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독서

백수일기 26

by 미지

책은 항상 그대로다. 인쇄되어 나온 그대로. 첫 페이지를 펼친 순간부터 누렇게 색이 바래 묵은 종이 냄새가 날 때까지 변함없이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만, 독자인 나는 매일 조금씩 다른 일상을 보내며 변화한다. 그래서 어떤 책을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다시 읽으면, 의아할 때가 많다. 과거의 나에게 묻고 싶은 것들 투성이다. 왜 이런 책을 좋아한 거냐고, 도대체 이 부분에 밑줄은 왜 그었던 거냐고, 왜 이 감동적인 부분에 밑줄도 메모도 없는 거냐고,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한 거냐고.


백수 기간 동안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한 뒤 조금씩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알라딘에 책을 팔거나 주변에 책을 나누기 위해 책을 분류하다 보면, 가끔 오래전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분명 읽었던 책인데 무슨 내용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왠지 다 읽은 책이 '안 읽은 책' 같아서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탓이다.


책 몇 권을 쌓아둔 채 기계적으로 바코드를 찍으며 중고 매입 가격을 확인했다. 균일가 매입 1,000원. 매입 불가. 3,800원. 몇 권의 책을 찍고 나니 도미니크 로로의 책 『심플하게 산다』의 차례다. 미니멀 라이프에 처음 빠졌을 때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샀던 책이다. 미니멀의 바이블과도 같은 책.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책을 펼쳐 대강 내용을 보다가 다시 읽고 비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데, 어라, 이게 무슨 일이지. 예전에는 별로 흥미롭지 않았던 뒷부분이 더 재밌다.


이 책은 물건, 몸, 마음이라는 세 가지 큰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예전에는 물건에 관한 부분만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짐을 줄이는 일. 물건 없이 텅 빈 집에서 단순하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만 이 책을 읽었던 것이다. 백수가 되어 다시 이 책을 읽으니, 앞은 다 아는 이야기 같고 마음 부분이 새로웠다.


단순히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던 과거의 나. 복잡한 생각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단순하고 정돈된 삶의 방식을 가지고, 만족스러운 삶을 꾸리고 싶은 지금의 나. '마음'에 집중한 채 두 번째 독서를 하는 동안 과거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무언가 달라진 모양이다. 그때는 별로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던 문장들이 일기장에 반듯하게 써 두고 싶은 이야기가 됐다.


『심플하게 산다』를 기록하면서 남은 시간 동안 더 열심히 책을 읽기로 다짐했다. 도미니크 로로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스스로 상처받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아무도 상처를 주지 못한다. 고통은 우리가 어떤 사실을 고통이라고 해석할 때만 나타난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해석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183-184p)


한심한. 안쓰러운. 부러운. 정신이 썩어 빠진. 백수를 바라보는 수백 가지 시선이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면 다 잡음일 뿐이다. 백수 4주 차. 과거를 마주하고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기로 한다. 어제의 우울은 책과 함께 덮어버리자.


우리가 사는 동안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은 하나도 없다.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굳어지지 않았다는 것, 아직 젊다는 것을 증명한다. 변화하는 것을 멈추면 우리는 죽는다. (196p)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비결은 자신의 마음속에 언제나 변치 않을 자아가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아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치 있는 존재다. 그 자아가 중심을 지키면 큰 어려움 없이 변할 수 있다. (198p)


심플하게 산다는 것은 단지 간소한 삶에 만족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플한 삶은 보다 고결한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동경하는 것이기도 하다. 심플한 삶은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 것, 가장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것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을 뜻한다. (230-2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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