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들의 세상

근데… 착한 척은 좀 안 하면 안 되니?

by 태어나길 반골

삼진이면 아웃인 건 야구의 룰 만은 아니다.

태어나길 반골인 나와는 달리 태어나길 제도권안인 친구가 있었더랬다. 어떻게 친구 일 수 있었을까. 지금 보니 친구가 아니었긴 했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힘든 시절을 겪긴 했었다지만, 같은 경우의 나와는 달리 태어나길 금수저 은수저 가득한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집안의 모든 친척들이 귀애하는 조카. 왜 그런 말 있지 않나, 구김살 없고 꼬인 곳 없는 서글서글한 사람 좋은. 적고 보니 정말 교과서 적인 수식어가 줄줄이 붙어있는 그런.

물론 나와는 학교 동기라는 공통점이 없었다면 얼굴도 볼일 없었겠지만, 어쩌다 보니 동기에 과대, 총무라는 일을 같이 하게 되어 엮였지 뭔가. (아마 거기서부터 꼬인 듯싶다. 물론 그 잘난 친구가 과대였지) 학교 다니며 노트며 자료며 나에게 줄줄이 얻어가고(어머, 이미 호구였군) 졸업하고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며 몇 안 되는 동문이라는 말로 학교 때 보다 더 친하게(?) 되었다.

멍청하게도 나에게 없는 사회성이라는 것으로 모든 주위 사람들의 호감을 한 몸에 받는 친구를 정말 좋아했었다. 이 정도면 우정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싶을 정도? (진짜 사귀는 거 아니냐는 천지가 개벽할 오해도 받을 정도였다고) 노조 관련 이슈가 있었을 때 경찰서로 잡혀간 친구를 만나려고 애어멈인 내가 약혼녀로 둔갑해 만나서 안부를 확인할 정도로 찐 우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아름답지 않고 글머리에도 썼듯이 이건 아름다운 우정에 관한 글이 아니다.

노조 관련 이슈 이후 나는 승진에서 물먹고 내리막을 걸을 때도 그 친구는 불이익 1 도 없이 고속승진의 길을 걸었다. 그래도 ‘너라도 잘 풀려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 멍청한 나. 왜 몰랐을까. 정말 장님이었다. 여자 직원들은 한 번도 배치된 적 없는 곳으로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그 친구는 미리 알고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알아봤자 마음만 상할 테고 말하기 힘들었다나. 그래 좋아. 그럴 수 있다. 원스트라잌.

상사의 부당한 업무지시로 타 부서 상사에게 대차게 까였을 때, 업무지시를 내린 상사와 친한 그 녀석에게 상황을 털어놓을 때도 ‘그분이 왜 그러셨을까, 참 답답하다.’라는 미적지근한 대응을 하는 모습에도 서운하긴 했지만 그럴 수 있다. 생각했었다. 그 녀석도 한 집안의 가장이니 인사 고과를 쥐고 있는 상사를 나랑 같이 씹어줄 순 없었겠지. (이건 순진이 아닌 것 같은데…?) 뭐 이건 파울정도.

나를 직장에서 잘라버리겠다고 떠벌리고 다니던 상사의 아들 결혼식에서 봉투를 받고 있었다는 동료들의 말에도 ‘거절하기 힘들었다.’라는 녀석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물론 속상하긴 했었다. 그래도 너라도 잘돼서 덕좀 보자 농담도 했었다고. 아… 멍청한 과거의 나. 이때라도 눈치챘었으면 좋았다. 투스트라잌.

그러나 이번건은 타격이 크다. 나를 한직으로 밀어낸 업무배치가 승진해서 내가 속한 그룹의 관리자가 된 녀석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업무배치 2주 전부터 지금의 내 위치가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둥. 같이 일하는 다른 동료를 언급하며 이동될 것 같다는 둥. 하도 낌새가 수상해 대놓고 물었다. 전환배치에 나도 포함되냐고. 신임 팀장의 솔메이트라는 별명까지 있는 녀석이면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전혀 아는바 없어. 나도 새로 맡은 업무로 바빠서 팀장님 얼굴 볼일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놈의 말을 나는 정말 믿었다고.

그리고 다음 주. 팀 내에 소문이 다 퍼진 다음에야 내가 아주 물먹었음을 알았다. 그것도 팀 막내를 통해서. 관리자 그룹의 수다쟁이 한 명을 통해 공식 발표 전에 파다하게 소문난 업무 전환배치를 나는 왜 절친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들을 수 없었을까.

이건 그 새끼를 욕할게 아니라 멍청한 나를 탓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듣자마자 전화로 확인했을 때도 놈은 본인은 극구 몰랐다고 했다. 모를 리가 없잖아? 관리자 회의에서 이미 의논했다는데. 이로써 나는 혼자만의 우정에서 정신을 차렸다. 아… 진정한 호구가 여기 있었다. 정말 비참하다. 현재 나는 세상 모든 것에 화를 내는 중이다. 미친년처럼.


그런데 말이야, 다 아는 처지에 이제 착한 척은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네가 몰랐다고 하면 몰랐던 게 되니? 팀 내에 모든 사람이 널 보고 팀장의 쏘울 메이트라고 하는 거 모를 리가 없잖아? 이제는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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