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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Jul 14. 2021

우연히 발견한 간절함

[글모사9기]우연-내 안에 숨은 보물찾기


우연히 발견했다


고요한 새벽. 저절로 눈이 번쩍 떠졌다. 평소와는 달리 매우 이른 시간이다. 여유로운 주말이어서였을까. 오랜만에 일찍부터 하루를 즐겨보기로 마음먹고 읏차! 하고 몸을 일으켰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커피를 한 잔 탄 다음, 개운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자, 지금부터 무엇을 하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루 스케줄을 적어본다. 마땅히 해야 하지만 하기 싫어서 꾸역꾸역 묵혀두었던 목록을 들춰본다.  

운동은 싫지만 건강을 위해 뛰어야 하니, 가벼운 산책?

채소는 싫지만 균형을 위해 먹어야 하니, 샐러드 요리?

청소는 싫지만 청결을 위해 치워야 하니, 대청소?

하기 싫은 목록을 적고 있자니 영 내키지가 않았다. 이러다 또 안 하겠다 싶어서 마음속으로 양념을 치기 시작했다. 하기 싫은 것들을 하고 싶게 만드는 달콤한 유혹을 붙여보기로 했다.

운동은 싫지만 평소에 즐겨 듣던 음악을 들으며 산책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채소는 싫지만 새로 산 소스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니 곁들여 먹어볼 수 있겠지?

청소는 싫지만... 양념 치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포기.

이 중에서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산책이었다.

그리하여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새벽 산책을 나가보기로 한다.


두 발은 걷고 있고, 두 귀는 음악을 듣고 있으며, 두 눈은 풍경을 바라보았고, 머릿속으로는 다양한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어느 정도 걸었다 싶었을 때,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새벽 공기를 크게 들이 마쉬며 두 눈도 활짝 열어보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본다. 새벽 산책을 어느 정도 즐기고 있었던 바로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를 우연히 발견했다. 


가녀린 들꽃! 가녀린 들꽃이 단단한 바위의 틈을 비집고 피어난 것을 보았다.

'세상에 얼마나 간절했으면 저 단단한 바위틈으로 피어난 것일까?'



단단한 바위를 뚫고 나온 간절함


가녀린 들꽃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나 간절한 사람이었나. 어떤 것을 간절히 바랐으며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꼭 하고 싶었던 일을 찾은 적이 있었던가. 가슴속을 파고드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왠지 모르게 주춤거렸다. 일에서 느끼는 만족이 사라져 사소한 즐거움, 무언가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아서이다. 그런 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묻는 것은 허를 찌르는 질문과도 같았다. 


단단한 바위를 뚫고 나온 가녀린 들꽃이 위대해 보이기도 했고, 그 간절함이 부럽기도 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다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려던 순간, 갑자기 번쩍 떠오른 것이 있었다. '아, 나에게도 간절함이 있네?' 장기간의 해외여행도,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도,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한 발버둥도 아닌 지금 당장 간절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지금 이 상황, 이 생각들을 글로 담아내야겠다는 간절함이었다.



우리 안에 숨어있는 간절한 보물찾기


나는 어릴 때부터 표현이 서툰 사람이었다. 내 안에 들어있는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자유분방하게 표출하지 못하는 성격적인 기질이 있다. 그렇게 말이나 행동으로는 속 시원하게 해소가 안되다 보니, 글을 썼던 것 같다. 겹겹이 쌓여 무거워진 감정들이 글을 쓰고 나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도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깊은 상실감을 겪은 후, 언제나처럼 아무렇지 않게, 아무 내색도 없이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남들은 내공이 강한 사람, 단단한 바위 같은 사람으로 나를 보는 듯했다. 스스로도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할 정도였다. 하지만 내 안에 들어있던 묵직한 감정, 무기력함, 상실감,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제대로 해소되지 못한 채 겹겹이 쌓이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보였지만 속으로는 원인 모를 병명에 시달리며 골골거리고 있었다. 이것은 우울함과는 또 다른 결이었다. 그때, 스스로 내린 처방이 글쓰기였던 것 같다. 고요한 시간에 나 혼자만의 글쓰기 시간을 즐기며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들이 조금씩 해소되고 있었다. 단단한 외면을 뚫고 나온 들꽃의 간절함. 그것은 나의 글쓰기였다. 


내 안에 숨어있었던 보물, 글쓰기를 우연히 발견하고부터 삶이 풍요로워졌다. 글쓰기로 작은 성취감과 만족감을 얻어본다. 오늘의 간절함이 나중에 비로소 큰 꿈이나 바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주 작고, 너무나 사소하고, 일상과 다를 바 없지만 그런 간절함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인생은 보물 찾기와도 같다.

찾으려 해도 찾아지지 않는

찾지 않아도 우연히 찾아지는


보물들은 우리 안에 숨어있다가 

어디에선가, 어느 때인가 나타난다.


세상에 보물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가진 것을 우연히 발견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내 안에 작고 여린 들꽃의 간절함이

바위같이 단단한 외면을 뚫고 나오는 순간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보물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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