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한가 봐
친한 언니와 커피를 마시던 날이었다.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각자 다른 중학교로 진학을 준비하면서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드르르륵. 갑자기 울리던 요란한 진동소리에, 휴대폰에 떠있는 사진에, 저장된 이름에... 총 3번에 걸쳐 놀라움이 연타로 찾아왔다.
내가 형부라 부르는, 언니의 남편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분명 형부에게서 온 전화인데, 이름이 '마이빈(하트)'인 데다가 현빈 사진이 뜨는 것이 아닌가. 이 얼마나 놀랄 일인가 말이다. 내가 아는 형부는 (미안하지만) 현빈의 얼굴과는 거리가 한~~~~~참 먼데...! 이 말을 언니 앞에서 기어이 뱉고야 말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머릿속에 머물러야 할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왜 이런 짓을 하냐, 무슨 문제가 있냐, 굳이 왜 이렇게 까지 하냐' 수습할 겨를도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때늦은 미안함이 살짝 스쳤지만, 마음이 너그러운 언니는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 "내 남편을 현빈이라 상상하면, 남편 전화 올 때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 지 알아?" 나도 어른치고는 상상력이 꽤 있는 편이건만, 언니의 상상력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듯하다. 실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언니는 평소에도 애교가 많았다. 출근할 때마다 뽀뽀 쪽 배웅은 기본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거침이 없는 스타일. 그런 언니를 보면 나에게 없는 모습이어서 그런지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형부가 그렇게 좋아?"라고 물어보니, 의외로 버럭 성내듯 말한다. "야! 이 나이에 사랑이 있어 봤자 얼마나 있겠냐. 우리가 젊은 애들처럼 사랑할 건 아니잖아. 하지만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노력이 필요한 거라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지만, 속으로는 느닷없이 '아!!' 하고 탄성이 터졌다.
내가 어딘가에 늘 쏟아부었던 노력이라는 것을, 사랑에는 과연 얼마나 사용하고 있었던 가. 연이어, 남편이 우리의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장면도 스쳐간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쉬고 싶을 텐데도 소화불량을 자주 겪는 나를 위해 밖으로 끌고 나가서 조금이라도 걷게 했던 행동, 물을 잘 마시지 않는 나를 위해 매일 아침 물 한잔을 건네주었던 행동...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남편의 소소한 노력들이 하나둘 스치며, 갑자기 남편에게 미안한 감정이 훅 올라왔다.
애정표현이라고는 일도 못하는 무뚝뚝한 부인을 만난 남편의 업보를 풀어주고 싶었다. 그날 밤 (밤이라고 해서 기대하는 눈빛이 느껴진다) 없는 애교를 싹싹 긁어 영혼까지 끌어모아 입 밖으로 뱉었다. "오빠~~ 앙. 오늘 술 한잔 어때?" 순간 남편 얼굴에 섬찟한 표정이 스쳤다. "와 이라노.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나?"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많이 놀란 눈치였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민망함을 꾹꾹 누르고 두 번째 스텝을 밟아본다. "잘못은 무슨~ 사랑하는 남편이랑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렇지." 이것은 언니의 휴대폰 속 마이빈이 불러온 재앙이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티 내지 않고 노오력 했더니 남편이 환하게 웃는다. 싫지 않은가 보다. 아니, 엄청 좋아하는 것 같다. 세상에 이게 뭐라고, 이렇게 좋아하다니! 평소에도 술 한잔 기울이며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날밤은 좀 달랐다. 밋밋한 대화에 애교 한 스푼이 들어가니 남편이 유독 환하게 웃는 것 같았다. 취기가 올라와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쑥스러운 듯 좋아하던 남편의 그 표정을 자주 만나고 싶었다.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언니의 말이 맞았다. 남편과 나 사이의 거리는 이미 너무 가까워서 더 가까워질 틈이 없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사이엔 아직도 무수히 많은 틈이 있고, 그 틈을 좁히기 위해선 서로를 향해 매일 1미터를 더 걸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였다. 세상 모든 거에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사랑에도 한 발 더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박서준! 마이준으로 바꿔야 하나? 다음엔 어떤 노력을 기울일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