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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Apr 06. 2021

해킹당해서 오백만 원이 결제됐는데 글 쓸 생각을 해?

쓰는 마음 [글쓰기는 병이다! 그것도 아주 못 말리는 병]

어젯밤 지옥 투어를 했다...

늦은 밤 무심코 폰을 보는데 카드 문자내역을 보니 '구글 페이먼트 코리아'라는 곳에서 12000원가량 금액이 수도 없이 결제된 것을 확인했다. 문자를 다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실시간 발생된 결제내역들... 그로 인해 카드값이 대략 10배가량 불어났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왜 이제야 본 것일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심장이 너덜너덜해지고, 손이 달달 떨리고, 온몸은 얼음처럼 굳었고, 머리는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하는데 뇌 정지가 왔다. 말로만 듣던 보... 보... 보이스피싱 비슷한 해킹!

살면서 이런 경험을 몸소 체험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내가 해킹을 당하다니!!


일단 도망 다니는 정신줄 부여잡고 카드 분실정지부터 신청한 후 컴퓨터를 켰다.

이럴 때일수록 릴~렉~스~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을 찾자! 아니 반드시 찾아내자!!

컴퓨터 초록창에 '구글 페이먼트 코리아'를 검색하니 결제와 환불이라는 키워드가 바로 뜬다.

피해사례가 엄청나다... 읽으면 읽을수록 온몸에 한기가 들었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담요를 걸치고 보일러를 틀어야 할 정도로 온몸이 반응을 했다.


몇몇 친절한 분들이 남겨주신 후기를 따라 구글 플레이 스토어로 들어갔는데 뭔가 이상했다. 나는 아이폰을 쓰는데 구글 플레이 스토어? 내 계정이 아니란 말인가! 그때 번뜩 아들이 떠올랐다. 혹시 게임 관련해서 아이가 사고를 친 건가 싶어서 아이의 폰을 서둘러 들여다봤다.



이게 머선 일이고? 이 금액 실화냐?
이건 꿈이어야 해!

아무리 아무리 침착하려 해도 4,907,300이라는 금액이 결제된 내역을 확인하는 순간 눈알이 튀어나오려 했다. 어마 무시한 금액으로 구입한 것은 모두 게임 아이템이었다. 아들은 옆에서 더 팔짝팔짝 뛰며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며 아들이 노트북을 한 개 더 가져와 옆에 나란히 앉으며 말한다. "엄마, 방법이 있어. 유튜브에서 봤는데 개발자한테 메일 보내면 48시간 이후로 처리해준대. 내가 처리할게. 내가 알아볼게" 아들 녀석 꽤 듬직했다. 어쨌든 자기 계정이 털린 마당에 아들도 자유롭지 못했을 텐데 놀란 엄마를 대신해서 침착하게 일을 처리하려 드는 아들의 문제해결력에 놀라웠고 기특했다. 이 마당에 또 이런 생각까지 한다.


일단 해결부터 하고 보자!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도 되는 냥 각자 폭풍 검색하고 일을 처리한다. 나는 구글 플레이 계정에서 건 바이 건으로 '문제 신고'를 보내고, 아들은 구매 내역을 복사해서 개발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남사스럽게 이런 짓까지도 한다. (참고로 먹고 살 돈이 없는 정도는 아니다ㅎㅎ) 아들 녀석 이 마당에 이런 장난을 하는 여유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그리고 나란 사람은 이 마당에 글 쓸 생각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지...



이 마당에 글 쓸 생각을 하다니...

이 사건은 아직 완결하게 처리된 건 아니지만, 다행히도 대부분 환불을 받는다고 한다. 얼마나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카드사에서 처리 메뉴얼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잠시 후 카드사와 구글 스토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확인사살을 할 예정이다. 그런데 정말 못 말리게도 이 사건을 겪는 중에 문득 '아, 이 경험은 날리지 말고 글로 써야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옆에서 아들도 거든다. "엄마, 이거 글로 쓸 거지? 우리처럼 당하는 사람들 참고하게 잘 써줘" 아들은 입만 열면 주옥같은 말이 쏟아져 나온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이 계시다면 이 건에 대해서는 처리 방법을 알고 있으니 연락 주시기 바란다. 100%로 환불을 받을 예정이지만, 만약 환불이 안되었을 경우 2탄을 써야겠다. 그것도 아주 비싼 돈을 치르고 쓰는 글로 말이다. 글쓰기 중독이 이토록 무서운 것임을 내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해킹을 당해도 정신 못 차리고 글 쓸 생각을 하는 무서운 글쓰기 병을 한 번 파헤쳐볼까 한다.



글쓰기는 병이다! 그것도 아주 못 말리는 병


작가들은 글쓰기 병에 걸린다.

일반적으로 작가의 생활을 떠올리면, 산발머리를 하고선 밤이고 낮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런 분들도 계실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가들은 일상에서 그저 평범하게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다만 살아가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것들을 자주 줍고, 주운 것들을 글로 가공해낸다는 것이 일반적인 삶과 다를 뿐인다. 그러다 보니 나처럼 이런 순간에도 글쓰기 생각만 하는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작가들이 걸리는 글쓰기 병에 대한 증상은 무언가를 자꾸 주우려 한다는 것! 일상에서 부지런히 경험 줍기를 하고, 책 속에서 부지런히 생각 줍기를 하며 그렇게 부지런히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글쓰기 병이다.


작가들의 글쓰기 병에는 일정한 루틴이 있다. (전성기 vs 침체기)

작가들이 걸린 글쓰기 병의 세부적인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기 별로 다르다. 사람이 늘 한결같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또 사람 아니겠는가. 나의 경우 글이 잘 써지는 전성기가 있고, 글이 잘 안 써지는 침체기가 있는 것 같다. 시기가 반복되는 주기는 당최 모르겠고, 그저 해당 시기 때마다 그에 맞게 행동할 뿐이다. 글이 잘 써지는 전성기가 오면 그에 맞게 열심히 글을 써내려 가고, 글이 잘 안 써지는 침체기가 오면 그에 맞게 글을 쓰기보다 경험을 하려 든다.


작가 모드 온 앤 오프가 필요하다.

글쓰기 병에 걸렸지만 글이 잘 안 써져서 고민 하시는 작가님들이 계시다면 작가 모드 온 앤 오프를 추천드리고 싶다. 모두 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작가로 살아가는 삶에는 '온 앤 오프'의 루틴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경험과 생각들이 모여 글이 되는 형태에 따라 전성기와 침체기에 맞춰 글을 쓰고 경험을 하는 작가 모드의 온 앤 오프를 설정하는 것이다.  전성기가 되어 '온'에 불빛이 들어오면 내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경험들을 쏟아낸다. 다 쏟아내고 나면 침체기가 되어 '오프'에 불빛이 들어오고 그럴 땐 글을 쓰기보다 세상으로 뛰처나와 경험들을 수집하러 다니는 것이다. 온 앤 오프의 불빛은 하루 이틀 만에 변화되기도 하고 주간, 월간, 연간 단위로 변화되기도 할 것이다. 나의 경우는 수시 때때로 온 앤 오프를 설정하는 편이다.





해킹을 당하는 마당에도 글을 생각하는 몹쓸 글쓰기 병에 걸렸지만 이상하게도 불행하지가 않다.

오히려 해킹이라는 무시무시한 경험들을 소중한 글감으로 생각하고 감사히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니..

이런 요상스러운 심리를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조차 모르겠다.

물론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니 이러고 있는 거겠지?

뉴스에서나 볼법한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주의를 요하는 교훈을 얻기보다, 글쓰기에 대한 나의 사랑을 확인하는 기묘한 이야기들을 보통의 사람들은 공감할 수 없는 그런 마음들을 이곳 브런치에서 나의 글 동무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너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받고 싶은 심정임을 고백한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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