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삶이듯, 죽음은 그냥 죽음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스치는 무지개가 보였다. 슬픔을 가득 머금은 두 눈에 비친 하늘. 남들에겐 평소와 다름없는 하늘이었지만, 나에게는 살짝 비친 무지개조차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그런 특별한 하늘이었다.
얼마 전 사촌 동생이 젊디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서른다섯에 알콩달콩 예쁜 가정을 이루며,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던 동생이었다.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 옛날 아버지의 죽음을 생생하게 떠올릴 만큼 믿을 수 없는, 아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한동안 내 안에서 북받쳐 오르는 울분과 두려움, 평온 속에서 급발진하는 감정들을 주체하기 버거웠다. 멀쩡히 밥을 먹다가도 올케와 조카 생각에 울음을 터져 나왔고, 맑고 쨍쨍했던 가슴은 시리다 못해 아려오는 통증을 느끼게 했다. 그렇지만 또 덤덤히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 속에 내가 존재했다.
우리는 죽는다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예외 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았건, 지켜보지 않았건 그것과는 별개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죽음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어보지 않았기에 죽음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다만, 가까운 이의 죽음과 마주하게 되면,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궁금증을 갖게 되고, 그것에 대해 절실하게 알고 싶어 진다.
소중한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 안에서 아주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죽는다는 건 대체 뭐지? 그래도 내 삶은 계속되는데….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이것이 아버지와 사촌 동생의 죽음 이후 내 머릿속을 동동 떠다니던 생각들이다. 그렇게 내 안에서 피어오른 질문들을 꺼내어보니, 죽음에 대한 궁금증은 나로 하여금 진정한 삶을 고민하게 했다.
깜깜한 밤에 스탠드를 켠다. 그러면 어둠 가운데 작은 불빛 하나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이때 어둠과 빛은 한 몸이다. 빛은 나를 밝히고, 어둠은 나를 감싸고 있다. 마치 담요처럼, 어둠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 몸 전체를 감싸는 담요와 같고, 빛은 내 마음을 데우는 보일러와 같았다. 어둠은 죽음이고 밝음은 삶이라면, 죽음과 삶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다.
시름에 빠진 올케를 위해 어설픈 조언이나 위로가 아닌 진심을 공유하고 싶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냈을 때의 내 마음과 남편을 떠나보낸 올케의 마음이 똑같진 않겠지만, 극복과정을 공유하다 보면 비슷하게나마 위안을 줄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힘들었던 지난날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고, 몇몇 책은 아들을 잃은 삼촌께, 남편을 잃은 올케에게 선물했다. 조카들에게는 <<나는 죽음이에요>> 지면을 빌어 그림책 속 글과 그림의 말들을 전하고 싶다.
“만약 우리가 두렵게 느껴진다면, 내가 하나만 살짝 일러 줄게요.
바로 사랑이에요.
‘사랑’은 모든 슬픔과 미움을 없애주고
‘사랑’은 매일 당신을 찾아갈 수 있고
‘사랑’은 우연히 나를 만나더라도 절대 죽지 않아요.”
어둡고, 음침하고, 무섭게만 느껴지는 죽음이지만 그림책 속 죽음은 한없이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이다. 게다가 죽음은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존재를 상기시켜준다. 생명이 있는 존재로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만나더라도, 사랑을 나누며 살아온 시간은 절대 숨을 거두지 않는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지라도 살아있는 동안 마음껏 사랑하리라는 다짐이 새삼스럽게도 가슴속을 파고들며 그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나는 죽음이에요.
삶과 하나이고, 사랑과 하나이고, 바로 당신과 하나랍니다.”
죽음과 삶은 나의 또 다른 일부이다. 우리가 죽음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도, 죽음을 의연하게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다. 소중한 이의 죽음은 커다란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로 인해 너무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죽음이 직접 알려준 것처럼, 모든 슬픔과 미움을 없애주고, 매일 우리를 찾아오는 사랑!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도 오직 사랑뿐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내 안에 들어있는 사랑이란 마음에 깃들어 있다.
✅ 그림책 정보 <나는 죽음이에요>
✍️ 엘리자베스 헬란 라슨 글, 마린 슈나이더 그림 / 마루벌
발그스레한 뺨, 푸른색 옷을 입고 머리에 꽃을 단 ‘죽음’은 어디론가 향한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을 발견하면 문을 닫고 숨어버린다. 그리곤 죽음이 그냥 지나가길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 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죽음은 말한다. 삶이 삶이듯 나는 그냥 죽음일 뿐이라고 말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있는 거다. 늘 두렵기만 했던 죽음이었지만, 죽음이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느새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
✅ 함께 보면 좋은 그림책 <바람이 멈출 때>
✍️ 샬럿 졸로토 글, 스테파노 비탈레 그림 / 풀빛
우리에게 낮과 밤은 너무나 익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변화에 새삼 놀랄 것도 의아해할 것도 없다. 어느 날 한 아이는 친구들과 놀다가 날이 저무는 것을 보며 마음 아파한다. 왜 낮이 끝나야 하는지, 낮이 끝나면 해는 어디로 가는지, 바람이 불면 어디로 가는지,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리면 어디로 가는지 등등 많은 것들에 궁금증을 느끼게 된다. 아이의 엄마는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이 세상에 완전히 끝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