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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Jan 16. 2021

성장기 때 찌는 살은 다 키로 간다?

잔소리의 효능

코로나 시대를 보내면서 여러 가지 웃픈 말들이 생겨났다. 그중 확찐자라고 들어는 보았나. 그 말이 정확하게 딱 들어맞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아들이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아들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행동이 민첩하고 움직이기 좋아하는 일반적인 초등학생 3학년 남자아이였다. 주변에서 제법 훈남이라는 소리도 들려왔고, 도치 부모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어깨 뽕이 상승하는 듯했다. 그런데 집에서 먹고 자고를 쉼 없이 반복하는 코로나 발생 이후 지금의 모습은 웃기지도 않는다. 뱃살이 불록하게 마중 나오고 목이 쏙 들어간 체격에 행동이 둔감하고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아재 같은 초등학생 4학년 남자아이로 변신해버린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저녁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하루 종일 먹을 생각만 하는 아들의 변화가 엄마인 나도 적응이 안되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시는 시어머니는 나보다 더 예민한 성격이시고, 여느 어른들과는 달리 급격히 찐 손자를 볼 때마다 "아이고, 자가 와저렇노. 와 저렇게 됐노. 내랑 같이 살 때만 해도 안 저랬는데. 뭘 먹여서 저래 됐노. 신경 써야 한다. 먹고 싶다고 다 먹이면 절때 안된다." 하며 잔소리 폭격을 날리셨다. 시어머니와 10년을 같이 살다가 분가를 했고, 분가를 하자마자 변화된 손자를 보며 내 탓을 하는 듯한 뼈 있는 말들이 듣기가 거북했다. 그래서 나는"어머니 사람들이 그러는데 성장기에는 원래 다 그렇대요. 찐 살들은 나중에 다 키로간데요. 이럴 때 먹는 걸로 구박하면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하며 잔소리 진화용 멘트를 날렸다.   


그래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어느 날 전화가 와서는 "내가 티브이를 봤는데, 거기 한의사가 참 잘 보더라. 체질도 봐주고 성장 약도 지어주고 하던데 아 데리고 한번 가보자. 약은 안 먹여도 진단은 한번 받아보는 게 안 좋겠나?" 자나 깨나 손자 걱정에 근심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체질 상담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네. 알겠어요. 어머니 제가 전화해서 예약 잡아볼게요."하고 말씀드리고는 상담예약을 잡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고, 아들의 살들이 나중에 키로갈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예약된 날짜에 한의원에 방문을 했다. 아들은 간호사를 따라 바삐 움직이며 몸을 체크를 했고, 나는 4장가량의 질문공세가 가득한 종이를 꾸역꾸역 작성하며 반성문 같은 서류를 체크했다. 그리고 티브이에도 나오는 유명한 한의사를 드디어 만났다. 한의사는 상당히 친절하셨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친절하게 차근차근 설명하셨지만 나는 망치로 연달아 머리를 맞으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말씀인즉슨, 아이의 몸을 체크해본 결과 또래보다 뼈 나이가 1년 정도 빠르고(뼈 나이가 빠르다는 것은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신체적으로 사춘기에 진입 직전인 상태이며, 키는 평균보다 5cm 작고, 몸무게는 평균보다 11kg 더 많이 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다음 말에서 나는 넉다운되었다. "어디까지나 예상이라는 걸 감안해서 말씀드립니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전체 키가 170도 안될 수 있어요.  식습관 개선과 체질 개선이 시급해 보여요." 전체 키가 170도 안된다니... 그다음부터는 한의사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겁을 주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고, 170을 언급했던 것은 그만큼 아이의 현재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내 머릿속에는 170 이하로 자라날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들로 가득 차올랐다. 170 이하의 남성을 비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부모 마음에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 키로 살아가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한의사와 면담 후 잠깐의 대기시간이 주어졌지만 어머니와 나의 멘탈은 저 멀리 도망가있었다. 나는 두려웠고, 안일했던 나의 생각을 원망했고, 아이의 성장기는 한정되어있었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리고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어머니가 손자에게 자주 들려주었던 말이다. 그 말을 받아들이기에 어렸던 아이는 "야 우리 할머니가 그랬는데, 어른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대. 왜 떡이 생기지?" 하고 친구들에게 말하며 시시덕거렸던 모습도 잠시 스쳐 지나갔다. 어른의 진심 어린 걱정을 듣기 싫어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상담 실장님이 우리를 불렀고, 어머니와 나는 프로그램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질책을 들을 준비를 하며 슬쩍 말을 건넸다. "어머니, 아무래도 체질 개선 약을 먹여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이제라도 잘 챙겨볼게요." 그러자 어머니는 "그래 잘 생각했다. 이건 내가 해줄게. 지금이라도 이렇게 와서 다행이다." 하며 시원하게 결제를 해주셨다. 그리고 나를 원망하거나 질책하는 말은 일절 언급하지 않으셨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보았던 어머니는 단돈 1~2천 원도 아끼시는 분이었다. 시장에 가면 봉투값 몇 백원도 아까워서 늘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시고, 동전 한 푼도 허투루 쓰시는 법이 없었다. 삶에서 절약 습관이 몸에 밴 분이셨다. 그런 어머니가 손자를 위한 마음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통근 결정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감동이 몰려왔고, 죄송했고, 감사했고, 어른의 위엄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어머님은 사사건건 잔소리를 많이 하시는 편이다. 그때마다 나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거북함을 느끼곤 했다. 어머님은 왜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까지 저렇게 걱정하시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면 어머님의 잔소리 중에 절반 이상은 다 실제에 적용되었고, 적중률로 따지면 대부분은 맞는 말들이었다. 잔소리가 시작되면 그 순간에는 반감이 몰려들어 자동 차단 가능이 작동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켜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들이 많았다.  


어른들의 잔소리는 무조건 자동 차단해버리는 젊은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모두 다 새겨들을 수 없다는 거 안다. 일장연설이 시작되면 반감부터 올라오는 것도 안다. '라떼는 말이야', '꼬장', '꼰대' 이런 말들이 생겨난 것도 다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는 보자. 조건반사적으로 차단해버리지는 말자. 듣다 보면 걸러지는 말들이 있고, 그 안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도 분명히 있다. 우리보다 인생을 한 발짝 먼저 살아본 선배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지 않나? 세월이 흐르면 우리 또한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성장기 확찐자 아들을 계기로 어른의 잔소리를 무조건 흘려 들었던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일상에서 어머님의 잔소리를 대하는 나의 자세가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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