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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Nov 04. 2022

나를 홀리는 언어의 연글술사들

가끔 나를 홀렸던 언어를 꺼내 봅니다

몇 년 전에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아이의 친구들로 형성된 그룹, 아름아름 소개로 모인 아이들과 함께했던 수업이었다. 본업과 병행하여 작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의가 잦아들어 잠시 직업을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본래의 일에 집중하기로 하고 그때의 활동들은 추억으로 남겨두었다. 지금 글을 쓰는 데 있어 불현듯 어떤 순간이 떠올랐고, 그 순간에 저장해두었던 언어! 그때 나를 홀렸던 언어를 꺼내 보려 한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아이들은 잔뜩 지친 몸을 이끌고 교실로 들어왔다. 무더운 날씨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을 텐데 영어 학원, 수학 학원, 태권도 학원 등 각종 학원 스케줄을 겨우겨우 소화한 채 마지막 종점으로 들른 곳이 이곳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퍽 안쓰럽게 느껴졌던 날이었다.


"오늘은 수업하지 말까?" 이 한마디에 초점을 잃었던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정말요?" "그래도 돼요?" "그럼 뭐 할 거예요?" "우리, 라면 파티해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주도적으로 의견을 투척하던 아이들이었다. "딱딱한 책은 다 덮어두고, 오늘만 특별히 다른 거 하자!" 또 말이 끝남과 동시에 탁탁탁 박력 있게 책을 덮었다. 이렇게 말을 잘 듣던 아이들이 아니었는데? 나는 피식 웃으며 아이들에게 빈 종이를 나눠주었다. "에이~ 수업 안 한다면서 종이는 왜 나눠줘요." 짐짓 실망한 눈빛이 역력했지만, 아랑곳없이 말을 이어갔다. "오늘 수업은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놀 수도 없고. 그래서 오늘만 특별히 다른 거 해보자. 너희들이 힘들지 않은 놀이! 아마도 엄청 재밌을 거야." 아이들은 뭔지 모르게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수업하는 것보단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순순히 요청을 받아들였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시를 쓰고 싶었다. 지금 이 감정, 이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놀이를 해보고 싶었고,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주고 싶었다. 시를 써보자는 말에 당황했던 아이들이었지만, 함께 <여름>이라는 주제를 떠올렸고, 주제에 따라 떠오른 생각을 낙서해본 후 형식이나 문장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담아보기로 했다. 각자 작성한 시를 낭독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나는 아이들의 표현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런, 언어의 연술사들 같으니라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언어들로 포장하지 않아도 그 의미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글! 각자의 개성이 느껴지는 있는 그대로의 글이었다. 아이들은 놀랍게도 저마다의 생생한 이야기를 짧은 시에 담아냈다. 그날 이후 종종 자유로운 글짓기 수업을 진행하였고, 그 글들은 나의 언어 보물창고에 꼭꼭 저장되어있다. 나를 홀렸던 아이들의 글에서 아직도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다. 가끔 글이 써지지 않는 날 꺼내 보면 반성도 하게 된다. 화려한 문장으로 포장에 포장을 거듭하려 들지 않고(실은 아직도 어렵기만 하지만),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노력한다. 순수한 마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내게 증명해주었던 것처럼...! 


지금도 곳곳에서 나를 홀리는 언어들을 만나게 된다. 글 속에서, 책 속에서, 길 위의 간판에서, 인터넷에서,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서... 스쳐 가는 모든 언어 중에서 유독 나를 홀리는 언어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냉장고에 몸이 먹을 음식을 저장하듯, 언젠가 내 마음이 먹을 언어들을 저장해둔다. 그렇게 저장된 언어들을 마음이 고픈 순간마다 꺼내 보면, 금세 충만해진다. 내게 의미 있는 언어들은 항상 내 마음을 충만하게 살찌우게 했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11월의 주제는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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