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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Jul 16. 2022

가방이 말하는 것

글감 : 가방

 ‘나 40분 뒤에 도착할 것 같아. 10번 출구 앞에서 만나’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면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서두르게 준비해서 나오느라 립스틱을 깜빡한 것 같아, 종종걸음을 걸으며 가방을 열고 립스틱을 꺼내어본다. 립스틱, 지갑, 이어폰, 하리보 젤리, 물티슈. 단출한 자유부인의 가방의 구성이지만, 외출 후 바로 하원 요정이 되어서 아이들을 하원할 때 쓰는 치트 키인 하리보 젤리와 물티슈는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의 가방 안의 필수품이 되었다. 


 오랜만에 평일 오전의 지하철이다. 판교를 향하는 신분당선에는 출근길 인파와 섞여서 금방 복잡해진다. 정장 차림에 노트북이 들어가는 커다란 백팩을 메고 있는 젊은 남자는 아마 판교역에 내리겠지. 노약자석 앞에서 자리에 앉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패기를 보이는 60대가 넘어 보이는 폴대를 꼽은 등산 가방을 메고 있는 할아버지는 아마 청계산 입구역에 내릴 것이다. 내 앞에 서 있는 하얀색 블라우스에 짧은 청바지를 입고 핸드폰도 안 들어갈 것 같은 작은 가방을 메고 있는 10대와 20대 사이의 예쁜 아가씨는 아마 강남역에 내릴 것 같다. 신기하게도 각기 다른 사람들만큼 들고 있는 가방도 각기 다르다. 내 옆에 서서 폰으로 인스타 하고 있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의 가방을 보니, 인스타그램에서 인플루언서가 만들어서 판매했던 기저귀 가방으로 유행했던 가방을 가지고 있다. 기저귀를 차는 아이를 두고 있는 걸 보니 아마 36개월 미만의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을까. 

 

 그때의 내 시간이 생각나서 문득 내 가방을 다시 본다. 드디어 탈출한 기저귀 가방 대신 아가씨 때 메고 다녔던 작은 핸드백으로 바뀐 내 가방을 보며 피식 웃음 짓는다.  기저귀, 보온병, 분유통, 물티슈, 손수건, 치발기, 떡 뻥까지 외출 6종 세트를 담을 수 있는 가방은 아가씨 때에 내가 썼던 가방으로는 부족했다. 가죽의 큰 가방의 빅백으로 메고 있으면  안 그래도 출산으로 뼈 곳곳에 구멍이난 느낌인데 어깨가 금방 소실될 것 같고, 그렇다고 에코백에 이걸 다 넣으면 보온병의 물이 새어서 방수가 안되거나, 가방이 젖어서 기저귀가 젖게 되는 악순환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초보 엄마들은 기저귀 가방에 안착하게 된다. 심지어 유모차를 끌고 갈 때는 유모차 걸이에 걸어야 되기 때문에 가방의 끈의 길이와 넓이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쁜 엄마가 되고 싶기에 디자인도 포기할 수 없는 그 양가감정이 담긴 것이 아마 기저귀 가방이 아닌가 싶다. 


기저귀 가방에 대한 추억을 살리다 보니 내가 들었던 가방들이 생각났다.  20대의 자유로웠던 나의 가방은 늘 다양했다.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갈 때는 원피스와 잘 어울리는 손안에 들 수 있는 작은 미니백을 했고, 중간고사 기간에 도서관에 공부하러 갈 때면 큰 에코백에 전공서적과 노트를 들고 다녔다. 대학교 4학년 취업준비를 할 때에는 늘 매일 뜨는 채용공고에 맞게 이력서를 써야 하기에 노트북과 충전기를 같이 넣고 다녔다. 그러다가 취업을 하고 나서는 정작 가방은 튀지 않는 심플한 가방을 들고 다녔다. 연차가 쌓이고 짬이 올라가자, 이제는 여름휴가 때에 어떤 가방을 '지르느냐'가 주요 안건이 되었다. 왜 나면 직장인들의 퇴사를 막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인 쇼핑 후 할부 갚기로 나의 재직기간을 늘려보기도 했으니까. 그러다가 이제 기저귀 가방으로 까지 넘어오게 된 것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돈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할 때 머릿결과 구두를 본다는 대사가 있었다. 그만큼 사소할 수 있으나 그마저도 챙길 수 있는 여유에 대한 비유였던 것 같다. 나는 돈이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지금을 보려면 가방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방이 말해주는 나의 지금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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