 정체를 뚜렷하게 직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직면하게 된 두려움은 하나의 정보로 받아들이게 되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어딘가를 처음 갈 때 무작정 나서지 않고, 지도나 내비게이션을 보며 길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생각 정리에서 가장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생각을 비우는 정리’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단순히 비우기를 이야기하는 정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저 수집하고 보관하는 정리도 아니었다. 나에게 무엇이 더욱 중요한지를 내가 스스로 짚어보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 중요한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떤 실행이 필요한지를 바로 느끼게 해주는 정리였다. 생각정리라고 해서 명상하며 생각을 비우고 해야 할 일들을 되짚어보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던 것이 오산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저자가 담아두었던 생각정리의 다양한 툴들을 하나씩 나의 상황에 맞춰 따라 해 보기 시작했다.


 하얀색 A4 사이즈의 종이 한 장을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고, 금방 사라질 수 있는 생각을 시각화하는 종이 접기부터 시작했다. 열람실에서 32칸의 매트릭스의 칸을 만들어내기 위해 종이를 이리저리 접어보는 내 상황이 조금 우스꽝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는 민망함도 있었다. 하지만 이 칸 안에 나의 생각들을 하나둘씩 안에 적어보면서, 이런 민망함은 금세 잊히고 나의 생각들을 꺼내는 데에 집중하게 되었다. 숙모의 생신 안부 인사드리기, 저녁 불고기 재료 사기, 어제 모임의 점심값 정산하기, 지난주에 사서 아직도 안 읽은 책 읽기 등 사소한 나의 일상들에 있는 지금의 나의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꺼내고 나니 큰 덩어리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사소한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었다. 블로그 만들기, 유튜브 편집 공부하기, 홈페이지 만들기, 온라인 강의 제안서 만들기 등 어느 순간 내 마음속 한편에 있었던 하고 싶었던 일들도 실타래처럼 일상의 고민과 엮어서 나오게 되었다. 줄줄이 나와져 있는 나의 생각들을 보며 냉동실에 있던 냉동식품들처럼 나의 생각들이 켜켜이 머릿속에 갇혀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갇혀있던 생각들도 아마 유효기간이 있었지 않았을까. 적절한 유효기간 내의 재료를 사용했을 때 더욱 건강하고 때를 느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생각들의 유효기간에 맞춰서 근사한 요리로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제 나의 생각의 재료들의 유효기간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하루 24시간 가계부로 시간 가계부를 써보는 책의 예시처럼 나의 하루를 가계부처럼 써보았다. 나는 어떤 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휴식 영역과 업무영역의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관계 영역에 있는 시간은 어디인지 나의 하루를 정산해보았다. 운동과 독서 등 자기 계발의 투자영역의 시간이 가장 적은 비율로 있었고, 아이를 케어하고 집안일을 하는 관계 영역과 관리 영역이 높게 나왔다. 나의 생각을 꺼내었을 때의 비중과는 반대의 결과였다. 나의 생각은 자기 계발과 투자영역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만 하고 실천되지 않았을 때의 병목현상이 나온 구간을 여기에서 찾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목표를 정리하는 챕터에서 왜 이것이 나의 문제가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문제는 곧 현재의 수준과 이상적인 수준 사이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을까?


 책에서 제시하는 문제의 정리 방법에 따라서 나의 문제는 탐색형 문제인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는 것처럼,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탐색해 대비하는 것이다. 육아로 인한 퇴사로 프리랜서의 일을 하다가 둘째 출산과 길어지는 코로나 상황에서 나는 불안했던 것이다. 내가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이대로 내가 쌓아온 일들이 지나간 과거형이 되지 않을까에 대한 불안함이 컸던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가득 차 있지만,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감은 무기력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나의 문제의 정리를 통해 나는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걱정으로 안고 살아갈 것인지, 직면할 것인지를 말이다.

 SWOT전략과 로직트리 등 툴을 통한 문제의 해결방법을 저자는 얘기하고 있었다. 회사를 다닐 때 익숙하게 접했던 전략 툴이었지만, 내 상황에 적용을 하게 되니 새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실제의 예시를 들어서 설명되어 있어서, 나의 상황에서는 그럼 어떻게 할 수 있을까로 바꿔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책을 덮은 뒤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몸이 움직이게 되었다.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에게 중요한 우선순위를 먼저 생각하고 나서 정리한 옷장은 달랐다. 이제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과, 욕심으로 안고 있었던 것을 구분하여 정리한 것이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다시 입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가지고 있는 아가씨 때에 입었던 옷, 임부복이지만 편하게 입기 좋아서 가지고 있었던 트레이닝 바지와 같은 것들을 미련 없이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살이 쪄서 이제는 맞지 않는 사이즈의 정장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위한 정장 대여 서비스로 기부를 하고, 사용감이 있는 옷들은 헌 옷을 수거해가는 중고 상인에게 키로에 1300원을 받고 팔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는 옷만을 남겨두었다. 옷장과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식탁 옆에 아이의 그림책과 같이 엉켜서 쌓여있는 내 책을 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 그리고 쌓아왔던 경험들. 그것들의 쓰임을 찾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내 머릿속을 비울 차례였다. 식탁 위의 책들을 모아서 남편의 컴퓨터 책상 옆에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공간이 생기자 아이 책상 옆, 소파 밑, 곳곳에 있던 책들을 나의 작은 공간으로 한 곳에 모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켜켜이 묵혀있던 생각에 미련이라는 먼지를 털어내듯이 말이다. 언제쯤 멈췄는지 모르는 다이어리를 펴서 오늘의 생각 정리를 기록해보았다. 컴퓨터를 켜보았다. 나의 과거와 꿈꾸던 미래들이 뒤엉켜 있는 D 드라이브의 용량이 가득 찼다는 경고음이 나왔다. 여기에도 나의 냉동실같이 정리해야 하는 나의 생각의 영역이었다. 다시 파일들을 열어보며, 나에게 앞으로 중요한 것을 상기해본다. 생각정리를 마치고 나니, 어제의 나에게 수고 많았다는 응원을 건넬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오늘의 나에게는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내일의 나를 기대하게 되는 희망의 조각도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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