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글향 Jul 04. 2021

무엇이 나를 이토록 쓰게 만드는 가?

[글모사9기] 관찰-글쓰기를 통한 일상의 재발견

뚜벅뚜벅. 

가로등 불빛조차 희미한 좁은 골목에서 누군가 내 발걸음을 쫓아 나를 따라오고 있다.

타닥타닥.

발걸음을 빠르게 거의 뛰다시피 집으로 향했다. 그러자 나를 따라오던 그 발걸음도 속도에 맞춰 뛰기 시작한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오늘따라 집에 빨리 가겠다고 으슥한 골목길을 선택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타다다다다닥.

집을 몇 발자국 앞두고 빠르게 뛰었지만, 한쪽 팔을 붙잡히고 말았다.

"저기, 아가씨 시간 되면 차 한잔 하죠."

새어 나오는 말 사이로 알코올 냄새가 지독히 번졌다.

"아뇨! 싫습니다."

"어허이. 잠깐만 이야기 좀 하자니까."

"아니, 싫다는데 왜 이러세요?"

공포스러움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고함치듯 소리치며 붙잡힌 팔을 있는 힘껏 뿌리쳤다. 그리고는 초인적인 힘을 가동해 집을 향해 냅다 뛰었다. 끈질긴 발걸음도 미친 듯이 따라온다.

그때, 고함소리에 달려 나온 아빠가 보였다. "아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아빠에게 달려갔다. 

비명소리에 놀라서 뛰쳐나온 이웃 사람도 보인다. 이웃 사람은 경찰관이었다. 경찰은 도망가는 발걸음을 재빠르게 쫒았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갓 스무 살 무렵에 있었던 아주 무서운 기억의 일부이다.  지금은 그 사건의 일부분만이 조각으로 남아있다. 사실 기록한 것들이 백 퍼센트 정확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워낙 강렬했던 기억이었기에 남아있는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끼워가며 기록해본 것이다. 그날 이후 호신용 알람 스위치를 가방에 한동안 넣어 다녔고,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절대 가지 않았다는 것. 지금도 여전히 골목길을 피하는 버릇이 남아있다는 것만이 아득하게 존재한다. 그날의 나는 왜 늦었는지, 그 이상한 사람은 어디에서부터 쫓아왔는지, 이웃 경찰관이 쫓아가서 어떻게 해결했는지... 등의 구체적인 기억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나는 왜, 위의 이야기를 꺼내어 기록해보았을까?


좋은 기억도 아닌데, 아름다운 이야기도 아닌데, 

어쩌면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카롭고 뾰족했던 기억의 파편들을...

굳이, 도대체 왜 내어놓은 것일까?

이유는 하나다.

그때의 내가 글쓰기를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어마 무시한 사건을 통으로 기록해두었더라면, 두려움이 걷어진 지금의 내가 그때의 사건을 다시 들춰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서였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름답고 예쁜 것만 추억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쩐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진정한 삶이 아닌 듯 느껴진다. 현실이 아닌, 동화 속 이야기로만 장식될 것 같다. 


이야기 사냥꾼, 글꾼의 인생을 선택한 지금의 나는 동화 속 아름다운 이야기만 나열하는 글보다 인생의 단맛, 쓴맛, 짠맛, 매운맛 등 다양한 맛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글 그릇에 가득가득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누구나 겪을 법한 우리가 살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들이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이토를 쓰게 만드는 것일까?


'관찰'이라는 주제로 글감을 떠올리다 보니 

나에게서 관찰의 의미는 곧 소소한 일상에 드리우는 돋보기였고,

일상을 소재로 풀어내는 글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흩날리는 먼지 같은 기억의 조각들을 발견하고, 

발견한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관찰하고

관찰한 것을 글로써 가공해내는 것

즉,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내 삶을 '관찰'하기 위한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내 삶을 관찰하며 글을 쓰면 무엇이 남는다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언제나 느낌표가 가득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을 만났고, 등산도 해보고, 수영도 해보고 각종 동호회에 나가서 뭔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주말마다 멋진 풍경을 두 눈에 가득 담아내며 사진도 찍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재밌는 영화 또는 공연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렇게 항상 즐길 거리를 찾아다니며 재미있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나 스스로도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루할 틈 없이 보내는 하루하루가 계속될수록 왠지 모르게 공허하고 불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아실현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연이어 접하게 되었다. '나로 살아가는 기쁨', '연금술사', '왓칭', '데미안', '9번째 지능', '꿈꾸는 다락방' 등... 자기 계발 서적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면서부터 서서히 깨달음이 왔다. '아,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이 만든 창작물을 소비하면서 감탄만 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었구나!' 


느낌표만 가득했던 내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물음표를 드리우고 싶어 졌다. 남들이 만든 창작물에 감탄만 하지 말고 내 삶에 물음표를 드리우며 내 것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낌표만 있는 삶을 살면서 내 것을 만들기는 어려운 것이다. 자기만의 콘텐츠! 내 것을 만들려면 질문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며, 질문을 통해 발견하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결국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글쓰기를 하면 내 것이 생긴다. 나만의 특별한 콘텐츠가 남는 것이다.



지금 나의 글 밭에도 온통 물음표가 넘쳐난다. 


갓 스무 살 무렵에 있었던 두려운 기억들을 적어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때도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질문해보았고

왜 그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인지? 질문해보았고

무엇이 나를 이토록 쓰게 만드는 것인지? 질문해보았고

내 삶을 관찰하며 글을 쓰면 무엇이 남는지? 질문해보았다.


글을 쓰면서도 온통 질문 투성이었고, 

질문에 대해 답을 적어 내려가며 드디어 알게 되었다.


나는 단맛, 쓴맛, 짠맛, 매운맛 등 

우리가 살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내가 글이 쓰고 싶은 이유는 

내 삶을 '관찰'하기 위한 것이고,

관찰을 통한 글쓰기를 하면 

나만의 특별한 콘텐츠가 남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특별한 관심이 생겼고

일상에 물음표를 드리우며 이야깃거리들을 발견하고

발견한 것을 기록하는 순간부터

평범했던 나의 일상이 아주 특별해졌다.

그것이 나를 그토록 쓰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시작은 나로부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