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여자들

두고 온 것

by miya

그녀의 눈이 더 커졌다. 피부가 하얗다.

“어떡해. 빌려보지. 아는 사람 없어?”

“네….”들어가는 목소리 아주 잠시 후,

“나 밖에 수모는 하나 있어. 갖다 줄게.”

하나는 해결했다. 너무 감사해요! 어디서 가져오는 것일까.

수영장에서 누구에게 무얼 빌려본 적이…. 없다. 개인 수건에 비누까지 가지고 다니니 어쩌다 한번 샴푸나 트리트먼트를 두고 온 날 낯선 이에게 말을 건다. 거절을 당한 적은 없다. 빌리고 나도 흔쾌히 빌려준다. 다 모르는 이다. 다음에 갚을 생각도 받을 생각도 안 한다. 한 번 쓸 샴푸의 양처럼 그 정도의 친절은 누구에게나 있는 공통분모 같은 것이라 여겼다.


옆으로 나란히 섰다. 물안경에 무얼 바르고 계신다. 그게 뭐예요? 응 이거 바르면 잘 보여. 물안경을 반년 동안 바꾸지 않아서 습기는 습기대로 차고 물은 물대로 들어온다. 그럴 때면 느슨한 안경을 조이거나 수영장 물에 자주 씻어 가며 착용했다. 언니는 내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한번 발라보라며 나에게 툭, 김 서림 방지제를 건넸다. 정말 잘 보였다.

이후 수영장을 오가며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언니도 항상 웃으며 인사를 한다. 여느 또래 회원과 달리 사담을 크게 자주 나누지는 않는다. 그녀에게 초등학생 손녀가 있다니, 세련된 모습의 언니가 손녀를 챙기는 모습은 멋지기도 하고 자상해 보이기도 했다. 손녀도 하얗고 예쁘다.


한 번은, 샤워기에 마르고 작은 노인이 서 있었다. 물을 틀어보니 차가워 옆으로 옮기시려는 찰나 쌩하고 그보다 젊은 한 여자가 자리를 꿰찼다. 둘 다 손주가 있고도 남은 나이, 사람들의 눈길이 이 둘을 향했다. 노인은 아무 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차가운 물을 받고 있었다. 그냥 볼 수만은 없었다. 여기 마음보다 먼저 새치기한 입이 있다.

“아 거기 찬물이 나와서 옆으로 가시려고 했어요.”

앞에서 바라보던 내가 마지못해 말문을 열었다. 여자는 내 말소리를 들리지 않는 척 수영가방을 부스에 걸고 내 자리라는 듯이 모자와 안경을 벗었다. 씻을 준비를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여자의 나이는 족히 내 엄마뻘과 비슷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으나 그의 얼굴의 빛은 그렇게 생겨먹었다.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이내 안쪽에 자리가 나고 노인은 자리를 옮겼다. 순간의 정적과 민망함은 그를 제외한 주위의 몫이 되었다. 나는 그 사람을 기억하려고 수영복 차림새를 기억하고자 했다. 저 사람이랑은 말을 섞지 말아야지. 수모로 머리를 감추면 쉽사리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 검은 바탕에 노란색 줄, 샤워하는 내내 허! 소리가 절로 나왔다. 들으라지. 좁은 샤워장에서 한 뼘의 친절도 찾을 수 없는 이 잠시의 상황에서 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서둘러 입수 준비를 마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저기 언니가 보인다.

“저 아까 이상한 분 봤어요.”

“아 그이, 원래 싹수가 없어.”

그 말 하나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언니는 그동안 몇 가지 일을 알려주며 조심하라는 듯 조언을 했다. 으슬으슬했던 파란빛 수영장 물이 그날따라 시원해 보였다. 출발!


하얀 수모를 빌려 쓰고 수영장으로 나갔다.

5분, 입수 전 체조하는 시간이다. 지나가는 강습 선생님께 물었다.

“혹시 수경 좀 빌릴 수 있을까요?”

키판과 선생님들의 슈트가 있는 곳을 두리번거리다 금세 없다고 한다.

‘이상하네. 분명히 민이는 빌려서 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첨벙 물속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얼굴보다 색색의 수영복이 더 친숙한 이들과 고개 인사를 하며 라인을 따라 섰다. 어제 강습보다 징검다리로 있는 자유 수영 시간에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왔다. 그들이 자꾸 나보고 앞으로 가란다. 잘하게 생겼나? 물살을 거슬러 뒤로 갔다.

“저 물안경을 안 가져와서….” 다들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숙련 반에 1달 늦게 들어왔다. 사실 학교는 아니지만 한 달이라도 먼저 온 이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자리가 있다. 잘하는 사람은 보통 앞쪽에 서고 능숙함에 따라 그 미묘한 차이로 그다음에 선다.

“선생님께 빌리지 그래요?”

“한번 해보고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숙련 반 수강생들과 처음 나눈 인사였다. 저기 안전요원 자리에 우리 선생님이 보인다. 나는 수경 없이 헤엄을 쳐 끝에 당도했다. 호흡에는 지장을 주지 않았으니 눈에 물이 들어가는 것 즘은 감수할 수 있었다.

“선생님 저 물안경 안 가져왔어요. 헉헉.”

입을 삐죽거렸다. 좀 더 어필하기 위함이다. 내 처진 눈은 보았을까? 선생님은 좀처럼 감정을 보이지 않으신다. 잘하면 잘했다 칭찬이 없고 모두 똑같이 대한다. 회원과 교감이 없는 것이 심심할 때도 있어 다른 스타일의 남자 선생님 반으로 옮겨볼까도 했다. 오후에 민이가 수영 올 때 더러 못 챙긴 수모나 안경을 빌리기도 했기에 내심 기대를 했다. 잘 들리지 않는지 눈을 크게 치켜뜨셨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시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없어요.”

시력이 나쁜 나는 더 자세히 올려다보았다. 미간을 찌푸리신 게 맞나.

자유형을 수경 없이 했다. 가능했다. 오히려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앞을 볼 수 없으니 앞사람 발에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아니면 반대편에서 오는 분과 충돌하거나. 안 되겠다. 지난달에 했던 초급 마스터 자율 수영으로 가야겠다.

할머니들은 내가 강습반에 간지 모르신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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