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여자들

채워진 것

by miya

1월, 접영 숙련 강습반에 떨어졌다.

이번에는 추첨에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나쁘지 않다고 자기 합리화에 들어갔다. 방학이기도 하니 아이도 챙기랴 강습반도 자주 빼먹을 것 같았다. 편한 요일 컨디션에 맞게 오면 된다. 그래서 마스터 자율 수영반으로 등록했다. 1번 초급 레인에 섰다. 팻말이 세워져 있다.

/모든 영법이 가능한 초급자, 추월 금지/

한 달 동안 강습이 없다고 하니 못하는 아쉬움보다는 마음이 홀가분했다. 아이가 방학이니 상황을 봐서 주 2~3일을 내 입맛대로 나오면 된다.

그곳에 그 언니가 계셨다. 1번 레인에 있는 우리들은 물 위에 둥둥 떠서는 저 끝 강습반을 바라봤다. 바뀐 선생님들과 초보 강습자들을 보며 사뭇 선배의 뒷짐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1월에 개편된 새 강습 선생님은 누구일지 궁금했는데 역시나 수영장 정보통은 여기 자율 수영 할머니들이다. 자리를 오래전부터 잡고 계신 회원 어머니들. 한 번은 할머니 두 분이 나를 보시더니 수영 폼을 가지고 말을 걸어오셨다.

“조금 기다렸다 팔을 돌려야지. 발도 끝까지 모으고.”

내 폼을 구수하게 지적해 주시는데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 네~ 감사합니다.”

“기분 나쁠까 봐~허허”

“아니에요. 알려주시면 저야 좋죠.”

이 첨언을 한 달 동안 더러 하루에 한두 번은 들었다. 이제 그만 듣고 싶은 순간이 왔다. 친절한 할머니 중 손녀와 사이좋게 오시는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나를 자꾸 추월하셨다. 처음에는 내가 헛것을 본 줄 알았다. 물안경이 뿌연 탓일까? 보라색 해파리가 보인다? 월은 금지다. 이번이 세 번째, 참을 수가 없다.

“왜 자꾸 추월을 하세요?”

내가 평영을 하니 자신의 자유형 속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말씀하시고 턴을 하시는 게 아닌가. 자율 수영은 앞사람과의 거리를 고려해서 앞사람이 깃발을 지났을 때 출발하거나 속도와 간격을 생각해 살피며 해야 한다. 팻말에 추월금지! 보이지 않나요? 할머니? 이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까 한 마디 한 것으로 되지 않았나. 샤워하는 내내 개운하지가 않다.


1월의 끝자락. 어쩐지 자율 수영 한 달 만에 반을 바꾸고 싶다. 웃음을 포장한 호의의 말들이 여러 번 지속되니 거추장스러운 간섭같이 느껴진다.

-강습반으로 옮길까 봐.

그런데 숙련 반 힘들어 보이던데

할 수 있을까도 걱정이야.-

수경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민은 한들 자리가 없다. 어제도 물어봤지만 밑져야 본전으로 다시 카운터에 섰다.

“혹시 접영 숙련 반 자리가 있어요?”

“아네, 한자리가 있어요. 지금 누가 하실지도 모르니까 먼저 신청할게요.”

나이스! 강습 카드를 재빠르게 건넸다. 그리하여 그 한자리는 내 것이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스타일의 남자 선생님께 받고 싶었는데 작년 6개월 동안 기초 영법을 강습해 준 여선생님이다. 물안경이 없다고 하신 선생님. 남자 선생님 아니면 어때.

*

숙련 반 레인을 나와 초급 자율 수영반으로 왔다.

“앞으로 와 앞으로.”

할머니들이 언제나처럼 먼저 하라고 길을 터주신다.

“아뇨 저 오늘 안경을 안 가져왔어요.”

“저기 선생님께 빌리지 그래?”

“아, 없데요.”

“없데? 말을 이쁘게 안 했남~?”

웃으신다. 고구마처럼 작고 탄탄한 할머니는 있으면서 왜 안주냐는 듯이 선생님을 향해 나무랐다. 나는 혹여 들릴까 봐 말끝을 바로 잡았다.

“괜찮아요. 키판 잡고 발차기하고, 배영하면 되네요.”

하며 웃었다. 아니다. 배영해도 눈에 물이 자꾸만 고인다. 그래 이번 주 너무 무리했으니, 오늘은 수영이 질리지 않도록 몸이나 풀어야지. 살살 하자 살살. 덕분에 키판 잡고 발차기를 많이 했다. 물속에서 눈을 떠야 하는 자유형 빼고 눈에 자극을 덜 주는, 물 위를 비교적 많이 올라오는 배영, 평영, 접영 순으로 했다. 물안경 없이 배영은 수월했다. 중간중간 옆 레인의 물이 튀길 때면 내 눈 위로 물이 고여서 눈을 질끈 감았다. 평영은 물 위를 올라와서 눈을 뜨면 되니 가장 할만했다.

그런데 유레카는 접영이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새로움. 원효스님의 해골바가지 사건처럼 앞을 보지 않고 감으로 물속의 수심을 헤아려 물 위를 올라옴과 동시에 팔을 위로 뻗었다.

‘어! 왜 이렇게 가볍지?’

물안경을 쓰고 앞을 볼 땐 수심을 헤아려 나름대로 도약하느라 출수 킥에 힘이 많이 줬다. 선생님은 계속 팔을 펴라고 하셨다. 선생님 그게 핀 거예요…. 힘에 부친다. 그것은 일명 119 허우적 영법이라 부른다. 수경이가 그렇게 부른다. 그녀는 정말 언어 마술사가 아닌지. 그런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오늘의 접영은 그동안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쓸데없이 들어간 힘을 빼게 한 것이다. 날았다. 감 잡았다.


‘수경이 없으니 이런 깨달음이 있네!’

몸으로 체득한 영법, 모자를 빌려준 언니가 10분 일찍 나가신다. 시원하게 하고 오라며 수경을 준다.

“감사해요!” 사실 나도 슬슬 가려고 했다. 옆에 고구마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거 이제 시원하게 해 봐! 출발!”

그래, 한 바퀴만 더 돌자.

그동안의 훈수에 미워했던 마음이 되레 미안해졌다. 사람에게 관심도 정도 많으신 할머니들. 다음에 만나면 요구르트를 돌려야 하나. 수경 없는 나를 걱정해 준 할머니들이 고맙다. 수모와 수경을 빌려준 언니는 사실 손녀를 둔 할머니다. 하얗고 키 크고 예쁜 할머니, 그래서 할머니라고 부를 수가 없다. 언니라고 부른다. 속으로만 말이다. 수경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도 행수!-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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