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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Feb 09. 2023

매일 밤 작은 대접

손 뜯는 버릇이 있다면  


가족 모두 거실 소파에 둘러앉았다. 후식으로 과일을 푹푹 찍으며, 텔레비전 채널은 어지럽게 돌고 돌아 드디어 한 곳에 정착한다. 사방에 깔려있어서 꼭 한 번은 머무르다 가게 되는 곳, 마치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휴게소 같다고나 할까. 그곳은 바로 홈쇼핑 채널이었다. 이번엔 무엇이 나를 붙잡았냐 하면...


손톱 영양제였다. 

'거 무슨, 사다사다 별거를 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나는 아주 오래된 버릇을 가지고 있는데, 그 버릇은 아이 때부터 시작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뿌리 깊이 장착되어 있어서 이젠 고칠 수 있으려나 싶다. 루틴도 이런 루틴은 만들 수 없을 걸. 오랫동안 다져온 습관 덕에 이 분야에서는 아주 신공이 되었다. 몹쓸 버릇은 바로 '손 뜯기'다.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학생 때쯤이었나. "너 손이 왜 그 모양이냐? 뭐 그리 열심히 뜯어 놨어?" 친구가 내 손을 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하고 물었던 적도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술자리에서 술잔을 짠짠 부딪히는데 "어머, 손 다치셨어요? 손이 왜 그래요?"라고 상대방이 물어보면,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히히. 몹쓸 버릇입니다."  예전엔 그런 내 손이 부끄러워서 감추기 바빴는데, 나이가 들어 뻔뻔해지는 건지... 이젠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손은 주로 언제 뜯는가 하면, 의식에서 무의식세계로 들어갈 때마다 뜯게 되는 것 같다. 쉽게 말해 생각을 하거나, 멍 때리는 순간이라고 할까... 맨 정신에는 뜯지 않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뜯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참을성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인데, 유독 손톱 옆에 붙은 가시 같은 살결이 뾰족 튀어나와 있는 거... 그거는 내가 정말 참을 길이 없다. 이 바닥 전문용어로 '가시래기'는 곧바로 뜯어내야 직성이 풀리니 원. 처음엔 살살 뜯다가, 뜯다 보면 영역이 점차 확장되고 어느새 손은 엉망이 되어있다. 안 그래도 못생긴 손이건만, 관리는 커녕 뜯기까지 하니, 어디 가서 웬만하면 손은 내밀지 않으려 한다. 이리도 상세히 적고 보니 이젠 좀 부끄러워진다. 


남편 소원이 나의 예쁜 손을 잡아보는 것인데,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 작고 소박한 소원을 이뤄주지 못했다. 10년 넘게 살았으니 이젠 좀 들어주고 싶은데, 이 손으로 네일숍을 가면 난이도 최상급의 케어를 하느라 진땀을 뺄 거다. 엄한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해봐야겠지? 이 모든 것이 내가 손톱 영양제에 채널을 고정시킨 이유였다. 별 걸 다 사려한다는 생각은 이제 아무도 못할걸. 남편도 말리기는커녕 시간 내에 빨리 사라고 나를 재촉했다. 


그로부터 보름 정도 된 것 같다. 매일 밤 깨끗이 씻은 후, 얼굴에 이것저것 발라주고 나면, 제일 마지막에는 손톱에 영양제를 바르는 시간이 찾아온다. 손은 기껏해야 얼굴에 바르고 남은 것을 대충 비벼 마무리하는 정도였는데, 손톱 하나하나 반짝이는 영양제를 덮어주다 보니, 내 손을 귀한 손님 대하듯 대접해 주는 것 같았다. 꼭 영양제를 발라서라기보다, 이 시간만큼은 하루 중 가장 많이 고생한 내 손과 단 둘이 누리는 작은 기쁨이었다. 손을 귀하게 대하는 이 행위로 인해, 손 뜯는 버릇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때, 계산하려고 카드를 내 밀 때, 현관문을 누를 때도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매일 밤 작은 대접 덕분에 내 오랜 버릇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긍정의 기운을 품어본다. (아직 방심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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