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속에 숨은 특별함 찾기
맑고 순수한 아이들을 좋아해서 유치원 교사로 오랜 시간을 살았다. 어린 시절 꿈도, 성인이 되어 선택한 직업도 오직 한 곳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유아교육이라는 학문이 내 안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었고, 나는 어른이었지만 아이들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나름대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유치원 원장님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첫 만남 때부터 왠지 유쾌하고 편안했던 그 남자는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다니는 유치원은 그전과는 달랐다. 내 안에 생명을 품을 준비와 아내로서의 삶에도 집중하고 싶었기에 얼마 뒤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짬짬이 대학원 공부를 하며 그 끈을 놓지 않았고, 아르바이트 형태로 교구 수업을 다니며 분주히 살았다. 그러다 얼마 뒤 아이가 들어섰고,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소중한 아이와 함께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늘어진 티셔츠, 초췌한 몰골로 아이를 재우던 어느 날, 창문 밖 신호등이 눈에 들어왔다. 초록 불이 되자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바삐 길을 건너가는 모습을 보며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 일하며 느꼈던 성취감. 이런 것들이 결혼과 함께 내 삶 밖으로 밀려 나갔고, 시간이 흘러 이제 먼발치에서도 그때 그 시절이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해져 버린 때부터, 나는 나의 특별함을 의심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저 평범함 그 자체도 과분해 보일 만큼 스스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고립된, 배제당한 것만 같은 처참한 기분은 다시금 사회 속으로 돌아가는 나를 갈망하게 했다.
‘나만 빼고 다 특별해 보여.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아이와 교감하며 얻었던 행복도 절대 가볍지 않았지만, 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일할 때 느꼈던 성취감을 다시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리던 순간,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사용했던 목각으로 된 망치 교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흥미롭게 놀이하며 배우는 예쁜 장난감. 저 장난감을 만드는 일은 누가 하는 걸까? 나도 한때는 반 아이들을 위해 재미있는 놀잇감을 만들곤 했었는데….’ 순간 머릿속이 텅 비면서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지 몰라!’
참으로 비장한 생각이었다. 유치원 교사로서의 경험과 교구 제작의 능력치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자신감이 들어온 것이다. 찰나의 생각이었지만, 내 몸이 민첩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곧바로 인터넷을 열어 구직사이트를 뒤져보았다. 마치 내가 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조금 전에 보았던 교육 회사에서 개발과 교육을 담당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귀를 보았다. 이건 운명이라고 여겨졌다. 신기하고 놀라운 마음으로 덥석 지원했고, 며칠 뒤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교육회사에 오랜 기간 몸을 담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선을 내려놓고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다시 도전하려 했을 때 세상은 생각보다 쉽게 내게 문을 열어주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나에게, 꿈에 그리던 삶이 펼쳐진 건 순식간이었다. 그간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과 부대끼며 보냈던 시간과 대학원에서 쌓아왔던 학문이 결합하여 직장에서는 날개 달린 듯이 성장했다. 평범하게 쌓아 올렸던 날들이 직장이라는 곳에서 특별한 빛을 뿜어내게 해 준 것이다. 특히 유치원 선생님들 앞에서 교육 설명회를 하는 날이면, 교사로서의 내 경험들이 더 강력한 빛을 발휘했다. 그들과 나는 한때 같은 일을 한 것에 대해 진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서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고, 교육회사에서의 자리 잡은 내 모습은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도 했다.
지금도 주변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하물며 아이를 키우던 전업주부가 어떻게 교육회사의 팀장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일련의 과정들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으리라 추측한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별다르게 들려줄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원하는 곳으로 망설임 없이 나아가다 보니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사는 것이었다. 내가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 순간들도 뒤돌아보니 무척 특별하게 다가와 있음을. 하루하루 쌓아 올린 오늘이 평범함이 또 다른 이에게는 매우 특별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말할 뿐이다.
나에게 내 삶은 언제나 평범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의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보고 있다는 것.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있다고 믿기 시작한 이후 <<나는 너무 평범해>>라는 그림책을 만날 수 있었다. 주인공 남자아이, 그린이는 고민이 많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나에 관한 글’을 써 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는데, ‘나’에 대해 도대체 뭘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린이는 스스로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영어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피아노도 잘 치는데... 자신을 뺀 모두가 다 특별하게만 보였다.
“우리 반에서 구구단을 아직 못 외우는 사람은 나와 진영이뿐이다. 그런데 진영이는 그림을 잘 그린다. 엄마는 친구 딸이 <해리 포터>를 영어로 읽는다고 오늘도 감탄하셨다. 나는 구구단도 못 외우는데... 나만 빼고 모두 특별해 보인다.”
선생님은 세상 모든 사람이 특별하고, 세상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움을 만드는 거라고 말씀하셨고, 그린이는 가족이 함께 놀러 간 바다와 할머니 집을 떠올린다. 바닷가에서 갈매기에게 새우 과자를 주던 일과 할머니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고, 할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황금빛 들판을 가로지르던 일 등 저마다 다른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행복했던 순간들을 숙제에 적어 낸다. 그리고 며칠 뒤 그린이에게도 특별한 일이 생긴다. ‘나에 관한 글’을 본 선생님께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받고, 친구들에게 큰 박수도 받았다. 아빠는 액자로 만들어서 집 안에 걸어 놓고는 볼 때마다 웃으셨다. 어느 날 저녁, 아빠는 산책하다가 그린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린아, 아빠는 평범한 것이 나쁜 게 아닌 것 같아.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야.
아빠는 평범함과 특별함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삶인 것 같아.
아빠도 담임선생님처럼 어려운 말을 하신다.
어려운 말이지만 왠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특별하기를 원한다. 남들보다 뒤처지기는 싫고, 지극히 평범한 인생은 왠지 매력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평범하다는 것이 정말 매력이 없는 걸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모든 특별함은 일상 속 평범한 것들에서 온다는 것! 매일매일 피아노를 치면서 빠르고 어려운 곡도 곧잘 치게 되듯이 평범한 계단을 하나씩 밟고 위로 올라가듯 그렇게 우린 특별함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평범한 초등학생 그린이가 주변을 다르게 보는 특별한 눈을 지니고 있던 것처럼,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평범함 속에서 반짝이고 있을 특별함을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
✅ 그림책 정보 <나는 너무 평범해>
✍️ 김영진 글. 그림 / 길벗어린이
그린이는 오늘도 고민이 많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나에 관한 글'을 써 오라는 숙제를 내주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모두 특별하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그린이는 스스로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축구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데... 그린이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린이에게도 특별한 일이 생겼다!
✅ 함께 보면 좋은 그림책 <너의 특별한 점>
✍️ 이현정 글. 이고은 그림 / 달달북스
목에 점이 있어 부끄러운 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비밀을 들려줄까? 목에 점이 있는 아이. 이제껏 있는 줄도 몰랐는데, 한 친구가 '어, 너 목에 점이 있네'라고 말하자, 그 뒤로 목에 점만 보인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아주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비밀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고 한다. 엄마는 도대체 어떤 비밀 이야기를 해주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