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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Feb 22. 2023

새벽을 함께 걸었던 이웃

보름 동안의 동행

지난 11월에 있었던 일이다. 

새벽 5시 20분이 되면, 어김없이 카톡이 왔다.


"저 일어났어요."

"모닝 짹짹. 저도 일어났습니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선 곧바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화장실에서 가벼운 세안을 마친 후 두꺼운 옷을 입고, 천 원과 수첩을 주머니에 욱여넣는다. 서둘러 마스크를 한 채 집 밖을 나오면 눈앞에는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잠시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멈춰선다. '오늘도 별이 많이 보이네.  어쩜 건물 사이에 참 앙증맞게도 떠 있는 달이네. 저 정도 위치면 남편한테 따달라고 해도 되겠는 걸?' 어렴풋이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얼마 뒤 새벽을 함께 걷는 이웃을 만나며 밝은 인사를 주고받는다. "오늘도 춥네요~ 옷 따뜻하게 입고 왔지요?" 그리고 우린 집 근처 작은 절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이 새벽을 함께 걸었던 이웃, 우린 정말 특별한 인연이었다. 


첫 만남은 야구부 운동장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야구를 시작한 아이들로 인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임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운동부에 적응하는 동안, 우리도 운동시키는 부모의 역할에 적응이 필요했다. 소위 말하는 운동 뒷바라지를 하는 데 있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평범하게 자기 일을 하며 살아왔던 부모들이 견디기에 쉽지 않은 곳이었다. 모든 스케줄이 뒤죽박죽됨은 물론이고, 다 큰 아이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녀야 하는 상황은 극복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기 때마다 시험을 치르듯 도마 위에 올려지는 아이들을 보며,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자식의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고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역할이 가장 어려웠다. 계속 이 길을 가야 할지, 아니면 이쯤에서 포기하고 다시 돌아와야 할지. 이런 상황들로 인해 우리는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이 무시무시한 곳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던 이웃과의 소통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다. 쉽지 않은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애, 전우애 같은 마음이라고 할까. 그런데 비단 아이들 문제뿐만은 아니었다.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현재 상황과 자신이 살아온 삶으로 대화 영역이 점점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웃의 현재 삶이 지난 시절 내가 겪었던 상황과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남달랐던 인정욕구로 인해 자신의 업무에 누구보다 집중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 이웃. 나는 그 이웃에게 조심스레 글쓰기를 권유했다.  


11월 보름 동안 매일같이 새벽 거리를 함께 거닐며, 우리가 향한 곳은 집 근처 조그마한 절이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나누었던 대화는 주로 운동부 부모의 역할, 각자의 삶, 글쓰기에 대한 것들이었다. 우리는 함께 소통하며, 법당에서 108배 절을 하며, 그렇게 시끌시끌했던 마음을 고요히 다스렸다. 그리고 몇 달이 흘러간 지금, 아이들은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특별한 이웃은 글쓰기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 특별한 이웃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린 긴 시간 통화를 했지만 결국 이 말이었다. 글쓰기를 권해줘서 정말 고맙고, 자신이 원했던 게 바로 이거였다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 텅 빈 마음이 뜨겁게 채워지고 있고, 내면의 혼란스러움이 정리되고 있음을 느낀다는 것. 이웃의 그 말에 내 마음도 뜨거운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우린 이렇게 푸르스름한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뜨거운 무언가를 채워줄 특별한 인연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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