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안녕! } 제13회공유저작물창작공모전1차-삽화부문
사람들의 무심함에
소녀의 한 세계는 뜯겨 버리고
끝내 자욱한 연기가 새어 나온다.
꽁꽁 얼어붙는 추위를
마지막 성냥불 하나로 간신히 버텼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을 보는구나.
온몸은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소녀여,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안녕?"
소녀와 새는
뜨거운 연기를 머금고
말없이 어둠 속을 헤맨다.
깜깜한 밤
연기에 별을 태우며
성실하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별빛
빛과 어둠의 시간을 즐긴다.
애써 안부를 묻지 않아도
소녀는 지금 충분히 즐겁다.
툭 끊어진 연기를 따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수만 걸음 계단을 올라가며
층마다 새겨졌던 모든 이야기들
즐거웠던, 슬펐던, 잔혹했던, 아름다웠던 이야기들도
또다시 0으로 만들며
낯설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희망을 가득 품고서
소녀여,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안녕!"
세계 최고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성공하기 전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겪어야 했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외모 콤플렉스로 혼자 노는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엉망인 글쓰기 실력이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바탕으로 동화를 썼고 크게 성공했다.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알코올 중독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가난한 환경과 학대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성냥팔이 소녀'를 볼 때면 왠지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가엾은 소녀를 향한 불평등한 시선들
심한 노동착취와 가정폭력도 그러하지만 더욱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철저한 차별의식이다. 성냥팔이 소녀는 지독히도 가난하여 아무리 열심히 성냥을 팔아도 달라지는 게 없었던 반면, 추운 거리를 헤매다 창문 안 벽난로를 품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가정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소녀가 감당해야 할 현실은 춥고 외롭고 비참했다.
사람들은 왜? 불쌍한 소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일까? 아무도 안부를 물어봐주지 않았던 것일까?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소녀에게 안부를 물어봐주었다면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팍팍한 세상과 팍팍한 사람들 사이에서 잔혹하게 끝을 맞이한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를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어보니 더욱 저릿하게 가슴이 아려왔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성냥팔이 소녀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무심한 사람들에게선 들을 수 없었던 따뜻한 관심과 안부를 "안녕" 두 마디 외침을, 작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다가와 건넨다. 그렇게라도 소녀에게 안부를 건네고 싶었다. 새와 소녀는 연기를 머금고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으며 빛과 어둠의 시간을 즐겼다. 유일하게 안부를 물어봐주는 작은 새 덕분에 소녀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가벼운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이별을 맞이하게 되면 한 세상이 끝날 때까지 후회로 얼룩진 마음을 품은 채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무심하게 넘겨버린 남은 자들의 몫이 된다. 그들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깊이 뿌리 박히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이 그러하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자신을 둘러싼 모든 당연한 것들에게 안부를 묻자. 모두에는 물론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이제라도 나와 나를 둘러싼 모두에게 안부를 물어보며 인사를 건네자. "안녕?" "안녕!"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