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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Jul 21. 2020

프로페셔널한 임신은 없다.

chap1. 임신부터 시작되는 워킹맘의 고민

경험자만이 알 수 있는 비밀 연대


사실 임신을 눈치챈 몇몇 분들도 계셨다.

얼마전에 애기아빠가 된

엘리베이터를 종종 같이 타는 다른본부의 차장님,

애를 둘이나 낳은 유경력자의 여자 과장님.

역시 경험자는 달랐다.


아침마다 창백하고 쾡한 상태로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탔고,

편의점에서 커피보다

계란이나 소세지 같은 군것질 거리를 사고,

평소 입던 투피스 정장보다

원피스로 많이 입고 다니는것과같은

사소하지만 조금 달라지는 내 모습을

눈치채고 있으셨던 분들도 계셨다.


그리고 그분들도 경험자여서 모른척해주셨다는걸

임신사실이 오픈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왜 숨기는 지도 , 언제 말하는게 좋을지도

경험자였기에 알고있는 것이기에

같이 비밀을 지켜주셨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와 크게 교류는 없어서,

하나의 가십으로도 얘기할수 있을텐데

그 비밀을 지켜준 분들이 정말 고마웠었다.


한편으로는 이런게 비밀이 되어야 하는

현실도 조금은 씁슬했다.

씁슬한 만큼 비밀연대는 그만큼 감사했다.

 

지옥철이 지옥이 되는 순간


임신을 숨기고 있을 때,

점점 숨기기 힘든 이유가 불러오는 배보다

입덧이 가장 컸다.


그 중 지하철에서 정말 많은 일이 벌어졌던것 같다.

집이 남편직장과 나의 직장의 중간위치라,

마을버스+지하철분당선+지하철2호선으로

갈아타며 총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

헬강남역을 뜨루패스해야하는 난코스도있다.


왕복 3시간의 출퇴근길은

쌩쌩하고 에너지넘치는 날들에는

큰 장애가 아니었다.

듣고싶은 음악, 강의, 책,SNS

뭘 하든3시간동안에는

재미있게 보내는 일들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임신하고는 지옥철이

정말 지옥이 되어버렸다.

배가 나오기 시작한 시기는 6-7개월 정도였는데

이 시기에는 배도 많이 안나올 뿐더러

정장을 입고다니니 티도안난다.

티 안나게 입고 다녀야 했으니까.

비지니스 룩에는 나 임신햇어요 룩은 없다.


그러니 입덧이 제일 심했던 3-6개월은

배도 티가 안나고 정장입고 있으니

임산부석에 앉아있기도 민망하거니와

일단 출퇴근길에 지옥철타임에는

임산부석이고 나발이고

우겨넣어서 타기 일수인데

자리 따위 아무소용이없다.


내가 원하는 정류장에 내리려고

비집고 뚫고내리다가 실패해서

한정류장 더 간 적도 있는데,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그래서 서로 숨도 못쉬게 딱 붙어서 껴서

배가 안눌리게 가방으로 배를 막으면서

팔로 배를 보호하는 공간만들기를 했다.


후각도 예민해진 상태라 메스꺼움이 올라오면

중간에라도 내려 토하고 다시타고하니

1시간 30분도 타이트하거니와

회사에 도착하면 진이 빠진다.

(글쓰는 지금도 생각하니 토할것같음 ....)


한번은 지하철역에 내리자마자

지하철 쓰레기통을 붙잡고 토하고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등을 두드려주는데, 웬걸 부장님이었다.

"천천히와" 하고 마지막은 쿨하게 가셨는데

그 순간이 정말 고마웠다.


출근시간임박으로 조마했던 마음과

대관절 따라 주지않는 몸상태의 엇박자가 힘들었는데

천천히 오라는 그말 한마디와,  

끝에는 호들갑스럽지않게 비켜주어서 고마웠다.


프로페셔널한 임신은 없다.


임신사실을 밝히고 나서는 내 책상에는

매번 페라로쉐 한두개가 올라와 있었다.

교육장에 비치되었던 과자도 교육 끝나고나서

비품챙기면서 몇개 씩 챙겨오기도하면서

옆자리에 후배가 자꾸 먹을걸 챙겨줬다.

(유럽여행갔다오라고 응원하던 그 후배ㅋㅋㅋ)


나의 임신사실을 알고 난 남자후배가

나랑 친한 여자 선배한테 메신저를 걸었다고 한다.

자기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나한테 직접 물을 수는 없어서 그런다고,

어떤걸 도와드리면 되냐고 물었다고한다.


'평소하던대로 해, 유난스러울거없어.

정 신경쓰이면 주전부리나 잘 챙겨줘'라고

그 여자 선배가 얘기했다고

나중에서야 점심먹으면서 들으면서

책상위에 계속되는 주전부리 행렬의 이유를 이해했다.

(개감동...)


육아휴직, 임산부 배려석, 임신기 사원 복지...

이런 시스템들을 만드는 것이 물론 중요하다.

시스템이 있어야 문화가 바뀌는 것도 있으니까.


특히나 내가 임신, 육아를 겪고 있는 몇년간

시스템으로도 엄청나게 많이 진화하고

있다는것을 체감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오는 시스템적인 잡음들을 보며

그 현장에 있으면서 아쉬웠고,고마웠던게

동료들의 '임신기에 대한 이해'였다.


배려가 가끔 유난스럽거나 특혜로 느껴져

괜시리 미안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그냥 사람대 사람으로서,

인생의 한 과정으로서의 임신을 바라봐줄때,

임신기의 변화를 기다려줄때

그래도 계속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희망하고

여기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같다.

  

남편도 내가 겪는 입덧과 임신을 온전히 이해 못하는데

회사사람까지 이해시켜야되나 싶긴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남편도 누군가의 회사 동료이고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의 동료일 것 아닌가.


한번도 회사에서 교육듣다가도 졸았던 적이 없는데,

키보드를 치다가도 눈이 감기기도 하고 (나도 어이없음)


매일마다 2-3시간씩 회의하고 나오던 컨퍼런스룸인데,

커피+담배+습기의 냄새의 적층구조까지 느껴지는

카펫트 냄새도 맡게 되고 (개가 된줄)


회의때 하고싶은 말은 원래 다 하고 있었고,

아닌건 아니라고 말하는 스타일인데

배부른 채로 말하다보니 숨가쁘게 말하다보니

히스테릭하게 보이기도하고.(외부업체 미팅은 피하자)


임신으로 생긴 조절되지 않는 변화들에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도 안되는게 있다는 것을,

호르몬의 노예가 되는 임신기를 겪으면 알게되었다.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은 노력하면 되지만,

임신은 프로페서녈하게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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