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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Jun 27. 2021

순임 씨는 잔소리가 없었다

[글모사 9기] 엄마의 말 - 잔소리보다는 실패할 자유를

오늘 아침 나의 엄마, 순임 씨로부터 카톡이 왔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이 아침부터 딸의 사진을 들춰보며, 딸의 미모를 걱정하는 엄마의 관심에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순임 씨를 군인 아줌마라고 부른다. 

말이 떨어지면 바로 행동하는 초특급 행동력과 실천력에 혀를 내두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 문자만 해도 그렇다. 딸의 사진을 보다가 눈이 답답해 보였는지, 머릿속으로 '쌍꺼풀 수술을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바로 문자를 보낸 것이다. 한번 권유는 했지만, 내가 안 한다고 하면 또 그뿐이다. 세상 쿨하게 포기하고 잔소리를 하는 행위는 일절 하지 않는다. 잔소리보다는 통보를 하고, 통보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포기도 빠른 편이다. 


학창 시절에는 잔소리가 너무 없었던 순임 씨에게 오히려 서운했던 적도 있었다. 

특히 시험 기간이 되면 여느 엄마들처럼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쯤 뱉을 만도 한데, 나는 살면서 엄마로부터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루는 그게 너무 이상해서 순임 씨에게 물어보았다.

"엄마는 왜 나한테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해?'

"공부를 하란다고 하나,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러다가 진짜 안 하면 어떡하려고?"

"어떡하긴, 안 하면 니 손해지"

이런 식이다. 순임 씨의 이런 반응 때문에, 오히려 오기가 발동해서 그나마 조금은 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대학 선택, 진로 선택 등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나의 인생플랜에서 엄마가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어릴 때는 나에게 무심한 듯 보이는 엄마의 이런 마인드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어느덧 내가 엄마가 되고,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 되어보니 이제 알겠다.

엄마는 나에게 무심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순임 씨는 그릇이 큰 엄마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물로 우리를 만들어 그 속에 물고기를 가두어 기르는 가두리 양식보다는 드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는 자연산 양식으로 그렇게 나를 바라봐준 것이다.  




순임 씨와는 달리, 

나는 가두리 양식에 가까운 교육 방침으로 하루 걸러 하루꼴로 아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윽박지르는 등 자꾸만 내 예상을 벗어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거리고 있다.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도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아이는 크고 엄마는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이런 고민을 엄마에게 털어놓고 하소연을 할 때면 순임 씨는 어김없이 이렇게 말한다.

"니는 안 그랬는 줄 아나? 니는 더했다. 원래 애들은 다 그렇게 큰다. 네 생각대로 큰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다" 순임 씨가 이렇게 말해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거칠고 험난한 파도가 몰아치듯, 자식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이 몰려들 때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고, 하소연 끝에는 엄마의 이 말을 듣고 안심을 하게 된다. 


그때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순임 씨의 이런 교육 방침들이, 엄마로서의 방황 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순임 씨는 나에게 잔소리 대신 실패할 자유를 주었다. 

좁고 갑갑한 테두리에 가두어 잔소리 폭격을 날리기보다 

시도하고, 때론 실패하고,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유를! 


수많은 실패 끝에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들을 찾아내며, 나답게 사는 방식들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한 걸음 뒤에서 지켜봐 주었던 것이다. 

그런 순임 씨 덕분에 지금의 나는 

일도

사랑도

이루고 싶은 꿈도

나 답게 사는 방식들을 찾아 스스로 결정을 내렸고,

거듭되는 시행착오 끝에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 답게 사는 방식을 찾으려 노력하며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순임 씨 같은 엄마를 만나게 된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순임 씨가 제안했던 쌍꺼풀 수술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 또한 내 결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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