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결심 대신, 버킷 이별 리스트
2022년, 어느새 달력 한 장만을 남기고 있다. 달력을 넘기면 해가 바뀌고, 해가 바뀌면 어김없이 신년 계획을 세우겠지. 비록 지키지 못할지언정, 계획은 철저하게 세우고 보는 사람이 나니까. 그런데 어쩐지 계획 세우는 일이 도통 끌리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자기 계발, 자아 탐구, 자기 발전, 자아 돌봄, 자신에게로 걸어가는 길... 자! 자! 자기를 돌보고자 했던 발걸음이 꽤 묵직해져서 그런지, 이젠 이런 것들에 지쳐버린 것이 분명하다. 이 와중에 또 쉴 새 없이 번쩍이는 톡에 눈이 간다. 발걸음이 빚어낸 일부 그룹에서 "감사합니다" 퍼레이드가 펼쳐졌고, 그 물살에 늦지 않게 합류되어 휩쓸려가는 것이 좋다. 타이밍 늦으면 괜히 어색해지니까. 올해 자기 돌봄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왔다. 여전히 확실한 내 것을 찾지 못하고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여기저기 소속된 채로 꾸준히 견뎌내며.
어느 저녁, 마라탕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대는 아이의 등쌀에 못 이겨, 집 근처 마라탕 체인점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나도 몹시 배가 고팠기에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잔뜩 담았다. 특히 중국 당면과 분모자의 쫄깃한 식감을 좋아해서 그 둘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평소 먹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먹었다. 후루룩 쩝쩝 먹을 땐 너무 좋았지. 하지만 그날 밤부터 체기가 가시지 않더니, 그다음 날도 여파가 지속됐다. 뭐 그러다 말겠지 가벼이 여기며 넘겼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우르르 가슴까지 몰려든 음식들 때문에 꽉 막힌 통증을 견디기 힘들었다. 하필 그때 똑 떨어진 활명수와 소화제... 그 밤에 문을 연 약국이 있을 리 없고, 잠은 도저히 이룰 수가 없고, 밤새도록 변기통을 끌어안고 토해내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살면서 그렇게 오지게 체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 배고픔과 욕심이 부른 대참사였다. (이번 생, 마라탕은 못 먹는 거로...)
욕심을 부리면 모든 것이 어긋나기 마련이다. 자기를 돌보고자 했던 발걸음이 너무 과했던 탓이었을까. 나는 지금 체한 상태였고, 그렇기 때문에 신년 계획을 세우는 일이 도통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능력에 한계치를 무시한 채 여기저기 좋아 보이는 것들을 끌어다가 욕심을 부리다 보면, 언제 또 대참사를 겪을지 모른다. 그래서 올해엔 신년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한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루틴이었던 새해 결심을 대신하여, 새해부터 헤어질 것들을 먼저 정리해보기로 했다. 버킷리스트에 '이별'을 붙여서 <버킷 이별 리스트>를 작성해보는 것. 이별이라고 다 슬프라는 법은 없지. 체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때에 따라 건강한 이별도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유명한 영화 제목으로도 본 것 같은데, 살다 보면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도 있다.
2023년 나의 새해 이별 리스트! 대전제는 이것저것 뿌려놓은 욕심과 이별하는 것이다. 욕심과 마침내 이별하게 되면, 다시 느리지만 천천히 단단한 걸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너무 맛있다고 허겁지겁 먹어대다가 급체로 고생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새해엔 이루고자 하는 단 한 가지에 몰두하여 매 순간 찐심으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12월의 주제는 <이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