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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Jul 06. 2022

글 쓰며 생긴 기이한 습관

레이더망에 감지되는 순간 실행되는 루틴


습관이라는 주제에 따라 글을 쓰려고 보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이상야릇한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레이더망에 감지되는 순간 반복적으로 실행되는 루틴! 그 습관을 펼치기 위해서 일상 에피소드부터 기록해본다.



일상 에피소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떠안을 사람도 있지


비가 주룩주룩 쏟아져 내리는 오후.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정말 그랬다. 새벽부터 내린 비는 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이러다간 온종일, 혹은 일주일, 아니면 한 달 내내 내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비는 그렇다 치고, 굳이 오늘 같은 날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나가는 길. 스스로 선택한 업보였음에도 발걸음은 투덜대듯 물웅덩이를 피해 타박타박 걸었다. 아이의 하얀 운동복 바지가 흙밭에 구불다 왔나 싶은 정도로 누렇게 되었고,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며칠째 눈에 거슬렸다. 장맛비를 뚫고서라도 오늘은 꼭 해결하고 싶었기에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섰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가까운 세탁소였지만, 빗물 지뢰밭을 요리조리 비껴가느라 어렵사리 도착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우산은 또 왜 이 모양인지, 댓 살 하나가 접히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다. 겨우 접고 나서는 '미세요'가 아닌 '당기세요'가 붙은 문을 마주하며 한숨이 푹푹 나온다. 당겨야 하는 수고로움을 더하니 벌써 지쳤다. 습기 가득한 심장까지 드라이하는 심정으로 후~ 거친 숨을 내뱉고서, 주섬주섬 세탁소 주인분께 얼룩진 운동복 바지를 꺼내 보여줬다. 마치 누렁이 바이러스가 내 몸에 닿으면 큰일 날 것처럼 손가락 하나를 까딱거리며 대뜸 한다는 말이 "이런 얼룩은 안 져요. 세탁해도 별 소용없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맡길게요." 올라오는 짜증을 꾹꾹 누르며 말했건만, "큰 차이 없으니 절대 기대하지 마세요!"라고 쐐기를 박는다. "제가 헌 옷을 새 옷으로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계속 강조하시나요. 알겠으니 세탁해주세요. 언제 찾으러 오면 되나요?" 꽤 날카로운 비수를 꽂아보려 했지만, 주인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내일은 절대 안 됩니다. 수요일도 장담할 순 없어요. 다시 받기까지는 최소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라고 말하더랬다. 불쾌감을 유발하는 주인장의 말투! 뚜껑이 열린 나는 잠시 한판 뜰까도 생각해봤지만, 이내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옷을 챙긴 후 나와버렸다. 뭐가 그리도 부정적이란 말이더냐. 부정이라는 철통 갑옷으로 무장한 사람은 이 길 도리가 없다. 그저 속으로만 호기롭게 외쳐볼 뿐이다. '에잇 퉤퉤! 잘 먹고 잘사쇼! 내 두 번 다시는 오나 봐라!' 하지만 인장은 알려나 몰라. 부정적 말투로 인해 천 냥 빚을 갚기는커녕 빚을 떠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글 쓰며 생긴
세 가지 기이한 습관


세탁소 주인장과 한판 뜰 뻔했던 일상 에피소드를 펼친 이유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긴 기이한 습관을 설명하고 싶어서이다. 일상 이야기가 레이더망에 감지되거나, 책을 보고 들어오는 문장, 산책 혹은 목욕하다가 번뜻 떠오르는 아이디어 등을 날려버리지 않기 위해 생긴 기이한 습관들이 있다. 아마도 글을 쓰지 않는 일반적인 시선으로 볼 땐 꽤 독특한 습관이긴 할 것 같다.  



기이한 습관 첫 번째

이야깃거리가 감지되면, 글 제목부터 뽑아본다.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가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임에도 감정을 건드리거나, 기록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났을 때는 레이더망이 까딱까딱 발동한다. 그럴 땐 주요 에피소드 떠올리며 제목을 생각해보게 된다. 위의 세탁소 일상을 경험하고서 생각해본 제목은 <세탁소 주인아 주인아 헌 옷 줄게 새 옷 다오 / 비와 당신 때문에>로 패러디 버전이 떠올랐다. 참고로 제목을 먼저 떠올렸다 하더라도 글을 쓰고 나면 바뀌게 된다. 어찌 되었건, 글을 쓰면서부터 사소한 일상 이야기에도 제목을 지어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기이한 습관 두 번째

주요 사건을 나와의 채팅창에 마구 기록하며 저장해둔다.


남들이 만약, 내 핸드폰 속의 '나와의 채팅창'을 보게 된다면... '저 사람 머리가 살짝 아픈 거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맥락 없이 기억을 마구 욱여넣은 듯한 기록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랑 무슨 이야기를 저리도 많이 나누는 것일까 싶겠지만, 내 기억력의 한계를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생생한 사건들을 허무하게 날려버리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이야기가 휘발되기 전에 재빨리 기록해야 하므로 급한 대로 나와의 채팅창에 키워드를 집어넣는 것이다. 위의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였다. 비 오는 날의 풍경, 짜증스러웠던 감정, 고장 난 우산, 당기세요 문, 부정적인 주인의 말투 등을 채팅창에 기록해두었고, 그중 일부를 글로 담아낸 것이다.



기이한 습관 세 번째

채팅창에 적어둔 에피소드는 필요한 곳에 써먹는다.


그렇게 해서 저장된 에피소드는 글이 될 때도 있고, 버려질 때도 있다. 마치 냉장고에 저장된 음식처럼, 저장된 에피소드는 잘 어울리는 곳에 글감으로 사용된다. 위의 이야기는 잘 어울리는 곳이 아닌 급한 곳에 사용되었다. 사실, 세탁소 이야기로 쓰고 싶었던 글은 부정적인 말투, 말씨로 인한 손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좀 더 저장해서 알맞은 곳에 넣어야 했지만 급한 대로 이곳에 써먹어 버렸다.  



이러한 습관이 글을 쓸 때마다 반복되니, 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습관이 또 어떻게 바뀔진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이런 루틴으로 글을 쓰게 된다.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손을 번쩍 들어볼까나?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7월의 주제는 <습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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