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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Jun 05. 2021

글 숲에서 글 쓰며 논다

[쓰는 마음] 글이 쓰고 싶은 이유

바깥에 나가는 것이 시시해졌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지친 마음을 핑계로 들고 싶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다. 나가서 놀아도 큰 재미를 못 느낀다. 그렇다고 내성적인 성격 탓을 할 수도 없다. 상황에 따라 외향적이기도 하고, 노는 것도 좋아하기에 그것은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바깥이 시시해졌을까?

놀기 좋아하는 내가 왜! 노는 것에 흥미가 떨어졌을까?


마음속에 커튼이라도 친 것 마냥 집콕 생활이 지속되자, 이따금 주변에서 우려를 비추기도 한다. 

"요즘 왜 그렇게 집에만 있어? 어디 아파?"

자주 만나서 수다를 떨며 함께 놀았던 사람들로부터 최근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바깥이 시시해진 이유는, 집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더 힘이 세고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집에 있어야 하는 이유!

첩첩산중 일더미에 깔려있기 때문이고, 풀리지 않는 숙제를 끙끙거리며 애써 풀어야 하기 때문이고, 영감을 끌어모아 아이디어 낚시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틈틈이 글을 쓰며 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글을 쓰며 노는 것이 나에겐 너무 치명적인 매력인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밥벌이가 아니기도 하고,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며, 끌림으로 인해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이기에 글쓰기는 나에게 놀이와 같은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상황에서 글을 쓰며 놀고 싶을까? 글을 쓰는 이유, 글이 쓰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01. 간절히 원할 때 글을 쓴다.

일상을 흘려보내다 보면 불쑥불쑥 글을 써서 기록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쓰고자 하는 욕구가 간절히 일렁일 때 그 순간을 빠르게 케치 하여 메모하고선, 글을 쓰는 시간에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이럴 땐 글도 뚝딱뚝딱 잘 써진다. 간절함이 나를 엄청난 몰입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것 같다. 


02. 위기감이 느껴질 때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위기감을 느낀다. 이것은 좀 이상한 습관이자 강박관념 같은 것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늘어져있다 보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지쳐서 쉬어야 할 타이밍인데도, 뭐라도 해야 한다고 느낀다. 정신이 피곤해서 일은 하기 싫고, 몸은 늘어져서 집도 치우기 싫은데, 이상하게도 글은 쓰고 싶다. 지금도 사실 그런 순간이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할 일들이 가득 쌓여있지만 몸과 마음은 피곤해서 쉬어도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 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03. 조용히 사색하고 싶을 때 글을 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글을 쓸 때 쉰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일처럼 느끼지 않기 때문에 자진해서 쓰게 되고, 쓰고 싶어서 쓰게 된다. 이따금 머릿속이 어지럽거나 조용히 생각을 하고 싶은데, 생각을 하다 보면 글이 쓰고 싶고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된다. 그래서 조용히 사색하거나 생각하고 싶을 땐 글 숲을 거닐 듯 글을 쓰며 쉬어간다.  


04. 관심분야에 몰입하고 싶을 때 글을 쓴다.

글을 쓰다 보면 나에 대해 물음표가 쌓여가고,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평소에 나는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분야를 알고 싶어 하는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진 않지만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관심 있는 분야로 더 몰입을 하기 위해 매거진을 개설하고, 그 분야를 깊숙이 파내려 간다. 이렇듯 끌리는 것으로부터 몰입하고 싶은 순간에도 글을 쓰는 것 같다.  


05.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글을 쓴다.

몸은 직관적이어서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마음은 직관적이지 않아서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없다. 애써 살피려 해도 형체조차 없기에 살펴지지가 않는다. 내 마음이지만 나도 모른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알쏭달쏭 알 수 없는 마음이지만, 글을 쓰면 느낄 수 있다. 온도계로 몸의 온도를 재듯, 글을 쓰며 마음의 온도를 재어보는 것이다. 마음이 뜨거운지 차가운지 열이 있는지 없는지, 지금 내 마음은 건강한지를 글을 쓰며 진단할 수 있다. 즉, 마음이 안녕한지 들여다보고 싶을 때 글을 쓰는 것 같다. 


06. 깊은 울림을 느꼈을 때 글을 쓴다.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10년에 걸쳐 썼던 일기장이 있다. 매일 쓰진 않았고, 중요한 순간이나 울림을 느꼈던 순간들을 산발적으로 기록해둔 몇 권의 노트였다. 그 안에는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들이 진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 일기장을 열어보면 나는 아직도 그때의 울림을 고스란히 느낀다. 무한반복으로 들춰봐도 매번 느낀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참 신기한 일이다. 살다 보면 일상에서, 책 속에서, 주변에서 깊은 울림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무심코 넘겨버리면 휴지조각처럼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하지만 글을 써서 저장해두면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다. 지금은 일기장이 아닌 브런치에 주로 글을 쓰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 글을 쓰며 놀고 싶은지? 글이 쓰고 싶은 순간들을 대략 기록해보긴 했지만, 쓰고 보니 이런 이유들이 또 부질없음을 느낀다. 결국 아무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와 같이, 연주자가 악기에 심취했을 때와 같이, 별다른 이유 없이 무아지경의 상태로 빠져들어가는... 글 숲을 거닐며 산책을 하듯 그냥 글 쓰며 노는 거다.


그러다 보니 바깥세상에서의 재미보다 글 숲에서의 재미가 더 진하게 느껴지고,  너무 글 숲에 갇혀버린 것은 아닌가? 우려스러울 때도 있지만 늘 그런 것은 또 아니니까. 무엇이 맞고 틀린 것인지 정답은 없지만 지금은 살짝 기울어진 시소처럼 글 숲에 더 기울어져 있나 보다. 


글 숲에서 노는 재미를 충분히 느끼다 보면 또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지겠지.

지금도 나는 글 숲에서 글 쓰며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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