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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Sep 02. 2021

풍경소리

마지막 문장이 고정된 소설쓰기

"아, 겨울이 왔구나."

나뭇가지마다 솜털같이 가벼운 눈꽃이 내려앉은 오후, 그녀가 불현듯 읊조렸다. 고등학교 동창인 그녀와 내가 오랜만에 카페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신다. 유리창에 부딪히며 활짝 핀 눈꽃을 본 그녀는 어머니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야겠다며 휴대폰을 들었다. 그녀가 스물여섯이 된 해, 그녀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앓은 당뇨병에 의한 합병증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하지만 그녀는 좌절을 건너뛰고 앞길을 묵묵히 걸었다. 어린 여동생과 세상의 빛을 잃은 어머니를 책임지고, 밝고 당당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7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그녀의 곁에서 함께하지 못했다. 먹지도 않은 생선가시가 늘 목에 걸려 있는 것 같이. 그 상태로 그렇게 세월이 흘러버렸다.


벌써 16년 전 일이다. 수학학원에 가는 버스 안에서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선한 눈망울의 어떤 여자애가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그때 난 수줍은 소년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날 쳐다보면 딴 델 봤고 내가 보면 그 아이가 딴 델 봤다. 그러다가 서서히 내려야 할 정류장이 다가왔고, 문이 열리기 직전까지 버티다가 끝내 급히 튀어 내렸다. 버스 창문으로 비친 단발머리의 선한 눈망울의 여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로 날 보고 웃고 있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버스 앞을 가로막아서라도 세우고 싶었다. 그다음 날부터 한동안 같은 시간에 그 버스를 탔지만 그 아이는 거기 없었다. 빠르게 행동하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하며 좌절과 후회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 점심시간 왁자지껄 떠드는 친구들의 행렬 사이로 한줄기 빛이 보였다. 단발머리의 선한 눈망울의 그 아이가 차분한 발걸음으로 스치듯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두 번의 기회는 놓칠 수 없었다. 그날은 나와 그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버스 창에 눈이 부딪히는 날이었다. 수건으로 사이드 미러를 닦는 기사 아저씨,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는 여학생,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남학생, 누군가의 얘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신나게 떠들고 있는 아주머니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고개를 꾸벅꾸벅 인사하며 졸고 있는 아가씨, 그 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어딘가로 가는 승객들이 모두 쓸쓸해 보이는 건 버스 창에 부딪히는 눈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와 그녀의 이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나의 선택이었다. 나는 서울에 위치한 대학을 원했고, 그곳에서 인생을 탐구하며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녀와의 이별은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나는 다짐했다. 반드시 성공의 명찰을 달고, 다시 그녀의 곁으로 당당히 돌아올 것이라고.


너무나 길고 길었던 시간, 까마득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다시 그녀와 마주 앉았다. 꿈인지 생신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몇 번이고 상상했던 일이었다. 내가 없는 시간 동안 캄캄한 세월을 보냈을 그녀였음에도, 나는 그녀에게서 어둠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우면서도 가슴 한편이 저릿해져 온다. 지금 카페에도 그랬다. 어머니의 눈을 대신해 눈 내리는 풍경을 전하려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나는 문득 그녀에게 물었다.

"어머니 눈 좋아하셔?"

수년간 유리창에 부딪히는 눈을 볼 때마다 그녀를 생각했던 나였다.

"응. 보시진 못하지만 눈 오는 소리를 좋아하셔."

"눈 오는 소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어?"

"바람에 부딪히는 눈 소리. 엄마는 풍경 종으로 그 소리를 듣는 것 같아."

"그렇구나.. 풍경.. 소리... 풍경 종!"

나는 그녀에게, 그녀의 어머니께 풍경 소리를 선물하려 한다. 앞으로 매년 겨울이 올 때마다 그녀의 곁에서 평생... 그 풍경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그 옛날, 인생은 탐구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녀의 곁을 떠났고, 나는 그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실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의 선택도 실수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또다시 길고 긴 세월이 흘러간다 해도, 나는 지금의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신나는 글쓰기 9일 차 미션 : 마지막 문장이 고정된 소설 쓰기 *

글 쓰는 사람은 첫 문장 쓰기를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글쓰기 책에서는 훈련 방법으로 소설의 첫 문장으로부터 출발하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첫 문장을 쓰면 또 다음 문장이 막막해집니다. 글쓰기란 그런 것이지요. 글이란 것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쓰는 게 원칙이긴 합니다만, 때로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려볼 필요도 있습니다.

오늘의 미션은 마지막 문장을 보고 앞부분을 채우며 소설을 작성해보는 것. 결말을 미리 결정 지어 놓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짜 맞추는 것이지요. 소설가가 되었다 상상하시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모순>  / 양귀자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로맨스 소설 쓰기에 도전해보았습니다.

마지막에 고정된 문장에 따라 앞부분을 채우며 소설을 작성해보는 미션!

소설 쓰기에 처음 도전해보아서 일까요? 

많이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비록 그 내용이 별로일지라도

도전은 언제나 설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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