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마음

백수일기 27

by 미지

오랜만에 퇴근 시간의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두 정거장 만에 아주 불쾌해졌다. 찡그린 표정을 한 사람들이 조금의 빈틈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전투적으로 열차 안으로 밀고 들어왔고, 시큼한 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 5일 출퇴근 시간에 서울 지하철을 타던 시절이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아, 불쾌해. 이렇게 오감이 불쾌한 건 정말 오랜만이다. 땀이 배인 타인의 맨살이 팔에 닿을 때마다 찝찝한 감각을 무시하기 위해 무선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음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환승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플랫폼은 사우나처럼 더웠고, 작은 손풍기를 강하게 틀어봐도 땀이 식지 않았다. 미디어 속에서만 예쁜 여름. 제철 과일을 먹을 때만 좋은 여름. 여름은 주로 싫고, 아주 가끔만 사랑스럽다. 더위에 지쳐갈 때쯤 겨우 환승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역과 연결된 쇼핑몰에 도착해 전 직장 동료 J님을 만났다. 콜드플레이 콘서트 때 만난 게 마지막이니, 세 달 만에 보는 얼굴이다.


한때 같은 팀이었지만, 업무상 크게 공유하는 부분은 없었던 그녀와 나는 공통 관심사 때문에 쉽게 친해졌다. 빵을 좋아하고, 공연과 문화 콘텐츠를 좋아하는 우리는 점심을 같이 먹을 때마다 맛있는 빵집과 뮤지컬에 대해 떠들었다. 몇 달 만에 만났는데도 회사에서 같이 점심을 먹던 평범한 나날 같았다. 그저 일상적인 수다를 떨었다. J님은 말간 낯으로 아직도 콜드플레이 콘서트 세트 리스트를 그대로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게 왠지 좋았다.


더는 직장에서 만나지 않지만, 여전히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이.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고마운 일이 늘었다.


백수가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고마움이다. 이 더운 여름에 굳이 백수를 불러 내서 밥을 사주고, 응원을 건네주는 사람들. 특별한 것 없는 하루에 특별함을 더해 주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건 물질 없이도,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누군가의 호의는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좋아하는 것을 더 아름답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J님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콜드플레이의 음악을 들었다. A Sky Full of Stars를 듣고 있었지만, 하늘에는 별 하나 없이 커다란 달이 떠 있었다. 콜드플레이 콘서트에서 문글라스를 쓰고, 반짝임 가득한 세상을 보았던 게 떠올랐다. 문글라스를 쓰고 같이 춤을 추자고 말하던, 양갈래 머리를 한 소녀의 실루엣도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했다. 마음에 하트 모양의 문글라스를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랑과 감사로 삶을 채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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