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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Feb 25. 2022

꽂힌다는 말에 꽂혔다

완벽한 순간을 디자인하기

어젯밤 자기 전에 하릴없이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요즘 어떤 것에 꽂혀있나요?"라는 문장이 두 눈에 들어왔다.

글쎄.. 나는 어떤 것에 꽂혀있지?..

가만가만 '꽂혀'... 꽂힌 다라...!!!

그렇다. '꽂힌다'는 글자에 꽂혀버렸다.

'꽂혀'라는 글자가 모니터에서 튀어나와 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꽂혀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늦은 밤까지 밀린 업무들, 짬짬이 읽다가 말기를 반복한 소설책, 대선 토론, 홈쇼핑 가디건, 음식 하는 과정을 모조리 보여주는 유튜브 영상, 킬링보이스로 듣는 가수들의 노래, 저마다의 개성이 묻어나는 인스타그램 피드 구경.... 세상에는 온갖 자극적인 재미가 넘쳐나고, 그곳에 던져놓은 내면의 나는 또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길을 잃었을 땐 역시 글쓰기가 최고지. 글을 쓰며 생각해본다. 사회적으로 적당히 드러난 내가 할법한 대답이 아닌 것들, 순도 백 퍼센트에 해당하는 꽂히는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순수한 꽂힘은 곧 완벽한 몰입의 세계를 뜻하고, 그 세계에 들어가면 초강력 집중력으로 무장되어 시간이 멈추어버리는 순간들이다. 

이 순간만을 살아도 좋을 만큼 꽂혀버리는 그것! 


얼마 전까지 꽂혔던 드라마가 있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드라마인데(옷소매 붉은 끝동을 아직도 부여잡고 있는 나란 녀석....) 아무래도 사극 로맨스 장르를 좀 좋아하는 것 같다. 드라마를 보다가 꽂히면 드라마 관련 책을 읽고, 역사적 배경을 찾아보며 그 시대를 파헤친다. (로맨스 쪽으로만 아주 깊이 판다.) 이번에도 그랬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출구 없는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정조대왕과 후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파헤치고, 소설책도 몇 번째 읽고 있다. 인제 그만 놓아주어야겠지만, 조금만 더 부여잡고 있어야겠다.


그리고 <쟈뎅 클래스 로얄 헤이즐넛> 원두커피 향에 꽂혔다. 예전에도 좋다고 느꼈는데, 한동안 잊고 살았다. 집에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커피를 뒤적이다가 원두커피가 조금 남아있어서 주문하려고 보니, 쇼핑 알고리즘으로 인해 쟈뎅 커피가 떴고, 집에 도착하여 향을 맡는 순간 잊혔던 그 향기가 생각났다. '아.. 맞아 나는 이 향을 좋아했어!'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매일 아침 쟈뎅 커피를 내려 마신다. 향을 맡는 순간은 정신이 꽃밭을 뛰어다니는 것 같은? 묘한 힐링을 느낀다. 또 언제 식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 향기에 꽂혀있다.


또 <비 오는 날>이 그립다. 시원하게 쭉쭉 쏟아지는 비를 본 적이 언제였던가. 햇빛 쨍쨍한 날도 좋지만, 가끔은 비 내리는 날도 좋아하는데, 그런 날을 느낀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쨍쨍한 하늘만 바라보자니, 좀 물리는 것도 같다. 비 오는 날 특유의 분유기에 꽂히고 싶다.


따라서

비 오는 날

혼자 있는 오전 시간에 

잔잔한 뉴에이지 음악이 흐르고

쟈뎅 클래스 로얄 원두커피를 홀짝이며

옷소매 붉은 끝동 소설책을 읽고 있는 시간.

나의 완벽한 순간을 디자인한다면 바로 이런 순간이겠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소소하게 꽂힘의 항목들을 모아본 후, 나의 완벽한 순간을 디자인해보면 어떨까?

"요즘 어떤 것에 꽂혀있나요?"라는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순수한 꽂힘은 곧 나의 취향이기도 하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면, 완벽한 순간을 디자인할 수 있다. 


나의 관심이 필요한 사람은 

남편도, 자식도, 좋아하는 연예인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에.


지금의 내가 꽂힌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며

완벽하게 순간을 디자인하고,

그 속에서 나를 마음껏 사랑해주어야겠다. 

너무 자기애가 충만한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나를 사랑하는 일을 게을리하는 것보단 

이편이 더 좋은 걸 어쩌겠나.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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