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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May 05. 2021

주목받지 않아도 괜찮은 글을 쓸 것

비 맞는 마음에 우산을 씌워주는 글

퇴근과 동시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져내렸다. 차가 세워진 곳까지는 스무 걸음 정도만 걸어가면 되는데 온몸을 홀딱 적실 기세다. 그때 남자 직원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아무렇게나 접은 3단 우산을 톡 풀고 촥 펼치며 말한다. "저 우산 갖고 왔습니다. 같이 쓰시죠. 차 있는 곳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직원의 수고로움에 감사 인사를 건네고 간신히 차에 앉으며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나는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늘과 땅의 전쟁에 빗줄기가 총알처럼 발사되던 날. 그날도 많은 비가 내렸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학원을 마치고 간신히 마을버스에 올랐다. 집은 서서히 가까워지고, 하염없이 발사되는 빗줄기 총알을 온몸으로 맞을 생각에 눈 앞이 캄캄했다. 갑작스럽게 내리던 비였기에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삐익! 내리는 신호 버튼을 누르고 마음에 준비를 마쳤다. 


5. 4. 3. 2. 1 땡!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발사준비를 마친 나는 튀어나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팔을 잡는다. 엥? 누구야? 같은 수업을 듣는 남학생이었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아무렇게나 접은 3단 우산을 펼치며 말한다. "나 우산 갖고 왔어. 같이 쓰자" 하며 우산을 촥 펼친다. 고맙긴 하지만 같이 쓰고 걸을 걸 생각하니 어색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에이 몰라, 일단 비는 피하고 보자'라는 심정으로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아이였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 일단 급해서 우산 속으로 들어왔지만 둘이 나란히 우산을 쓰며 걸으려니 눈앞이 더 캄캄했다. '그냥 비 맞고 뛰어버릴 걸. 5부터 말고 3부터 셀 걸'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우산 속 침묵을 깨려 했다. 

"고맙다. 너 아니었음 나 비 맞은 생쥐 될 뻔했네."   

"집까지 데려다줄게"

"아니야. 저기 슈퍼 앞까지만...(제발 플리즈~)"

"그럼 씌워주는 의미가 없잖아."

생각보다 단호박이었던 녀석은 그날 이후 조금 특별해졌다.

내 마음속에 내리는 비에도 종종 우산을 씌워주는 그런 아이였다. 


옛 추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글을 쓰고 싶어 졌다.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가득 차올랐을 때는 글로 담아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소하고 맹숭맹숭한 글을 담아내도 괜찮은 걸까? 내 마음만 촉촉이 적셔주는 글. 우리들만의 리그 '브런치'에 이런 글을 올리는 건 별로 일 텐데...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몰려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눈치를 보았단 말인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간, 영화 '헝거게임'이 생각났다. 헝거게임이란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12개 구역에서 각각 조공인 2명을 뽑아서 최후 승자가 나올 때까지 서로를 죽여야 하는 게임이다. 소수의 승자에게 부와 명예를 주는 것으로 다수의 죽음이 정당화되는 게임. 나도 어느새 그 게임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이러려고 글을 쓴 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달달한 메인을 꿈꾸며 모두에게 주목받는 화려한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었나 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단맛을 얼마나 보았다고? 초심을 들먹일 짬밥은 아니지만 그렇다 치고) 눈치 보지 말아야겠다. 


남들에게 주목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글을 써야겠다. 

그 옛날 빗줄기 총알탄을 맞을 때 

살며시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었던 그 아이처럼

스스로의 마음에, 또는 나와 비슷한 마음에 

슬쩍 다가가 우산을 씌워주는 

그런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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