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힘은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
대부분의 남자아이가 그렇듯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꽤 활동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태권도 선수,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심심찮게 해왔었고, ‘그때는 모두 다 그래’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다. 아이가 운동에 뜻을 품은 건 4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저녁 식사 시간, 입 안에 있던 밥알을 꿀꺽 삼키며 급히 쏟아내듯 말을 뱉어냈다. “o o 이가 o o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대. 야구부로 간다고 했어. 야구선수가 되고 싶대. 근데 나도 그래. 나랑 실력도 비슷한 것 같아. 나도 가면 안 돼?” 동네에서 같이 야구를 하며 놀던 친구가 본격적으로 야구 선수의 길을 걷는다는 말을 전하며, 자기도 그 길을 걷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야구를 시키려면 4학년이 적기라며 아이의 의견에 맞장구를 쳤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쓸려가는 것은 내키지 않았고, 미래를 결정짓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 안에 담겨있는 아이의 진심을 읽으려 하기보다, 그 길을 걸었을 때 느낄 수 있는 현실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프로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주변의 소리만 더 크게 맴돌 뿐이었다. 그 어렵고 험난한 길에 내 아이를 몰아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가벼이 뱉은 말이겠거니 여기고 돌아서나 싶었는데, 6학년이 되었으나 여전히 야구를 품고 사는 아이에게 나는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번에도 반대하면, 어쩌면 꿈이라는 것을 더는 가져보지 못할 나이로 훌쩍 자라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봐도 그렇지만, 몸이 커질수록 꿈은 작아지는 법이니까.
나의 우려를 꺾고, 아이의 꿈을 피워낸 지금, 아이는 야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마음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되었다. 경기 때마다 전 부치듯 엎치락뒤치락하는 감정 기복은 보통이고, 포지션, 체력, 성장, 진학, 부모들 간의 눈치 보기 경쟁까지 어려움을 헤아리기엔 끝도 없었다.
아이가 첫 타석에 들어선 날이었다. 야구 방망이를 양손으로 꼭 붙잡고 머리 위로 까딱까딱 흔들기를 반복하다가 투수가 던진 공이 슝 날아오자 힘껏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다.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거렸고, 마음속에서 ‘제발!’이라는 외침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두 눈은 저절로 질끈 감겼다.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만약, 안타를 쳤다면 주변에서 들리는 박수 소리로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주변은 조용했고, 아이는 허공에다가 방망이를 대차게 휘둘렀는지 ‘윙!’ 소리가 들렸다. 결국, 삼진을 당한 채 터덜터덜 타석에서 내려왔다. 안타를 쳤으면 했던 마음은 씁쓸한 표정에서 감출 길이 없었다. 이런 마음으로 매 경기를 봐야 한다니, 나에게 그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은 아무 말도 없었다. 괜찮다고 먼저 말해주었어야 했는데, 성급한 위로를 건네는 것보다 지금은 아이의 표정을 살피는데 신경이 쓰였다. 내 마음도 이렇게 착잡한데, 하물며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타석에 들어선 아이를 생각했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을 아이. 좋아하는 일이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을 때 꺾인 상실감이 아이라고 어른과 다를 게 있을까. 아이는 나름 자기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치열한 일정을 보내는 중일 텐데. 그저 잘 치기만을 바랐던 내 마음이 순간 한없이 부끄러웠다. 타석에 들어설 때면, 안타가 중요하기보다 본인의 스윙을 해냈는가 하는 자신을 믿어주는 신념의 심지가 굳건해질 수 있기를. 나를 비롯해서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 또한 아이의 야구를 결과로써 주목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과정을 바라봐주는 넉넉한 시선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그날 저녁 침울해하는 아이에게 넌지시 책 한 권을 건넸다. <<홈런을 한 번도 쳐 보지 못한 너에게>>라는 그림책이었다.
팀이 2대 4로 지고 있을 때, 역전의 기회가 왔고 주자는 1, 3루, 타석에는 주인공 루이가 서 있었다. 루이는 감독님의 지시대로 배트를 휘둘렀지만, 안타도 삼진도 아닌 병살타를 쳐서 풀이 죽었다. 저녁 무렵, 루이는 엄마의 심부름을 갔다가 고등학교 야구부 주전이었던 센 형을 만난다. 오랜만에 만나는 형은 루이의 시합을 봤다며, 실패한 원인을 분석해주기도 하고, 홈런 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홈런을 친 선수는 자기 힘으로 홈, 즉 집을 나갔다가
세계를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온 거야.
오직 자신의 힘으로.”
주인공 야구 소년 루이의 꿈은 ‘홈런’이다. 야구에 관심이 없는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느껴지는 꿈이지만, 루이에게는 무척이나 커다란 꿈이다. 하지만 홈런은 고사하고 안타도 못 치는 루이에게는 멀고 먼 꿈이기도 하다. 커다란 꿈은 이루기 어렵다. 때론 아무리 노력해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안 된다고 포기해버리면 그 꿈은 영원히 생각 속에 갇혀있는 꿈이 된다. 유명한 홈런 타자에게도 실패가 존재했고,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수백 번을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있는 과정이다.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잔잔하게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저마다의‘홈런’을 칠 날이 오지 않을까?
“나 언젠가는 꼭 홈런을 칠 거야. 하지만 그전에 안타부터 쳐야겠지.”
홈런을 한 번도 쳐보지 못한 아이를 보며, 홈런을 한 번도 쳐보지 못한 내 인생을 들여다보게 된다.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형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의문점이 해결된다. 야구는 팀 경기이고, 누군가의 안타가 누군가를 홈으로 불러들여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가는 경기이다. 하지만 홈런만은 유일하게 자신의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진다. 내 인생에서 나의 힘만으로 때린 타구가, 저 멀리 담장을 넘어가 나를 유유히 걸어 들어오게 하는 순간, 그 순간이 언젠가 꼭 오기만을 기다려본다. 도전과 실패를 거듭 경험하면서, 그 과정 또한 버티기보다 즐기는 힘으로 끝까지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홈런을 치게 될 것이다. 물론 그전에 안타부터 쳐야겠지. 꿈을 향해 차근차근 걸어가는 우리 모두의 홈런을 응원한다.
✅ 그림책 정보 <홈런을 한 번도 쳐 보지 못한 너에게>
✍️ 하세가와 슈헤이 글, 그림 / 천 개의 바람
센 형은 루이에게 홈런 타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고,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10년 넘게 꾸준히 단련도 했다. 하지만 유명한 선수에게도 슬럼프라 불리는 시기가 있었다. 홈런 타자에게도 실패가 존재했다는 말이다.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수 백 번을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과정이다. 안타를 열심히 치다 보면 홈런을 치는 날이 오는 것이다. 목표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차근차근 밟아가는 과정이 가치로운 것임을 그림책이 말한다.
✅ 함께 보면 좋은 그림책 <가드를 올리고>
✍️ 고정순 글, 그림 / 만만한 책방
여기가 어디지? 나는 뭘 하는 거지? 그만 내려갈까? 단 3분, 가장 치열하고 고독한 나를 만나는 시간! 주인공 빨간 주먹과 검은 주먹의 권투 경기가 시작되고 빨간 주먹은 상대의 거친 공격에 쓰러진다. 일어선 빨간 주먹은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가드를 올리지만 헛수고로 돌아가고 다시 쓰러진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빨간 주먹과 검은 주먹의 사투가 더욱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3분의 절박함은 마치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내며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절묘하게 겹친다. 빨간 주먹은 다시 가드를 올리고, 경기는 마지막 공이 울리기 전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