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결혼식에 관한 일곱 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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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수

0.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내 결혼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다. 얼마 전에 쇼 사진을 보다가 정말 진짜 만약에 결혼하게 되면 이렇게 입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튜브탑에 하얀 롱 장갑, 청바지, 면사포. 결혼식을 연상시키는 옷 중 이렇게 쿨한 차림은 처음 봤다. 가장 좋았던 건 튜브탑 안에 타이즈를 입어 노출을 줄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말 이런 식으로 입고 결혼하게 된다면 나는 타이즈를 필수로 입어야 할 것이다. 결혼식은 내 지인만 오는 게 아니고 내 팔에는 문신이 많다. 우리 가족과 할머니는 (많이 봐서) 이해하겠지만 먼 친척들이나 할머니 동년배들은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1. 리마인드 웨딩 가족사진을 찍을 때 웨딩드레스(그걸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를 입었다. 엄마랑 드레스를 고르는데 직원분이 자식들은 미니드레스를 많이 입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모부가 사진의 메인이니까 엄마가 메인 드레스를 입고 딸들은 미니 드레스를 입는다고. 근데 나는 종아리를 드러내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내가 보수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 종아리의 모양새가 싫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엄마가 얘는 좋고 싫음이 명확해서 하고 싶은 거 하게 해 줘야 된다며 그냥 너 입고 싶은 거 고르랬다. 나는 누가 봐도 메인 드레스인 풍성한 드레스를 골랐다. 아주 치렁치렁하게 퍼지는 튜브탑 드레스였다. 그때 코르셋을 처음 입어봤다. 갈비뼈까지 조여서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의자에 앉을 수도 없었다. 앉으면 골반까지 내려오는 딱딱한 모형이 허벅지를 짓눌러서 너무 아팠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서있었다. 이딴 거 두 번 다시 입나 봐라, 생각했다. 포토샵 보정도 할 건데 왜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내 인생에 웨딩드레스는 두 번 다시없을 거니까 몇 시간만 참기로 했다. 나중에 받아본 사진은 사람을 너무 똑같이 보정해서 웃길 정도였다. 엄마랑 나는 허리둘레도 다르고 어깨 모양도 다른데 그 사진에서 우리는 데칼코마니 한 듯 뾰족한 어깨와 가느다란 허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예 보정 필터가 있어서 사진에 덧씌우나 싶을 정도였다. 우리를 찍은 사진인데 그 속에 있는 건 우리가 아니었다.



2. 어렸을 때 본 엄마 아빠의 결혼식 사진 속 엄마는 공주보다는 마녀 같았다. (그땐 공주 아니면 마녀가 인생의 전부였다.) 물론 나는 마녀를 좋아했다. 자를 대고 그린 것처럼 각지고 진한 눈썹과 입술 외곽까지 꽉 채워 바른 빨간 립스틱 때문에 엄마는 좀 못돼 보인다. 그 진한 화장은 엄마에게 안 어울렸다. 그래도 나는 그 사진이 좋았다. 나는 모르는 스물 초반의, 내 엄마가 아닌 똥(엄마의 별명이다.)으로서 살았던 인생의 한 조각이니까. 그 옆에는 엄마가 선녀 같은 옷을 입고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있다. 보라색이 많이 가미된 분홍 계열의 색상과 하늘하늘하고 투명한 소재 때문에 선녀가 떠올랐다. 아빠는 황태자 옷을 입고 있다. 뮤지컬에서 왕자 역 배우들이 입고 나오는 황금빛 휘장을 두른 제복이다. 그다음에는 웨딩카를 타고 입장하는 본식 사진이다. 안 봐도 주례다 뭐다 두 시간은 걸렸을 것 같다. 사진 속에는 지금과 비슷하지만 앳돼 보이는 아빠가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다. 그에 비해 엄마는 별생각 없어 보이는 표정이다. 그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기까지 하다. 내 모부가 되기 전 이 두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대체 왜,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돌아버리게 궁금하다. 만약 그때로 간다면 이 결혼 죽도록 말릴 거다.



3.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결혼식도 엄청난 낭비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전까지는 결혼식이랑 나랑은 아무 관련이 없어 결혼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남의 일이었다. 만약 하게 되더라도 너무 먼 이야기 같았다. 장식하는 풍선이나 꽃 따위도 다 쓰레기고 남는 뷔페 음식도 다 버려진다. 그래서 한아는 자투리 천과 표백하지 않은 천을 이용해 드레스를 만들고, 음식은 한 그릇 요리로 준비한다.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덜 낭비되는 쪽으로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결혼은 되도록 안 할 거지만.



4. 얼마 전에 선생님 결혼식에 다녀왔다. 당분간은 결혼식에 갈 일이 없을 테니 이 분위기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식 순서를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요즘 결혼식은 내가 어렸을 때 갔던 결혼식과는 조금 달랐다. 행진곡도 달랐고 입장 방식도 달랐고 주례도 짧았다. 게다가 사진 찍을 때 핸드폰 플래시를 켜 달라고까지 했다.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는 좋은 생각 같았다. 학원에서 매일 보던 선생님은 회색 트레이닝 복 차림이었는데 정장을 입고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이 모든 게 연기 같았다. 실감이 안 났다.(내 결혼도 아닌데) 축가 대신 마술 공연을 봤다. 같이 간 친구에게 농담 삼아 너 결혼할 때 내가 마술 할게. 지금부터 연습해야겠다,라고 말했다. 걔가 너 그때까지 살아 있을 거냐고 물었다. 내가 맨날 스위스 간다는 말을 해서 그렇다. 우리 결혼하려면 대충 십 년 정도 걸릴 거 같은데 십 년 뒤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스위스 갈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걔 때문에 십 년 뒤의 우리 모습을 처음 그려봤다.(우리 중에 그 친구가 그나마 결혼에 희망을 내비쳤다.) 친구들이랑 함께 살다 보면 스위스 가지 않고 십 년쯤은 견뎌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얘기하다 보니 그 친구 언니가 곧 결혼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오 년 뒤쯤? 그러면 나도 꼭 초대해줘야 된다고 말했다. 나 지금부터 마술쇼 준비할 테니까….



6. 근데 놀랍게도 올 해말에 결혼식에 간다. 당분간 갈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사촌언니가 결혼한 댔다. 결혼에 적정 나이라는 건 없지만 내 생각엔 언니가 너무 이른 나이에 하는 것 같다. 나는 되도록 결혼하지 말자 주의고 꼭 해야 한다면 늦은 나이에 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결혼하는 당사자들 마음이지만 아쉬웠다. 사실 그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방에서 열리는 결혼식이고 엄마나 아빠가 시간을 못 내면 나도 못 가는 거다. 나 혼자 라도 갈 만큼 친밀한 사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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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6 Maison Margiela Spring 2020 Ready-to-Wear

쇼 사진은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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